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
카먼 마리아 마차도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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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 이 작품을 먼저 읽은 사람이 “39금 소설이라고 살짝 호들갑(?)을 떤 데다 여성의 몸과 욕망,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말해지지 않은 진실.”, “강렬한 페미니즘이 관통.”, “(금기시되었던) 레즈비언, 여성의 육체적 쾌락, 폭력, 그리고 주체성을 가진 몸에 대한 이야기.” 등 관심을 끄는 여러 매체의 호평도 있고 해서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읽은 작품입니다.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주제들이 무겁거나 가볍게, 혹은 기괴하거나 판타지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수록작마다 다양한 코드들이 동원돼서 그런지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평론가들은 사이코 리얼리즘, SF, 개그, 공포, 판타지, 우화 등 온갖 장르를 들먹이며 도대체 이 작품을 어디에 밀어 넣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론 여성과 동성애 서사를 괴담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이런 조합은 거의 본 적이 없어서 꽤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밀스런 녹색 리본을 평생 목에 매고 살며 성()에 관해 거침없고 주도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여자, 신체접촉으로 퍼지는 바이러스가 전 인류를 궤멸시키는 가운데 피난 중에도 남녀를 불문하고 육체관계를 갖는 여자, 갑자기 몸이 투명해지다가 결국 완전히 사라져버리지만 그렇다고 죽었다고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는 여자들, 그리고 동성 파트너 사이에 벌어지는 학대와 폭력 등 기담 혹은 괴담의 형식에 담긴 다양한 여성-동성애 주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에 관해 자기주도적이고 욕망을 숨기지 않는 여성도 등장하지만, 반대로 억압받거나 무기력한 여성도 등장합니다. 동성애 코드 역시 당당하고 유쾌하게 묘사된 작품도 있고 여전히 핍박받는 소수의 비극으로 그려진 작품도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뭔가를 강요하듯 주장하지도 않는 다양한 시선들은 기담 혹은 괴담이란 형식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실감을 고조시키고 공감의 폭을 넓게 해줍니다.

 

다만, 장르물을 주로 읽는 저 같은 독자에겐 좀 어렵고 난해한 대목들이 많아서 수록작 가운데 절반쯤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던 게 사실입니다. 간혹 매력적인 비유나 신선한 문장들도 눈에 띄었지만, 반대로 몇 번을 되읽어도 무슨 상황인지, 무엇에 대한 묘사인지, 작가의 의도가 뭔지 헤아릴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번역가가 산문이라기보다 시에 가깝고, 좀 과장하면 문장을 이용한 미술 또는 회화 작품에 가깝다.”고 설명한 걸 보면 원작 자체가 그런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선지 각각의 수록작에 대한 해설이 꼭 첨부됐어야 할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저 같은 독자라면 해설을 꼼꼼히 읽은 뒤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정독을 해야 이 작품의 진가를 조금이나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39금 소설도 아니고 흥미 위주로 읽을 작품도 절대 아닙니다. 지금까지 읽은 여성과 동성애를 주제로 삼은 그 어느 작품들보다 더 깊은 인상과 여운을 느낀 건 분명하지만, 스토리에만 집중하며 빠르게 페이지를 넘긴 탓에 난해함과 아쉬움이 더 많이 남기도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독자들의 서평이나 이른바 전문가들의 해설을 좀더 접한 뒤에 꼭 한 번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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