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친한 친구들 스토리콜렉터 4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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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교사이자 극렬 환경운동가인 파울리가 동물원 인근에서 참혹한 사체로 발견됩니다. 호프하임 경찰청 보덴슈타인 반장은 열혈 여형사 피아 키르히호프와 함께 수사에 나서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힙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파울리의 극단적인 환경운동을 추종하는 세력도 적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적들, 그것도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한 자들이 파울리 주변에 널렸기 때문입니다. 파울리가 가르치던 학생, 이혼한 전처, 갈등중인 이웃은 물론 환경과 동물보호 문제로 잦은 충돌을 빚던 기업이나 관료, 심지어 동물원 원장까지 용의선상에 오르고 특히 최근 도로확장 계획을 놓고 거세게 대립하던 관계자들도 수사대상에 오르지만 출구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유력한 용의자들이 하나둘씩 무혐의 처분을 받는 가운데 파울리를 추종하던 청년 한 명이 살해되자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확신합니다.

 

끄떡하면 새로운 용의자가 나타나고, 강력한 살해 동기를 가졌다 싶어서 쫓아가보면 막다른 골목에서 막혀버리니 사람 환장할 노릇 아닌가! (p243)

 

이 작품의 구도를 잘 압축해놓은 보덴슈타인의 탄식입니다. 전작인 시리즈 첫 편 사랑받지 못한 여자역시 모두가 죽이고 싶었던 여자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만큼 수많은 용의자가 등장하고 그에 따른 부수적 사건들이 여러 건 발생했는데, ‘너무 친한 친구들은 그에 못잖은 복잡한 구도로 이뤄진 작품입니다.

살해된 환경운동가 파울리는 생전에 그 언행이 지나치게 과격하고 공격적이라 사방팔방에 그를 죽이고 싶어 하는 적들을 만들었습니다. 자연히 피아와 보덴슈타인의 수사는 닥치는대로 여기저기 찔러보기’, ‘알리바이가 모호하거나 심증이 가는 인물은 일단 체포하기등 조금은 막무가내 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와중에 사건 관련자인 청년 한 명까지 살해되자 그야말로 막다른 벽에 부딪히고 맙니다. 더 난감한 것은 두 남자가 살해된 메인 사건 못잖게 주변 인물들이 관련된 부수적 사건들까지 사방에서 요동치는 바람에 피아와 보덴슈타인을 혼란 속에 빠뜨린다는 점입니다.

 

이런 복잡한 설정은 때론 독자에게 도전적인 추리 욕구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때론 이야기의 향방을 모호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론 후자의 경향이 강했다는 느낌인데, 추정하자면 메인 사건 자체가 사이즈도 작고 강렬하지 못하다 보니 주변 인물들과 부수적인 사건이 애초 의도보다 훨씬 더 확장된 결과 같습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뭘 쫓고 있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고, ‘극렬 환경운동가의 도로확장 반대운동이라는 중요한 초기 모티브마저 희미해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건 마지막에 밝혀진 범인의 정체와 동기가 앞서 펼쳐진 그 복잡한 구도를 다소 허무하게 만들 정도로 단순했다는 점인데, 역자 후기에 실린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욕망은 비틀리고 걷잡을 수 없는 괴물로 변한다.”는 이 작품의 주제를 위해 그토록 많은 용의자와 부수적 사건들이 반드시 필요했던 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전작인 사랑받지 못한 여자가 복잡한 구도 속에서도 나름 하나의 방향으로 이야기가 응집됐다면 너무 친한 친구들은 왠지 갈팡질팡하다가 이야기 자체가 미궁에 빠진 듯 보였습니다.

 

시리즈 초반이라 주요 등장인물들의 개인사나 과거에 대한 설명이 자주 등장했는데, 피아의 경우 20대 초반에 겪은 끔찍한 사건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 용의자 중 한 명인 동물원 원장 크리스토프 산더와 위험한 감정을 주고받는 에피소드, 또 여성비하적인 시선을 가진 저질 캐릭터 형사와의 충돌이 눈에 띄었고, 보덴슈타인 역시 중년의 위기를 겪는 듯한 아내 코지마와의 갈등, 사춘기의 절정을 달리는 딸 로잘리와의 충돌이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이미 이 시리즈의 최근작까지 다 읽은 터라 이들의 인연이 어떻게 전개될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과거를 다시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는 제법 쏠쏠한 편이었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다음 작품인 깊은 상처는 이 시리즈의 백미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과 함께 가장 좋은 인상을 받은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리즈를 순서대로 다시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성장과 변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데, 그와 함께 작가의 성장을 미세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시리즈 초반의 두 작품이 좀 어수선했다면 세 번째 작품부터 넬레 노이하우스의 진짜 저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물론 이후에도 다소 아쉬웠던 작품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스토리 못잖게 흥미진진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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