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얄미운 반값도서의 법칙.
맘먹고 찾아보면 살 것 없고
책 안 사야겠다 싶으면 눈에 콕 찝힌다.

 

 

 

<축의 시대> 역시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반값도서. 지난 6월 29일, 월말까지 설마 또 책을 사랴 안심하고 있었더니만 우연히 '이달만 반값'을 클릭하는 바람에 즉시 사버렸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알라딘 13주년을 맞아 7월 내내 반값도서로 등극...ㅠ.ㅠ 사실 카렌 암스트롱의 저서는 진작부터 <신을 위한 변론>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하지만 과학vs종교 논쟁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 보류하고 있다가 <축의 시대>를 발견, 이 책이 오히려 주저서라고 할만큼 탄탄한 내용을 갖추고 있어 사려고 별렀었다. <축의 시대>는 동서양의 고대종교가 집약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방대하고도 대단한 책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7년이나 수녀였다가 무신론자가된 종교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이다. 나는 단순한 무신론자나 유신론자의 책보다는 이렇게 변화를 겪은 이들의 책을 더 선호하는 편인데, 양편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모두 갖췄다는 면에서 균형잡힌 시각을 기대할 수 있고 양편의 합리성과 비합리성에 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축의 시대>가 유신론대 무신론에 관한 내용은 아니지만 저자의 독특한 이력은 책 속에 내재하리라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교와 철학의 접점에서 인류의 사유혁명이 진행되었던 과정을 지켜볼 수있을 것이기에 기대된다.

 

 

 

반값도서의 맛을 짭짤하게 보고 나니 <내면기행>이라는 책도 반값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물론 읽고 싶은 책들이 모두 반값이라면 좋겠지만 실현될 리는 만무하고, (나 홀로지만) 소박하게 이 한 권에 가능성을 걸어본다. <내면기행>은 우리나라 선인들의 '자찬묘비명'을 고증해 총망라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책인데, 제목은 전혀 다르지만 한 쌍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좋았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는 왕이나 선비뿐만 아니라 중인, 예술가, 승려 등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자서전(문학양식도 제각기다)을 엿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위인전과는 또 다른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게다가 이들의 대부분은 '위인'도 아니다) 것이 장점이었다. 묘비명과 자서전...이 콤비라면 삶을 돌아보기에 충분한 자극제가 되어주지 않을까?

 

 

 

 

 

6월에 샀던 책들을 잠시 살펴보니 특이하게도 과학분야의 책이 3권이나 된다.

뒤늦게 혼자만 과학의 달을 맞이한 듯.^^;


<기하학과 상상력>은 중고샵에서 건진 월척이다. 세상에나 고마워라, 누가 이런 책을 중고샵에 팔았을까? 기하학에 관한 책은 정말 드문 편인데 여기에 '상상력'까지 보태졌으니 정말 홀깃하다. 여기서 상상력이란 도형의 상징성을 떠올리고 확장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각적 상상의 도움을 받아 개념과 계산에 얽매이지 않고도 연구를 위한 기하학적 윤곽을 집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이상, 작은 따옴표 부분은 책의 내용을 축약한 것). 물론 책 속에는 수학공식들이 도처에 등장하지만 이것은 계산 없이 상상력으로만 해석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니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하지만 새삼 수학의 정석을 복습할 필요는 없을 듯.

 

 

<현대물리학, 시간과 우주의 비밀에 답하다>는 현대물리학의 난제 중 하나인 '시간의 화살'을 다룬다고 하여 잠시 의아했다. 사실 이 용어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을 통해 접하게 된지라 지질학 분야의 개념인 줄 알았는데, 내가 번지수를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쨋든,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인데다 빅뱅이 우주의 시작은 아니라는 주장, 그리고 상대성이론, 입자물리학, 다양한 현대우주론 등 융합과학의 향연이라는 면에서 분명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우주의 풍경>은 끈 이론 창시자의 한 사람이라는 레너드 서스킨드의 저서이다. 끈이론과 메가버스라는 개념으로 우주의 생명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하는데, 이 이론이 등장하던 무렵부터 과학에 관한 새 정보를 제대로 업데이트하지 못한 까닭에 작심하고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들었다. 게다가 <우주의 풍경>을 구입한 직후 힉스입자(일명 신의 입자라고도 하는)를 발견했다는 기사가 뜬 것을 읽고 나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을 빨리 쫓아가야겠다는 조바심(?)마저 든다.

