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강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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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연방수사국 CBI 특별수사관인 캐트린 댄스는 경찰국과 마약단속국 베테랑까지 포함된 대책본부에서 갱단 수사를 벌이던 도중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탓에 서류 업무만 전담하는 부서로 좌천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첫 임무에서 사건성을 밝혀냈고, 동일범에 의한 동종수법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비공식적으로 수사권을 되찾아옵니다. 피해자들을 직접 죽이진 않지만 극도의 공포심을 갖게 만들어 알아서 죽게 만드는가공할 범행수법에 댄스와 수사진은 경악합니다. 클럽, 카페, 병원 등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서만 사건이 일어난 탓에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지만 수사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댄스는 누군가 피해자들의 비극을 구경거리로 삼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음을 감지하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고독한 강‘XO’ 이후 5년 만에 출간된 캐트린 댄스 시리즈신작입니다. 현지 출간은 ‘XO’2012, ‘고독한 강2015년이니 한국 독자에겐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늦게 소개된 셈입니다. 그래도 기다렸던 만큼 신작 소식이 반가웠고 이른바 인간 거짓말탐지기라는 별명을 가진 캐트린 댄스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 무척 기대된 것 역시 사실입니다.

 

동작학, 즉 상대의 몸짓 언어를 통해 그의 진술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말하지 않은 사실들까지 파악해내는 특별한 재능을 지닌 댄스는 이번에도 그녀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댄스는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 걸맞게 다양한 사건과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때문에 그녀의 인간 거짓말탐지기재능은 용의자는 물론 동료, 연인, 가족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작동하게 됩니다.

 

메인 사건은 극도의 공포심을 조장해 사람들을 알아서 죽게 만드는희대의 연쇄살인마를 쫓는 것이지만, (좌천되기 전까지 댄스가 주력했던) 무기와 마약을 거래하는 대규모 갱단 소탕작전이 적잖은 비중으로 병행됩니다. 또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든 아들 웨스와 딸 매기와의 갈등, 재혼까지 고려중인 연인 존 볼링과의 관계 등 댄스 본인의 개인사도 흥미진진하게 전개돼서 벽돌책에 가까운 분량을 지루할 틈 없이 꽉 채워주고 있습니다.

 

스너프 필름 제작자와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라는 홍보카피가 붙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스너프 필름을 훨씬 뛰어넘는 잔혹한 사디즘 광신도와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인과 강간은 물론 전쟁터, 수술실, 대재난 현장 등 끔찍하거나 역겨운 상황을 담은 영상에 심취한 자들은 이미 업로드된 영상을 돈을 내고 다운받기도 하지만, 특정한 시나리오를 요구하며 사건을 일으킬 것을 의뢰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내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사람들을 죽이면서 그 장면을 고화질 카메라로 촬영하라.”는 것입니다. 이 가공할 범죄의 진범은 처음부터 독자에게 공개됩니다. 주체할 수 없는 살인욕구에 휩싸인 지독한 소시오패스인 그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자신을 추격하는 매력적인 요원 캐트린 댄스입니다.

 

메인 사건이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 대 통제 불능의 소시오패스의 대결이라는 전형적인 구도로 전개된다면, 나머지 사건과 상황들 - 갱단 소탕작전, 댄스의 아들과 딸의 갈등, 댄스의 로맨스 은 모두 막판에 짜릿한 반전을 이끌어내며 마무리됩니다. 중반까지만 해도 다소 사족처럼 읽혔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복선을 회수하며 반전으로 이어진 덕분에 새삼 제프리 디버의 정교한 설계도에 감탄하게 됐는데, 다소 단조로워 보였던 메인 사건의 아쉬움이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인 구성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사족에 가깝지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목에 관한 것입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Solitude Creek’입니다. 첫 사건이 벌어진 클럽의 이름이자 그 일대를 흐르는 지류의 이름인데, 고유명사라는 점에서 원제를 그대로 썼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작품 속에서 고독한 강이라고 언급되는 부분이 하필 일본 이민세대의 과거사와 관련된 대목 한 군데밖에 없는데다 작품 전체의 주제나 의미와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어판이라면 모를까 한국어판에 굳이 고유명사를 번역까지 해서 제목을 붙인 점 때문에 재미있게 읽고도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개운치 않은 기분을 느낀 게 솔직함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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