점장님이 너무 바보 같아서
하야미 카즈마사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8월
평점 :
품절


28살 다니하라 교코는 중간급 규모인 도쿄 무사시노서점의 6년차 계약직 직원입니다. 오래 전부터 서점직원을 꿈꿨던 그녀는 7에 불과한 자취방의 네 면 중 세 면을 책으로 채울 정도로 소설을 좋아하고, 박봉인 탓에 월급날 직전이면 지갑이 텅텅 비는데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소설을 사들이지 않곤 배기지 못하는 마니아 독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점 환경도 불만스럽고, 서른이 코앞인 계약직이라 미래도 불안하고, 무엇보다 하나같이 이기적이기만 한 소설가, 출판사, 영업사원에다 책에 대한 애정 하나 없으면서 진상만 부리는 고객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나도 바보 같아 수시로 분노를 유발시키는 서점의 사장, 점장, 동료들 때문에 속을 끓이는 가운데 다니하라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둔다계속 다닌다를 고민하는 중입니다.

 

일본 역시 출판계가 불황이라곤 하지만 가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을 읽고 나면 여러 가지로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꿈의 사전(事典)을 제작하는 겐부쇼보 출판사 사전편집부의 분투를 그린 배를 엮다’(미우라 시온)와 인쇄업계를 무대로 인쇄는 책을 만드는 이라고 믿는 이상주의자와 인쇄는 책을 찍어내는 이라고 단언하는 합리주의자의 이야기를 그린 책의 엔딩 크레딧’(안도 유스케)입니다. 이 두 작품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진심을 진지하고 묵직하게 그린 정극이라면 계약직 서점직원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점장님이 너무 바보 같아서는 경쾌하고 코믹하면서도 서점이란 곳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상과 애환을 코끝 찡하게 그려낸 밝은 톤의 작품입니다.

 

6년째 1엔도 오르지 않은 박봉에 암울한 미래가 걱정되는 주인공 다니하라는 이딴 직장, 진짜 정말로 그만둘 테다!”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폭발하면서도 끝내 서점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저 좋아하는 책에 둘러싸여, 좋아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작가에게서 받아 애정 어린 고객에게 고이 전달한다.”는 서점직원으로서의 사명감과 행복을 차마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만큼 책 혹은 책과 관련된 사람들 때문에 느끼는 절망과 좌절도 깊습니다. 다니하라가 보기에 너무나도 바보 같은 존재들 점장, 소설가, 서점 사장, 출판사 영업사원, 손님 - 은 진정 책을 사랑한다기보다 젯밥이나 떡고물에 더 관심이 많을 뿐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계약직 서점직원에 불과한 다니하라는 수시로 돌직구 같은 직언을 날립니다. 오로지 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믿고 말입니다.

 

일본에서 개최되는 여러 문학상 가운데 미스터리 분야를 제외하고 가장 관심을 갖는 건 서점대상입니다. 소설가나 편집자가 아닌 전국의 서점직원들이 그해 신간들을 대상으로 가장 팔고 싶은 책을 뽑는데, 덕분에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들이 상을 받곤 합니다. (이 작품도 ‘2020년 서점대상에서 9위를 차지했습니다.) 관심도 관심이지만 가장 궁금했던 건 과연 서점직원들이 그렇게 많은 책들을 읽을까?”라는 점이었습니다. 요즘은 오프라인 서점에 가는 일이 드물긴 하지만 적어도 그동안의 경험으로는 한국의 서점에서 직원이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독자에게 추천하는 일은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고 좋은 책을 독자에게 전해주려 애쓰는 서점직원 다니하라는 제겐 무척이나 신기해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시에 이런 직원이 있는 서점이라면 온라인서점이 아무리 할인을 해준다고 해도 일부러 발품을 팔아서라도 찾아가고 싶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장르물 편식이 심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한사람으로서 한 권의 책이 독자의 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바보 같던 주변사람들과 부딪히고 교류하면서 그들의 진심과 속내를 알게 되는 것은 물론 어쩌면 자신도 바보였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는 다니하라의 이야기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또 다른 면모를 만끽하게 해줬습니다.

일본 서점의 현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다니하라의 이야기가 예쁘게 포장된 판타지인지, 현실을 잘 반영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리얼리티의 수준이 50%뿐이라 하더라도 그저 부럽기만 할뿐입니다. 언젠가 한국의 서점에서도 다니하라 같은 직원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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