 

 

6월의 충격탓일까? 그래도 7월에는 <신의 뇌>, <미적분 다이어리>와 같은 과학/수학분야의 책들을 읽었다. 물론 우주, 물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그동안 읽은 책들과는 전혀 다른 분야라 신선했다(비록 아쉬운 점도 있지만...). 먼저 <신의 뇌>는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였다. '신의 뇌'라고 하기에 신의 말을 듣고 영적인 체험을 가능케하는 뇌의 부분을 다루는 줄 알았더니 심리학과 진화론에 관한 내용이 태반이고 뇌와 호르몬에 관한 부분만 조금 '과학적'으로 들린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뇌과학의 중요 연구결과를 정리하면 100페이지도 채 안된다는 사실..@.@ 아직 한참 미개척분야가 아닌가 싶었고, 종교에서 말하는 '영(靈)'이란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까지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은 영장류인 침팬지를 통한 관찰과 임상실험을 위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고, 내가 기대했던 것과 가장 유사한 정보는 '신의 뇌'라는 것이 세로토닌과 관련돼 있다는 정도였다. 아무래도 인간의 뇌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다는 것엔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인 듯하다. <미적분 다이어리>는 정말 읽으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재치와 유머가 어찌나 대단하던지 이런 내용을 직접 강의로 듣는다면 웃다가 꼬꾸라질 것 같다. 머리아픈 공식이나 계산같은 것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그림을 통해 간결하고 쉽게 '그 어마어마한 미적분'을 잘 설명해 준다. 미적분을 가지고 일상에서 뭘할까, 싶겠지만 이 책을 열어보면 도로주행, 카지노, 다이어트 등 다양한 측면에 활용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저자의 입담이 너무 좋은 탓에 전체 페이지의 1/3은 수다에 할애되고 있음이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미적분과 관련된 학자들의 생애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쉽게 읽히며 재미있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핵심에 도달하기까지 좀 산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쨋든 골치아프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

 

 

 

 

 

 

 

 

 

 

 

 

 

 

 

 

이밖에도 7월엔 심리학에 관한 책 2권, 교양심리학과 자기계발을 모두 포괄하는 책 2권을, 매우, 빠르게, 단숨에 읽어버렸다. 먼저 심리학 분야는 <내가 말하는 진심, 내가 모르는 본심>과 <나는 왜 상처받는 관계만 되풀이하는가>. 심리학에 관한 책은 3년전에 꽤 많이 읽어서 작년 이맘때 쯤 <마음 작동법>(심리학의 한 획을 그은 대단한 책이라더라..)을 끝으로 그만 읽어야겠다 싶었는데, 새록새록 등장하는 심리학 책들을 보니 요즘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괜스레 궁금해졌다. 이 중 <내가 말하는...>은 방어기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이 책은 자신이 어떤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바람직하게 다룬(방어막을 제거한) 사례와 함께 읽어가며 자신을 비춰보게 한다. 이렇게 질문(혹은 체크리스트)과 사례를 병행하며 스스로를 확인해 볼 수 있게 하는 방식은 요즘 대중적인 심리학 도서의 경향인 것 같은데, 실상 이것이 얼마나 유용할지는 의문이다. 심리상담사도 오랫동안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심리상담을 받아 어느정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만 타인을 왜곡없이 볼 수 있다고 한다(그래서 어떤 학교의 경우 심리상담 '받기'가 필수코스 중 하나다). 물론 자기 자신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전적으로 자가진단이 옳다면 심리상담소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므로, 너무 자가진단 테스트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음으로 <나는 왜 상처받는...>는 보다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의 예이다. 일상에서 관계가 껄끄럽다든지, 성격이 모났다든지 하는 문제와는 좀 다르다. 예를들어 어릴 적 성폭력을 당해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경우,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어머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년 남자 등 어느정도 '심각한' 관계상에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다룬다. 대체적으로 B형 트라우마(여기서 B는 Brutal의 약자였던 것으로 기억...가물가물한 기억...ㅠ.ㅠ)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일반적인 대인관계를 예상하고 읽는다면 조금 실망할 듯하다.

