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가 여자들
파스칼 디에트리슈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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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동부 그르노블을 무대로 마피아 집안의 세 모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대부 레오네의 아내이자 명예 마피아인 어머니 미셸, 아버지와 마피아에 대한 반감으로 인도주의 단체에서 일하는 장녀 디나, 현대적인 방식으로 가업을 이어가려는 차세대 보스 후보 차녀 알레시아. 어느 날, 알츠하이머를 앓던 남편 레오네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지만 미셸은 그 사실보다도 남편이 사전에 써놓은 편지 때문에 더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 편지엔 레오네가 자신을 배신한 아내 미셸을 죽이기 위해 킬러를 고용했으며, 조만간 그가 미셸의 숨통을 끊기 위해 방문할 거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셸은 두 딸과 함께 킬러의 정체를 밝히고 살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합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마피아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은 매체를 불문하고 예외 없이 남성 중심의 서사를 펼치기 마련입니다. 비장미 넘치는 영웅도, 차기 보스를 노리는 야심가도, 심지어 사업에서든 권력투쟁에서든 덜 떨어진 모습을 보이는 조연이나 그저 총알 세례 장면을 위해 동원된 단역들조차 모조리 남자들의 몫입니다. 여자들은 무기력하거나 순종적이거나 성적 대상이거나 잘 해야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된 채 무의미한 저항을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목에서부터 도발적인 기운을 감추지 않은 마피아가 여자들은 기존의 마피아 물과는 정반대의 성 역할을 기대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건 혼수상태에 빠진 마피아 대부의 아내와 두 딸인데, 그녀들은 마피아 세계에서 여자들이 스스로 선택하거나 억지로 강요당할 수 있는 몇몇 삶의 방식을 사실감 있게 대변하고 있습니다.

 

대부의 아내인 미셸은 마피아의 여자로서의 소극적인 역할을 수긍한 채 살아온 인물입니다. 낭만적이지만 갑자기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남편에게 평생 순종해왔고, 마피아가 제공한 부유한 삶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마피아 아내들이 뜻을 모으면 얼마든지 남편들을 구워삶을 수 있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깨달은 인물입니다.

장녀 디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마피아에 대한 반감에 사로잡혔고, 그로 인해 보란 듯이 인도주의 단체에서 활동하지만, 실은 마피아와 인도주의 단체가 이복형제란 사실을 깨닫곤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내를 죽이기 위해 킬러를 고용한 아버지를 혐오하지만, 똑같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려는 동생 알레시아 역시 불편하게만 여겨질 뿐입니다.

약국을 운영하며 몰래 마약을 판매하고 돈 세탁을 일삼는 차녀 알레시아는 차세대 그르노블 마피아 보스 자리를 넘보는 야심찬 여성입니다. 기존의 마피아 서사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캐릭터로, 마지막까지 멍청한 남자들 대신 새롭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마피아를 이끌고 갈 여자들의 역할을 모색하는 인물입니다.

 

띠지에 인쇄된 낡은 전통과 침묵의 규율을 깨부수는 짜릿하고 통쾌한 코믹-여성-누아르!”라는 카피는 절반쯤은 맞고 절반쯤은 과장됐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인데, 짜릿함과 통쾌함에 대해선 기대치를 너무 높게 가져선 안 되고, 코믹은 그다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판타지 같은 남성 중심의 마피아 서사와 달리 차분하면서도 사실감 넘치는 여성 마피아 스릴러라는 카피가 더 어울려 보입니다. 미셸을 살해하기 위해 고용된 청부살인업자의 정체가 밝혀지는 대목이나 알레시아가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차세대 보스 자리를 노리는 과정은 딱히 놀라운 반전이나 흥분을 일으키는 화려한 액션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총격전 외엔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남성 마피아 서사에 비하면 훨씬 더 리얼하고 그럴듯하게 다가왔고,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마피아가 여자들을 포함하여 파리의 대마초 여인’, ‘포커 플레이어 그녀등 최근 들어 프랑스 미스터리 스릴러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쓸데없이 어렵게 이야기를 풀거나 과장되게 폼만 잡는다고 여겼던 프랑스 작품들에 대한 선입견을 시원하게 날려줄 만큼 매력적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저와 그다지 코드가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한 기욤 뮈소의 신작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을 곧 읽을 예정인데, 과연 기욤 뮈소마저도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전해줄지 사뭇 궁금해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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