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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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지나 희망으로

─유이제의 『터널 103』을 읽고

어둡고 캄캄한 터널을 지나 기어이 희망으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피부가 없는 괴물과, 그런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인간을 적나라하게 전시함으로써 기어코 희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어떤 상징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유이제의 소설 『터널 103』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검은과부거미섬'의 사람들은 피부가 없는 괴물 '무푸귀'를 피해 해저 터널 안으로 몸을 숨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터널 안에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밖으로 탈출해 보려 노력하지만 한쪽은 차폐문으로 막혀있고 다른 한쪽은 괴물들이 득실거려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된다. 그런데 그때, 한 소녀가 자진해서 터널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한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어둡고 캄캄한 세상 속에서도 희망의 끊을 놓지 않고 함께 살길을 도모하려고. 소녀는 안과 밖의 경계가 삶과 죽음의 경계이기도 한 디스토피아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특수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보편적인 이야기는 대개 사람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유이제의 『터널 103』이 그러하다.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사건 앞에서 인간의 마음은 과연 한결같을 수 있을까. 견고해 보이기만 하던 터널도 언젠가는 무너진다. 유이제는 『터널 103』을 통해 시시각각 변모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며 괴물이 있는 바깥 세계와 괴물은 없지만 누가 괴물이고 누가 괴물이 아닌지 알 수 없는 안쪽 세계의 경계를 허물어트린다. 희망을 놓는다는 것은 삶을 포기한다는 선언과도 같다. 그러니 한 번쯤은 '터널을 지나 희망으로' 나아가는 소녀의 여정을 따라가보자. 볕들 날 없는 세상일지라도 어디선가 윤슬 한 조각이 반짝이고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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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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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언어로 기억되는 이야기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고

1.

소설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책 뒤편에 실려있는 '작가의 말'을 살펴보는 것이다. 소설을 쓸 때에 작가의 마음과 쓰고 난 이후에 작가의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혹은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지 가늠해 보는 일이 내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전에 몸과 마음을 예열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는 넷플릭스 영화 개봉에 맞춰 새로 개정되어 나온 리마스터판이었기에 두 개의 '작가의 말'이 수록되어 있었다. 2011년 4월에 작성된 '작가의 말'과 2024년 초입에 작성된 '새로 쓴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사이에 위로와 공감, 연대를 향한 작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는 '새로 쓴 작가의 말'에서 "『로기완을 만났다』를 쓰면서 공감을 믿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상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몸이 서서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예열 단계에서 이미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2.

작가인 '나'의 시점에서 탈북인 로기완의 삶을 추적해가는 이 소설은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한 인물들의 여정을 담고 있다. 연민에서 시작된, 선의의 마음으로 행했던 일이 타인을 곤경에 빠트리게 되자 '나'는 극심한 죄책감에 빠진다. 그러다 우연히 어느 한 잡지에서 탈북자 로기완의 이야기를 접하고, 얼마 뒤에 그의 일기를 손에 넣게 된다. 어머니의 시신을 팔아 번 돈으로 벨기에로 향한 '로기완'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나'는 외면해왔던 내면의 죄책감과 다시 마주하며 근본적인 삶의 이유를 되짚어본다.

소설 속 '나'가 비관적인 전망으로 온통 둘러싸여 있는 '로기완'의 시간을 되짚어가는 동안 현실의 내가 발견한 것은 치유의 가능성과 증여되는 연대의 가치, 공감으로 이어지는 위로의 언어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무엇보다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가는 '나(이니셜 K)'와 '로기완(이니셜 L)'의 삶이 실패를 감내하면서까지 독자에게 증여될 순간을 끝끝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게 참 좋았다.

3.

소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오늘 나는 그에게, 이니셜 K에 대해 해줄 이야기가 아주 많다."

4.

조해진을 읽을 때마다 나는 여러 번 마음이 무너지곤 하는데, 『로기완을 만났다』에서는 아래 문장들이 그러했다.


