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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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시인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운 난설헌은 8살에 지은 백옥루 상량문으로 놀라운 재능을 세상에 알린다. 여자에겐 암흑과도 같은 시대였지만, 아버지 초당 허엽과 오빠 허봉은 난설헌의 재능을 아끼고 존중해주었다. 그러나 15살에 김성립과 혼인하며 그녀의 삶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신분 차이 때문에 갈라서야 했던 사내 최순치, 똑똑하고 당찬 며느리를 지독히 혐오한 시어머니, 열등감으로 아내에게 마음을 닫은 남편, 아버지와 오빠의 잇따른 객사, 자식들을 앞세운 상실감까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로지 시를 쓰는 일, 그뿐이었다. 규범의 족쇄와 규방 속 고통을 모두 끌어안았음에도 난설헌의 영혼은 시 안에서 자유로웠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주로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에 집착하는 편이지만 나름 역사소설도 좋아하는데, 우연한 기회에 다산북스를 통해 받은 난설헌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란 타이틀까지 갖추고 있어서 큰 기대를 가졌던 작품입니다.

허난설헌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학생 시절에 배운 여성이 글 자체를 금지 당하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빼어난 작품들을 남긴 천재 시인”, 또는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정도가 전부였습니다. 27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결혼 후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것도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들입니다. 혹시나 소설적 허구의 산물은 아닐까, 싶어 인터넷에서 지식백과들을 검색해보니 거의 엇비슷한 내용들이 실려 있었는데, 아마도 그녀가 남긴 시 속에서 그녀의 삶의 모습들을 추정한 결과 덕분이란 생각입니다.

 

작가 스스로 고백했듯 허난설헌에 대한 역사적 자료는 무척 빈약했지만 작가는 거기에 탄탄한 허구와 상상을 덧붙임으로써 불과 27년이란 허난설헌의 짧은 생을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생생히 그려냈습니다. 특히 작가가 가장 공들여 묘사한 대목, 즉 가장 봉건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그녀의 안타깝고 비극적인 운명은 성별을 떠나 어느 독자에게든 강한 인상을 남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삼종지도와 굴종만을 강요받은 것은 물론 지필묵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자신의 치마 끝자락에 시선을 고정해야 했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숙명이 유독 허난설헌에게 더 깊고 아픈 상처를 남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지닌 천재적 재능 때문입니다. 8살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시를 짓지 않았다면, 또 가족들이 그녀의 능력을 아끼고 존중해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허난설헌의 삶은 조금은 덜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수많은 족쇄와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시를 통해 자신을 잃지 않으려 한 허난설헌의 의지를 집요하고 세밀하게 그림으로써 그녀의 아이러니함을 동정하지도 않고 가련히 여기지도 않는 일관적인 시선을 유지합니다. “(허난설헌의) 시는 그 고단한 삶으로 인하여 더욱 처절하고 처연해지며 급기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작품이 된다.”라는 혼불문학상 심사평은 작가의 그런 일관된 시선 덕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실존인물을 다룬 소설이다 보니 소설 자체에 대한 서평을 쓰기가 쉽지 않지만 한두 마디만 덧붙이자면, 우선, 예스러운 비유와 정갈한 고어(古語)가 넘쳐나는 문장들은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허난설헌과 그녀 주변의 분위기를 사실적인 문장보다 더 사실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이 작품만의 특별한 매력일 수도 있지만 다소 난해하고 어지럽게 읽힐 여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실존인물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나름의 기승전결을 바라는 독자가 많겠지만 이 작품은 허난설헌의 고통스런 삶의 기록에 더 가깝기 때문에 계속 오르막이거나 반대로 계속 내리막처럼 읽힐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개인적으론 분노와 슬픔만이 엇갈리는 이야기에 가끔 숨이 막히듯 답답함을 느끼곤 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이 작품의 진짜 미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허난설헌을 모델로 삼되 조금은 통쾌하고 따뜻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100% 허구의 이야기를 바라는 독자가 제법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저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허난설헌의 꿈과 삶이 허구를 통해서라도 구현됐으면 하는 바람이 그만큼 간절했다는 뜻입니다. , 교과서에 실린 단편적인 정보 외에 허난설헌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역시 ‘100% 허구의 이야기에 대한 바람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허난설헌의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질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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