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펙토르의 시간
엘렌 식수 지음, 황은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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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오는 텍스트

─엘렌 식수의 『리스펙토르의 시간』을 읽고

모든 텍스트는 우리에게 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 또 모든 텍스트는 우리에게 다가옴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잊히지 않는 화음처럼 쏟아지는 텍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경이롭기까지 한데, 그 이유는 우리가 그 텍스트를 비로소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엘렌 식수가 완성시킨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에 대한 책 『리스펙토르의 시간』은 총 3부로 나뉜다.

문학적인 메타포를 통해 리스펙토르에 대해 얘기하는 「오렌지 살기」

1부(오렌지 살기)와 3부(진정한 저자)를 잇는 「사과 한 알의 빛으로」

이후에 오는 모든 리스펙토르의 텍스트를 통해 삶과 시간을 역행하는 「진정한 저자」

엘렌 식수와 리스펙토르의 조화는 글쓰기라는 가난한 행위를 부유하게 만든다.


엘렌 식수가 바라보는 리스펙토르. 엘렌 식수에게 가닿아 비로소 완성된 리스펙토르의 이야기.

'여성적 글쓰기'라는 자신만의 글쓰기 개념을 고안해 스스로 다른 차원의 유니버스를 창조한 엘렌 식수.

엘렌 식수가 바라본 '진정한 저자' 리스펙토르. 그를 향한 엘렌 식수의 강렬하면서도 뜨거운 예찬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무겁고 느린 그녀의 문장이 내 심장을 누르며 걸어간다. 사색적인 짧은 문장으로, 생각에 잠긴 채, 그녀가 나아간다.

때로는 아주 멀리까지 가야 한다.

때로는 극도로 멀어지는 것이 적당한 거리다.

때로는 극도로 가까운 곳에서 그녀가 숨쉬기도 한다."

p.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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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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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시간

─앨런 라이트먼의 『아인슈타인의 꿈』을 읽고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작가인 앨런 라이트먼. 그의 소설 데뷔작인 『아인슈타인의 꿈』을 읽었다. 서른 번의 꿈같은 이야기가 모여 시간과 공간,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관념의 세계를 모조리 파괴한다. 파괴함으로써 재건의 기회를 선사하고, 상상력이라는 재료를 더해 기어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기억이 없는 세계는 현재의 세계다. 과거는 책 속에서만, 기록 속에서만 존재한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제각기 자신의 일기책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거기에는 자기 인생의 역사가 가득 적혀 있다. 날마다 그 책을 읽어서 자기 부모들의 신분을 다시 알아내고, 자기가 귀족 태생인지 천민 태생인지,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살아오면서 뭔가 이룩해 놓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일기책이 없으면 그 사람은 스냅사진이나 2차원의 인상, 유령과 다를 바가 없다.

p. 83


과학적 상상력과 문학적 미학성이 더해진 시공간에 대한 사유는 '꿈과 시간'이라는 무경계 지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짧고 굵직한 서른 편의 이야기 사이(인터루드)에는 아인슈타인과 그의 절친인 베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다가 인상적인 일화 하나를 발견했다.

1955년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죽기 몇 주 전, 자신의 절친 마이클 베소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음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확신을 가진 물리학자들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은 그저 환상에 불과합니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미래가 고정된 세계에서 인생은 끝없이 방이 늘어서 있는 복도와 같다. 매 순간 방 하나에 불이 들어오고 다음 방은 아직 어둡지만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한 방에서 다음 방으로 걸어가 불이 켜져 있는 방을, 현재의 순간을 들여다보고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어떤 방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안다. 우리는 우리 삶의 구경꾼이다.

p. 149



시간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앨런 라이트먼의 『아인슈타인의 꿈』은 그 진부한 생각을 문학으로 승화시킨다. 우리는 각자만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저마다의 무수한 시간이 어떤 형태로, 어느 궤도에서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꿈과 시간은 없다. 그러나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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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
앤 카슨 지음, 윤경희 옮김 / 봄날의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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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이 된 서첩의 물성

─앤 카슨의 『녹스』를 읽고

여기 ‘광기’라는 이름으로 해석되는 책이 있다. 사진이나 그림을 아무렇게나 이어 붙임으로써 정형적인 기존 책들의 매끈함을 위반한 책이 있다. 온몸의 감각을 깨워 책이라는 사물의 물성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이 책은 캐나다 시인 앤 카슨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다. 그녀는 죽은 오빠의 역사를 수집하면서 그로부터 파생된 통찰의 기록을 이어붙였다. 그렇게 서첩의 형태로 자신만의 비망록을 완성한 뒤에는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만든 묘비명”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 아픔이 묻어있는 이 책이 ‘광기’라는 이름으로 해석되는 걸까.

