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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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 하나 없는 한직인 BANC(특이 사건국)로 좌천된 록산 몽크레스티앙 경감은 부임과 동시에 기이한 사건에 휘말립니다. 센 강에서 알몸으로 발견된 여성이 이송 도중 탈출했는데, 그녀가 남긴 머리카락을 조사해보니 이미 1년 전에 사망한 유명 피아니스트 밀레나의 DNA와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도망친 여성의 시계와 문신을 통해 추적을 이어가던 록산은 밀레나의 연인으로 알려진 작가 라파엘과 만나는데, 문제는 라파엘이 밀레나에 관해 조금도 입을 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라파엘 주위에서 끊임없이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록산은 집요한 조사 끝에 도망친 여성과 밀레나, 그리고 라파엘의 관계를 파악하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더불어, 술의 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전복과 일탈의 신, 분노와 광기의 신이기도 한 그리스신화 속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그룹이 사건과 관련 있다는 사실에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남들은 다 좋다는데, 혹은 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데 유독 나와는 인연이 없는 작가는?”이란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한두 명쯤은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경우엔 그런 작가가 꽤 많은 편이고 그중 한 명이 바로 기욤 뮈소입니다. 선물로 받은 전집 세트마저 하염없이 방치할 정도로 관심 밖이던 기욤 뮈소와 처음 만난 건 통속성 강한 미스터리 아가씨와 밤이었는데 기대를 안 한 덕분인지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고, 그 여세(?)를 몰아 시간여행을 다룬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까지 읽게 됐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큰맘 먹고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을 장바구니에 담기에 이르렀습니다.

 

제목부터 관심을 자극한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은 한겨울에 알몸으로 강에서 발견된 뒤 자취를 감춘 여성이 알고 보니 1년 전에 이미 죽은 여성으로 밝혀지면서 꽤 흥미로운 출발을 보입니다. 거기다가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주인공 록산은 합리적이고 유능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반골 기질 탓에 부당한 처우를 당하고 마는다소 상투적인 여형사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서 초반부터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죽은 여성 피아니스트의 연인이자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모호한 작가 라파엘, 라파엘의 아버지이자 공교롭게도 록산의 전임자인 바타유 국장이 추적하던 정체불명의 그룹, 사방이 유리인 라파엘의 집에 출몰하는 미지의 인물들, 그리고 한직으로 밀려난 상태라 공식적인 수사를 포기한 채 오롯이 혼자 힘으로 뛰어다녀야 하는 록산과 그녀의 파트너인 박사논문 준비생 발랑틴 등 매력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들이 빠른 템포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갑니다.

특히 별개로 보였던 각각의 사건들이 실은 복잡미묘하게 하나의 끈으로 연결돼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점점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초반의 기대감과 매력은 점차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 읽은 뒤에도 머릿속으로 큰 얼개를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야기가 복잡하고 배배 꼬여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의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지만) 따라가기 힘든 장르의 믹스역시 난감할 뿐이었는데, 도플갱어 스토리인가 싶으면 갑자기 꿈과 환각과 정신의학이 등장하고, 기괴한 형태로 시신과 현장을 꾸미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스릴러인가 싶으면 느닷없이 그리스신화, 연극, 디오니소스 숭배, 제물과 제의(祭儀)가 튀어나옵니다.

말하자면, 미스터리인 줄 알고 따라가다가 난데없이 호러 혹은 신화 판타지와 맞닥뜨리고, 잠시 후엔 또 다시 미스터리로 급선회하는 혼란이 읽는 내내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결국 도대체 이 작품의 장르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수시로 들 수밖에 없었고, 중반을 조금 넘은 지점부터는 애초 주인공과 사건에 품었던 기대감과 매력은 더 이상 이어가기 어려워졌습니다. 잔뜩 연쇄살인을 설정해놓곤 막판에 가서 불가해한 영역으로 독자를 이끌어 납득하기 힘든 결론을 강요하는 일부 북유럽 스릴러의 닮은꼴이라고 할까요?

 

물론 취향이 맞는 독자라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깔끔하거나 선명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눈길을 끄는 이야기, 그리스신화를 차용한 신비주의에 가까운 서사, 숭배 혹은 제의(祭儀)를 통한 악의의 발산 등에 관심 있는 독자에겐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은 기대 이상의 만족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욤 뮈소와 친하지 않다고 해도 별 3개라는 야박한 평점을 준 건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니 이 작품이 궁금하다면 다른 독자들의 서평도 꼭 참고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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