 

별로 기대 안하고 읽었는데 의외로 좋았던 책은 <왜 나는 항상 결심만 할까>였다. 자기계발서란 속된 말로 '영양가 없는 책'이라는 취급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 책은 심리학, 생리학, 뇌과학, 진화론의 관점에서 상세하게 '의지력'의 실체를 더듬어 가며 말 그대로 '의지력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째서 충동적으로 쇼핑을 하는지, 그 때 뇌에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 무엇과 닮았는지 알게된다(무엇과 닮았을까? 만족감을 얻기 위해 발이 상처입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전기충격 버튼을 눌러대는 쥐와 닮았다). 뿐만아니라 의지력의 수준이 높은 생활을 유지하게 되면 그것이 다른 부분에서의 의지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과 '식욕'에 관한 의지력 만큼은 다른 의지력과 상당히 다르다는 다소 안심스러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사실 '자기절제와 인내심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지력의 재발견>보다는 <왜 나는 항상...>에 더 어울릴 것 같다. <의지력의 재발견>의 경우 보다 풍부한 과학적 실험과 연구결과들을 보여주는데, 너무 심도있게 파고 들어가다 보니 솔루션부분이 좀 약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두 책 모두 자기계발서라기 보다는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가 종횡무진하는 인문교양서에 더 가깝게 느껴졌고, 내용도 거의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기대하고 있는 책은 <일반의지 2.0>과 <대목장 신응수의 목조건축 기법>이다. 의지력에 관한 책을 읽고 책 사기를 덜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이 중 <대목장 신응수의 목조건축 기법>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당장 사지 않고 올해 안에 사자고, 충동을 뒤로 미루는 수법을 잘 활용하고 있을 뿐.^^

 

 

 

 

 


<일반의지 2.0>은 또다시 의지력에 대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으로 유명한 아즈마 히로키의 정치사상서로 '소통없는 민주주의'에 대해 논한다. 헉, '소통'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이것을 없애다니...일단 책을 쓴 의도부터 독특했다. 그런데 '데이터베이스'가 등장하는 것을 보니 정보화 시대의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될 듯하다. 책 소개에 목차가 전혀 없어 답답하지만 '정보환경에 새겨진 행위와 욕망의 집적, 사람들의 집합적 무의식=일반의지에 충실해야만 할 것이다'만 봐도 이를 통해 어떻게 민주주의를 펼치자는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대목장 신응수의 목조건축 기법>은 책을 본 순간 감탄부터 했다. 이전에도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이나 <한옥 짓는 법>을 보면서 한국건축이 선전하는 모습에 무척 반가웠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이신 신응수옹께서 이런 책을 내셨다는 자체가 기적같이만 느껴졌다. 이 책은 그가 '수원 화성, 창덕궁, 경복궁, 숭례문 등 중요한 문화유산을 복원.보수하면서 연구하고 배운 옛 장인들의 기법과 50여 년의 목수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개발한 건축술을 총망라한 책'이라는 설명인데, 축조과정까지 잘 정리된 사진으로 실려있어 마냥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2주 전부터 쓰기 시작했던 페이퍼를 미적거리는 동안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되어 지금 급! 읽고 싶은 책으로 떠올랐다.
대선후보로서의 안철수. 반갑고도 기대되는 인물이지만 일단 그의 출마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다.

 

그간 바빠서 뜸한 사이, 책의 세상에는 또 이렇게 대단한 일이 벌어졌구나...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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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7-2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된 책 모두 마음에 드네요.

탄하 2012-07-26 00:41   좋아요 0 | URL
앗! 마립간님이시닷! 오랜만이네요.^^
이번엔 수학/과학분야의 책들도 꽤 많은 편이죠?
아마도 마립간님 서재에 드나들었던 여파이지 싶은데요.

라로 2012-07-26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의 시대]라는 책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가 인생의 책 5권 중 한 권이라고 고르셨더라고요.
그 기사보고 저도 [축의 시대] 사서 읽으려고 결심했는데 반값이군요!!!
금방 주문했지만 7월까지니 얼른 주문해야겠어요!! 힛

탄하 2012-07-27 00:3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뤼야켈레벡님.
책을 산 것이 아주 뿌듯해지는 소식이네요.^^
제가 책 지름신쪽에 깃털 하나를 얹은 것이 아닌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13주년 행사까지만 반값이라니 이 기회를 그냥 보내기가 참..아깝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