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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술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5 ㅣ 링컨 라임 시리즈 5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음악학교의 여학생, 메이크업 아티스트, 승마를 사랑하는 변호사 등 일련의 인물들이 단 하루만에 동일범에 의해 기괴한 형태로 살해되거나 그에 준하는 위기에 빠집니다. 현장에서 수거한 증거들을 분석한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범인이 마술에 능한 인물임을 확신한 것은 물론 다음 범행 현장까지 예측해내지만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견습 마술사 카라의 도움으로 범인의 윤곽을 포착한 라임과 색스는 3년 전 한 서커스장에서 벌어진 화재 참사를 범행동기로 여기지만, 이후 범인은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여 두 사람을 곤란한 지경에 빠뜨립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의 제목인 ‘사라진 마술사’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뒤 마술사처럼 감쪽같이 사라진 범인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마술계에서 이른바 ‘탈출 마술’의 대명사로 불리는 고도의 수법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또한 마지막 반전에서 밝혀지는 마술사의 비밀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사라진 마술사’의 핵심 키워드는 미스디렉션(misdirection)입니다. 의도적으로 관객의 주목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 뒤 그 틈을 이용하여 자신의 기술을 선보이는 마술사의 필수 덕목으로, 단순히 사물을 이용하는 물리적인 미스디렉션은 물론 관객의 의식까지 장악하고 오도하는 심리적인 미스디렉션도 있습니다.
유명 마술사의 이름에서 따온 말레릭이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범인은 근접, 환상, 동물, 탈출 등 모든 종류의 마술은 물론 독심술과 복화술에도 능한데다 미스디렉션의 천재로 라임과 색스를 수차례 곤경에 빠뜨리곤 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성동격서의 귀재라고 할까요? 라임과 색스는 번번이 그가 쳐놓은 미스디렉션의 함정에 빠져 엉뚱한 곳에서 허우적대다가 큰 위기를 맞이하곤 합니다. 무엇보다 말레릭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난제인데, 막판에 이르기까지 제프리 디버는 연이은 반전을 통해 독자의 궁금증을 극대화시킵니다. 숱한 착오를 겪는 라임과 색스가 그 미스디렉션을 역이용하여 말레릭을 제압할 거란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직접 읽기 전까진 좀처럼 예측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이 미스디렉션이 ‘사라진 마술사’에서 가장 아쉬운 설정이기도 한 점입니다. 사실 제프리 디버는 ‘미스터리계의 미스디렉션의 장인’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반전과 트릭에 관한 한 1인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뿐 아니라 다른 시리즈나 스탠드얼론에서도 그의 미스디렉션은 매번 독자를 희롱하다가 큰 충격에 빠뜨리곤 합니다. 그런데 ‘사라진 마술사’의 미스디렉션은 다소 과도하게 설정된데다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도 많아서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생각입니다. 좀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만일 말레릭이 애초 자신의 목표에만 매진했다면 오히려 완전범죄를 쉽게 이뤄낼 수 있었을 텐데, 괜히 미스디렉션을 복잡하게 이용하는 바람에 모든 걸 망쳐버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거듭되는 반전을 맛보는 쾌감은 짜릿했지만 말레릭의 납득하기 힘든 행동과 범행 때문에 이내 의아해진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말레릭 못잖게 눈길을 끈 인물은 견습 마술사이자 말레릭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선한 마술사’ 카라입니다. 마술이 단순히 오락이나 눈속임이 아닌, 과학과 예술과 심리학의 영역에 닿아있음을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물론 말레릭의 내면과 미스디렉션에 대해 결정적인 조언을 건네기도 합니다. 천하의 라임마저 감동시킨 카라의 마술은 마지막 반전에도 등장하는데, ‘링컨 라임 시리즈’의 팬이라면 앞선 작품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미묘한 흥분과 여운까지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스디렉션 얘기만 하느라 정작 내용에 대해선 별로 언급 못했는데, 라임과 색스를 감쪽같이 속인 말레릭의 미스디렉션 자체가 모두 스포일러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만, 매 장면마다 “이걸 믿어야 돼? 말아야 돼?”라며 고민하며 마지막 장까지 달려야 하는 건 독자로선 나름 ‘즐거운 고문’이라 할 수 있으니, 가급적 줄거리나 다른 분들의 서평을 접하지 말고 바로 본편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