"타인을 관조하는 차원에서 아파하는 차원으로, 아파하는 차원에서 공감하는 차원으로 넘어갈 때 연민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자신의 감정이나 신념 혹은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

"내가 믿어왔던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순간, 나 역시 불우한 땅을 딛고 있는 가엾은 존재가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게 됐다." (p.64)

"감정적 차원의 진실이란 한순간에 급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추억을 헌납하며 조금씩 만들어가는 공유된 약속일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 시간이 조심스럽게 준비해 놓은 구체적인 사건들도 있어야 한다. 사랑이란 언어가 그 모든 것을 보듬어준다고는 믿지도 않았고, 이제부터 연인이 되자는 식은 선언은 유치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을 관통한 후에 손안에 들어온 서로에 대한 신뢰감, 이 사람이라는 안도감, 시시콜콜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일과 일상, 그런 것들만이라도 나는 충분했다." (p.72~73)

"가장 아픈 진실은 그 모든 것이 다만 우리의 선택이었다는 것, 그것이다." (p.74)

"희망은 하나여서 절박했고 절망은 그 후를 약속해주지 않아서 두려웠다." (p.108)

"어떤 사람에겐 위로도 뜻대로 해줄 수 없다. 그 위로의 순간에 묵묵히 소비되는 자신의 값싼 동정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무엇으로도 치환되지 못한 감정은 이렇게 때때로 단 한번도 조우한 적 없는 타인의 삶에서 재현되기도 한다." (p.112)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죽은 자들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환멸과 눈물도 희생자의 수치, 그 체온 없는 수치로 수렴되어 추모의 비문(碑文)도 없이 매장되었던 것이다." (p.122)

"나의 한계에 대해서 적어도 나만은 침묵할 자격이 있다는 믿음은 그러나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p.138)

"그러나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타인의 고통이란 실체를 모르기에 짐작만 할 수 있는, 늘 결핍된 대상이다." (p.151)

"우리가 사랑의 고백에 인색했던 것은 더없는 행복, 완벽한 충만, 한순간의 천국 대신 다만 끊임없이 우리 사이의 불충분과 관계의 결여를 원해서였던 것뿐이라는,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 사랑의 정체성이라는 그런 말을 간절하게 듣고 싶다." (p.205)

"타인과의 만남이 의미가 있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삶 속으로 개입되는 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p.209)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p.222)

"소설은 독자에게 닿기 전에 작가를 꿈꾸게 하고 살게 합니다" (새로 쓴 작가의 말中)

"믿고 싶다. 결국엔 위로의 언어로 기억되기 위해 쓰여지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작가의 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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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열두 세계 포션 6
이산화 지음 / 읻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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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세계들의 변형과 확장

─이산화의 『전혀 다른 열두 세계』를 읽고

팬데믹을 지나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세계관'이라는 말이 새롭게 부상했다. 이제는 신선하고 매력적인 세계관 하나가 여러 갈래로 뻗어 다양한 형태로 대중들과 접촉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출판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장르적인 특색이 강한 SF/판타지 소설 분야에 있어서 '세계관'은 작품의 뼈대가 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므로 이산화의 『전혀 다른 열두 세계』를 논하는 데에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요즘에는 '세계관'이라는 말이 대개 작품을 이루는 시공간적 배경을 뜻하는 용어로 쓰이는데, '세계관'에서 '관'이 볼 관(觀) 자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나는 그 말을 '작품 속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까 작가에 의해 창조된 작품 속 세계가 있으면 그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 혹은 독자의 시선이 곧 '세계관'이라는 말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하나의 세계관에서 보다 다양한 해석이 파생될 수 있기에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으며 지금도 작가들이 만들어낸 작품 속 세계를 나만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이산화의 초단편소설집 『전혀 다른 열두 세계』에서는 작가의 세계'관'(觀)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전혀 다른 열두 세계'를 그리고 있는 열두 편의 짧은 이야기는 저마다 고유한 (시공간적 배경으로서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따라 읽다 보면 문득 '또 어떤 다른 세계가 가능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겨난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즈음 나는 ('작가의 말'이라는 탈을 쓰고) 각각의 작품을 해설하고 있는 「열세 번째」를 읽고 있었는데, 얼마 못 가서 교묘하게 설치해둔 작가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름 아닌 마지막 이야기에서 다음 세계를 상상하는 일이 나의(독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었으니까.




이제는 이 책을 통해 작품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세계'관'(觀)이 전혀 다른 세계들의 변형과 확장으로 이어질 차례이다. 이산화가 그려낸 '전혀 다른 열두 세계'의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가 소설 속 세계에서만큼은 무한히 펼쳐지듯이, 우리의 시선 또한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그리하여 또 다른 세계의 문을 마주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열어젖힐 수 있는 용기가 지금─여기에, 내게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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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의 오리무중 트리플 23
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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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일을 마주할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역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내게는 그 말이 새로운 가능성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가만히 곱씹다 보면 불가해한 일련의 사건들조차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게 된다.

