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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가 잠긴 방 - 기시 유스케 밀실 사건집
기시 유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9년 2월
평점 :
지금까지 기시 유스케의 작품 여섯 편을 읽었는데, ‘검은 집’과 ‘악의 교전’을 비롯하여 전부 그의 ‘전공’인 호러물입니다.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중도 포기한 게 ‘미스터리 클락’(한국 출간 2018년)인데, “기시 유스케가 밀실트릭 본격 미스터리를 썼다고?”라는 호기심에 도전했지만 첫 수록작만에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책장에 방치 중인 기시 유스케의 작품 중 한 편을 집어든 게 ‘자물쇠가 잠긴 방’인데, 읽으면서 문득문득 ‘미스터리 클락’이 떠오르긴 했지만, 두 작품이 같은 주인공이 이끄는 시리즈물이란 건 다 읽고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을 본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방범 컨설턴트라지만 왠지 범죄자의 인상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에노모토 케이와, 밀실 사건과 유독 인연이 깊은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 아오토 준코는 네 편의 단편을 통해 누구도 풀어내지 못할 것 같은 복잡하고도 정교한 밀실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회사 사장이 기이한 형태의 사체로 발견된 외진 산장,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던 한 고교생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사망한 공부방, 건축업자가 뒤통수가 깨진 채 발견된 부실하게 지어진 신축 주택, 그리고 연극이 한창 공연 중이던 상황에서 한 배우가 살해당한 무대 뒤편 대기실 등 사건이 벌어진 곳들은 그 누구도 깨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완벽한 밀실입니다. 하지만 에노모토와 아오토는 사건 관련자들의 의뢰를 받고 비공식적인 현장 조사를 벌여 범인이 구축한 완벽한 밀실을 보기 좋게 해체합니다.
변호사 아오토가 계속 헛소리 취급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추리를 주장하며 일견 독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이라면, 방범 컨설턴트 에노모토는 예리한 관찰력과 방대한 지식을 토대로 밀실 트릭의 허점을 명확하게 밝혀내는 인물입니다. 사건은 잔혹하고도 복잡하지만 두 사람이 주고받는 밀당은 마치 만담의 한 장면처럼 웃음을 유발하곤 합니다.
수록작 대부분은 처음부터 범인을 공개합니다. 여러 용의자 가운데 진범을 찾아내는 짜릿한 미스터리 서사가 아니라 오로지 밀실 트릭 그 자체에만 순수하게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가능성은 전혀 생각할 수 없으니 독자 입장에선 범행현장에 관한 정보를 바탕으로 작가와 두뇌싸움을 벌여 트릭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빨리 포착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다만, 밀실 트릭의 마니아라면 에노모토가 난공불락 같은 트릭을 깨부수는 과정에 희열을 느끼며 몰입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소 억지스럽고 결과론처럼 읽히는 그의 추리에 좀처럼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특히 복잡한 이과 지식이 동원된 추리라든가 도면을 보고도 이해하기 힘든 범죄현장에 대한 설명, 또 “저렇게까지 트릭을 고안해낼 수 있을까?”라는 위화감은 사건이 모두 해결된 뒤에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찜찜함을 남기곤 했습니다.
7년 전, ‘미스터리 클락’을 중도 포기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인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선지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었지만 기시 유스케의 밀실 트릭 미스터리는 제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새삼 재확인하게 됐습니다. 한 가지 문제(?)라면 ‘에노모토 시리즈’의 첫 작품인 ‘유리망치’가 제 책장에 오랫동안 방치중이라는 점인데, 그래도 일단 제 손 안에 들어온 이상 언제가 됐든 읽긴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자물쇠가 잠긴 방’의 아쉬움이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질 때까진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말입니다.
- 참고로 ‘에노모토 시리즈’(일본 시리즈 명 ‘방범탐정 에노모토’) 출간순서는 ①유리망치 ②도깨비불의 집 ③자물쇠가 잠긴 방 ④미스터리 클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