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러티
콜린 후버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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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직면한 무명작가 로웬 애슐레이는 어느 날 거짓말 같은 제안을 받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베스트셀러 작가 베러티 크로퍼드 대신 그녀의 유명 시리즈 마지막 세 편을 집필해달라는 것입니다. 베러티의 명성에 부담을 느낀 로웬은 처음엔 제안을 거절하지만 베러티의 남편 제러미가 엄청난 고료를 제시하자 자기도 모르게 수락하고 맙니다. 베러티가 남겨놓은 메모와 원고 등 필요한 자료를 구하기 위해 베러티 부부가 사는 대저택에 도착한 로웬. 하지만 그녀는 베러티의 서재에서 미발표 자서전 원고를 발견하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거기엔 베러티 본인 외엔 아무도 모르는 베러티 가족의 끔찍한 비극의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베러티는 한 가족에게 연이어 들이닥친 비극과 그 진실을 다룬 심리 스릴러이자 집착과 광기에 가까운 사랑을 그린 노골적인 성애 로맨스이기도 합니다. 로웬이 발견한 베러티의 미발표 자서전 원고는 그녀가 어떻게 제러미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어떻게 3남매를 둔 가족을 일궜으며, 연이은 사건과 사고가 어떻게 가족을 붕괴시켜 지금에 이르게 만들었는지를 상세하게 담고 있는데, 그 자체가 심리 스릴러이자 성애 로맨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 안 그래도 몽유병, 광장공포증, 대인기피증 등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로웬이 제러미의 대저택에 도착한 이후 겪는 질풍노도와도 같은 감정적 동요와 갈등, 그리고 위태로운 로맨스까지 더해져서 평범한 도메스틱 스릴러와는 사뭇 다른 결의 서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읽을 리 없다는 전제 하에 쓰인 내밀한 자서전에 담긴 베스트셀러 작가 베러티의 충격적인 비밀과 그 가족에게 닥친 연이은 비극의 실체, 그리고 홀로 그 모든 것들을 알게 된 로웬이 베러티의 남편 제러미에게 품게 되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 - 연민과 동정에서 시작된 뒤 자신이 알게 된 비밀을 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엔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고 마는 - 은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큰 힘입니다.

 

마지막에 몰아치는 파국과 에필로그의 반전은 그 자체로는 큰 힘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독자에게 당신이 목격한 진실들가운데 어떤 게 참이고 어떤 게 거짓일까?”라는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불편하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독자 입장에선 로웬과 베러티를 통해 목격한 진실들가운데 어느 쪽이 참이라고 해도 조금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습니다. 각각의 진실은 어느 쪽이 더 비참하다고 판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상막하의 비극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는 논쟁적 소설이라는 평가는 이런 이유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콜린 후버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베러티가 한국에 소개된 첫 작품인 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 무려 다섯 편의 작품이 출간돼있었습니다. 다만 다섯 편 모두 그녀의 전공인 로맨스 작품이라 장르물로서는 베러티가 처음인 셈인데, 스릴러와 로맨스를 절묘하게 결합한 필력을 감안하면 언젠가 베러티를 능가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5개를 주진 못했지만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니 치명적인 로맨스와 심리 스릴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만나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족으로 딱 한 가지만 흠을 잡자면, 남자 주인공인 제러미는 대략 30대 후반인데 그의 대사는 모두 하오~ ’, 그러니까 밥 먹었소?”, “편하게 생각해주시오.”, “금방 가져오겠소.” 식의 사극 톤으로 번역된 점입니다. 그가 딱히 고전적인 캐릭터도 아닌 상황에서 독자로 하여금 남자 주인공을 10~20년이나 늙게 느끼게끔 만든 이유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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