또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먼저 적어놓고 나면 그 뒤에 따라오는 문장은 대개 희망적으로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연대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찾아왔던 것 같다.

박지영의 소설집 『테레사의 오리무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 너머의 무엇이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아도 희극적인 사건 안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비애만큼은 기어코 독자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역에 머무르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소설 속 인물들을 일컬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대신, 복잡성을 가진 상태 그 자체로 한계를 일임하면서도 아주 본원적인 연대의 가치를 놓지 않는다"라는 선우은실의 해설과도 맞닿아 있는데, 그 때문인지 나는 박지영의 소설을 접하는 동안 여러 번 내가 찾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다수와 소수가 뒤집히며 옳고 그름의 자리가 순식간에 반전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 매번 성 테레사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결책은 간단했다. 자아를 집에 두고 출근하면 된다."

「테레사의 오리무중」 中



성당 부속 센터에서 일하는 주인공, 테레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첫 번째 소설 「테레사의 오리무중」은 일명 '자아 분리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함께 일하는 중간 관리자 주경과의 일화를 통해 테레사는 자신이 자아를 분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러 개의 자아와 함께 살아간다. 자아를 분리하여 꿈을 이루고자 하지만 막상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주경에게 돈을 빌려 도망쳐 버린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나의 자아란 왜 이토록 유사하고 이토록 빈약한가"라고 말하는 테레사의 고백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소설 「올드 레이디 버드」는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유일한 미발표작이다. '영우'라는 인물과 '정'이라는 인물의 미묘한 관계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고양이'라는 매개를 통해 두 사람의 시선과 그에 따른 차이를 드러낸다.

정은 영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알잖아요? 진짜 어려운 건 누구도 다치지 않는 타협이라는걸." 영우는 생각한다. 자신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아버지 독고 씨의 죽음(장례식)을 사업화하여 판매한다는 기발한 설정이 바탕에 깔려있는 세 번째 소설 「장례 세일」은 그의 장남인 현수가 벌이는 일종의 '노동 소설'이다. '세일즈맨'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수는 장례식장에서 일하면서 직원 가족이 상을 치르게 되면 30%를 할인해 주는 혜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가 할인 혜택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일하고 있는 장례식장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급기야 현수는 아버지의 지인들에게 감사 메시지를 거짓으로 꾸며 보내기에 이르고, 얼마 뒤 아버지 독고 씨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자 메시지를 받은 많은 이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온다. '죽음 세일즈' 그게 바로 현수가 원했던 것이다.

우스우면서도 서글픈 세 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앞서 말했던 이상한 가능성의 너머를 가늠해 보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다름 아닌 구원과 연대의 가능성이지 않을까. 박지영의 인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삶의 지향점과 그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니까. 가능성의 지표를 되짚어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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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뇌 변호사 NEON SIGN 3
신조하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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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심'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가, 그러니까 인간이 정의 내리는 것은 웃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이보그라면, 인간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계, 안드로이드라면 어떨까.

여기 실리콘 뇌를 이식받은 사이보그가 있다. '무뇌 변호사'라 불리는 그는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사건을 파헤치고 상대의 의중을 헤아린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치 않다. 부당한 억압 속에서 버려지고 폐기되며 무력하게 살아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명령을 따라서. 인간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인간 같지 않아서. 지나치게 인간 같아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과 같은 기계들의 죄를 "변호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같은 생존 욕구를 감각하지 못하므로. 그들을 창조해낸 우리가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우월한 존재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때, 그 순종이 완벽할 때 닥칠 위험을. 설마 기계를 고양이같이 길들이려고 했던 걸까?

p. 164




신조하의 장편소설 『무뇌 변호사』는 한 인간을 지켜나가는 안드로이드의 이야기( 「피 흘리지 않는 제물」)와 주인과 한 몸이 되어버린 로봇의 이야기( 「복종하는 뇌」), 딸과 함께 성장하면서 사랑이라는 감각을 깨우친 인물의 이야기(「기억과 유전자의 밤」)가 한데 모여있는 집합체이다. 책 속에서 기계의 반란은 인간을 덜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의 발악은 기계를 더 기계답게 만든다. 그런데,

나는 문득 그런 것이 궁금하다. 정말 '책 속에서'만 그러는 것일까?

신조하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기적이고 욕심은 많지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어서 기계로부터나마 사랑을 갈구하는 그런 존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처음으로 돌아가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에 대한 답을 해볼 수 있을 듯하다. 자기 안의 사랑이 부족할 때, 그때 인간의 이기심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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