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복수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단숨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관절 마디마디가 부러진 나탈리의 시신이 발견되지만 경찰은 그녀가 매춘부라며 마약중독자의 사고사로 단정합니다. 하지만 현장출동팀의 발터 풀라스키 형사는 타살의 가능성을 직감하곤 단독수사에 착수합니다. 문제는 나탈리의 엄마 미카엘라가 따라붙었다는 점. 딸의 살해범을 찾겠다는 일념에 빠진 미카엘라는 수시로 풀라스키의 수사를 방해하지만 때론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확인한 풀라스키는 단서를 찾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합니다. 마침 빈에서는 (전작 여름의 복수에서 풀라스키와 호흡을 맞췄던) 변호사 에블린 마이어스가 곤란한 지경에 빠져있습니다. 자신의 의뢰인이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된 것입니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풀라스키와 에블린은 결국 기이하고 끔직한 사건 앞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안드레아스 그루버는 천재 프로파일러 슈나이더와 매력적인 여형사 자비네가 활약하는 슈나이더 시리즈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발터 풀라스키 시리즈역시 서사나 캐릭터는 물론 잔혹함에 있어서도 거의 비슷한 톤과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작인 여름의 복수도 마찬가지였지만, 기괴한 형태로 발견되는 희생자들, 소시오패스적인 욕망과 망상에 휩싸여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 그리고 진실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두 주인공 등 가을의 복수는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개성과 함께 독일(또는 북유럽) 스릴러의 전형성을 고루 갖춘 작품입니다.

 

주인공 발터 풀라스키는 작가의 또 다른 주인공 슈나이더와 비교하면 참 초라해 보입니다. 50대의 나이에, 천식을 앓는 이유로 수사와는 거리가 먼 현장출동팀에 머물고 있는 그는 외형만 보면 은퇴 직전의 사람 좋은 아저씨에 불과하지만, 경찰로서의 열정, 추리력, 판단력에 관한 한 슈나이더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풀라스키 못잖은 활약을 펼치는 희생자의 어머니 미카엘라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인물이자 실질적인수사를 진행하는 정말 독특한 인물인데, 굳이 비교하자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거칠고 정의로운 여전사와 비견할 만한 캐릭터입니다. 번번이 풀라스키를 곤란한 지경에 빠뜨리며 독단적으로 수사를 벌이는 그녀의 행동은 처음엔 민폐 캐릭터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뒤로 갈수록 풀라스키에게 이보다 더 멋진 파트너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진화합니다.

풀라스키와 미카엘라의 활약이 분량이나 비중 면에서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세컨드 주인공인 변호사 에블린 마이어스는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인 게 사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차고 집요한 캐릭터는 전작에 못잖게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흥미진진하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아쉬운 대목은 범인의 범행동기입니다. 독일과 북유럽 작품 중 형이상학적 또는 주술적 목적을 지닌 범인을 종종 목격하게 되는데 이런 설정은 공감하기 어려운 신비주의 또는 억지 설정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가을의 복수의 범인 역시 다분히 그런 냄새를 풍기는데, 그런 탓에 이야기에 100% 몰입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만점에서 별 1개가 사라진 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주인공도 스릴러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이 작품(한국출간 2017) 이후로 더는 발터 풀라스키 시리즈를 한국에서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검색해보니 원작 자체도 겨울의 복수’(Rachewinter, 2018) 한 편만 더 출간된 걸로 나오는데, 이 작품이라도 조만간 한국 독자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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