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아이 하나 낳고
웅큼 머리카락 빠져 나갔다
아이 또 하나 낳고
웅큼 웅큼 머리카락 빠져
온데로 흩어진다
발을 옮길 때마다
손이 머리에 닿을 때마다
옷을 벗고 입을 때
머리를 숙이고 울거나
머리를 젖히고 웃을 때에도
머리카락은 신이나게 달아난다
아이 둘 낳기 전
아이 하나 낳기 전
내가 사랑에 빠지기 전
튼실하게 붙어있던 머리칼처럼
탱탱하던
꿈도 더불어



육십이 훨씬 넘으신 김선생님 화장실에 시집이 있었다. 여류시인의 것이었는데 내 나쁜 머리가 기억을 못한다. "시집이 있네요... 화장실에.."라고 말했더니 "내가 시를 좋아해. 한 30년 넘게 시도 써오고..." 하셨다. 미국에 와서 이런분을 만나다니 퍼뜩 반가웠다. 후루룩 다가가고픈 마음이 솟아 올랐지만 그분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란 되새김이 나를 자제 시켰다. 육년차에 접어드는 미국생활 부작용이다. 간혹 오늘처럼 현재 감성 지수가 떡이란 게 분명한 날은 "언제라도 차마시러 놀러와..." 하셨던 그분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힌다. 곱게 싸인 흰눈 사이를 가로질러 지금이라도 그분과 수다를 떨러 가고 싶다.

둘째 아이를 낳았을때 내 우울증 수치는 최고였지 싶다. 수치가 최고가 아니었을 때라고 호락 호락 했던건 결코 아니지만. 세상 모든 일이 내 우울증을 북돋기 위해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끄적였던 시다. 올해 하기로 한 일을 정리할 공책을 찾고 있는 중에, 대학때와 짧은 기자시절 인터뷰 취재용으로 쓰던 두툼한 탈색된 공책이 눈에 띄었다. 그걸 펼치니 반도 다 쓰지 못한 그 공책 중간 쯤엔 가뭄에 단비처럼 만들었던 시들이 모아져 있었다. 초고 상태로. 문득 그 시절이 다시 떠오른다. 오늘의 내가 그때의 나와 별 다르지 않으니 그 이후로 십년에 가까운 나이를 더 먹었어도 이모양인가 다시 우울한 한숨만 더할 판이다.

꿈이 다 떠나간다고 생각한 게 십년전인데 지금도 나는 그 꿈의 꼬리를 놓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슬프다. 답은 없고 겨우 아는 건 내가 동물과 신 사이에 위치한 인간이라는 것 뿐. 영혼이 외롭다는 건 이런 사실들이 한꺼번에 자각될때고 내 영혼을 닮은 친구가 그립다는 건 내가 꿈에서 멀어졌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시를 읽던 친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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