앤 카슨의 『녹스』는 모든 페이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아코디언 북이다. 종이 낱장 하나하나를 풀칠해서 손으로 직접 이어 붙였기 때문에 전체를 펼치면 병풍처럼 보인다. 책의 왼쪽 면에는 고대 로마 시인인 카툴루스의 시를 변역하는 과정이 들어있고, 오른쪽 면에는 오빠를 떠올리며 작성한 앤 카슨의 상념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 일반적인 독서 방식대로 양쪽 면을 동시에 읽어도 되고, 오른쪽 면을 먼저 읽고 난 뒤에 왼쪽 면을 읽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독자들이 저마다 다른 읽기 방식을 통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책의 물성을 감각한다는 사실이다. 192쪽 밖에 안 되는 책의 두께가 벽돌만 한 것도, 제작 기간 이 자그마치 2년이라는 것도, 혹자에 의해 ‘광기’라는 이름으로 해석되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유이다.








앤 카슨은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애도를 표하면서도 고유성을 확보해 주체적인 글쓰기에 몰입했다. 언뜻 보면 짧은 메모를 여러 개 나열해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곳곳에 남겨진 하얀 여백 속에는 애도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온몸의 감각을 깨워 죽은 누군가를 마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빛으로 가득한 책의 여백이 더없이 소중할 것이다. 이렇듯 앤 카슨의 『녹스』는 책이라는 사물의 물성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따져봐야 할 지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과연 『녹스』가 이러한 형태로 세상에 나와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매끄러운 책들과 구별된 형식으로 독자들을 만나야만 하는 당위적인 이유가 있었을까.

책의 만듦새를 전체적으로 톺아봐야만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책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하드 상자가 눈에 들어온다. 무척 견고해 보인다. 책 속에는 찢긴 채로 혹은 훼손된 채로 새겨진 그림과 사진들은 불가해한 어떤 현상처럼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예사롭지 않은 시각적 구성 방식은 다소 거칠어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더 새롭게 느껴진다. 분명 눈으로만 글을 따라 읽는데 촉각이 곤두선다. 온갖 것들을 비정형적으로 모아둔 책의 물성이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굳이) 뽑아보자면 부록을 말할 수 있겠다. 부록을 통해 책에 대한 내용 설명을 보충하려고 한 것으로 예상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특성상 여러 감각을 활용해야만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좀 더 고려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추천의 글’, ‘옮긴이의 글’과 더불어 앤 카슨이 직접 수집한 사진과 그림까지 한데 모아두었다면 이 책의 장점이 더 살아났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페이지가 엉겁이 되어 하나로 이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있다. 애초에 애도는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고, 그 기록을 한데 모아 놓는 것도 사람의 손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이처럼 여러 차례 수작업을 거쳐야만 하지 않았을까. 정형적인 기존 책들의 매끈함을 위반하는 행위가 앤 카슨에게는 필연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비로소 “온몸을 고막으로 하여 밤(nox)의 기척에 닿자”라는 앤 카슨의 문장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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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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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무장한 낭만적 죽음

─프로데 그뤼텐의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를 읽고

삶의 끝이 죽음이라면 죽음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프로데 그뤼텐의 신작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는 삶과 죽음, 그 사이에 놓인 여러 순간을 아름답고 낭만적인 시선으로 그려낸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책은 '닐스 비크'라는 페리 운전수의 마지막 하루를 배경으로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들여다본다는 것.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동행한다는 것. 언뜻 보면 끔찍할 것 같은 닐스 비크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놀랄 만큼 찬란한 '삶'으로 가득하다. 그가 모는 페리는 다름 아닌 삶과 사람과 사랑이라는 연료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닐스는 이것이 바로 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고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의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

p. 268



노르웨이 언어 중 하나인 뉘노르스크어로 글을 쓰는 프로데 그뤼텐. 그의 나라에서는 그를 2023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와 비견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비교적 최근에 읽은 욘 포세의 『샤이닝』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삶과 죽음에 대한 각각의 해석이 종내에는 '이야기'라는 물질적 형식의 처음과 끝으로 귀결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욘 포세의 『샤이닝』이 그러했던 것처럼.

프로데 그뤼텐의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가 그러했던 것처럼.

삶의 끝이 죽음이라면 죽음의 끝에는 삶이 있다. 다만 그 끝은 모두 다르다. 사랑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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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 쥐기 내러티브온 5
김영은 외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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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나와 저기에 너, 그리고 우리

─내러티브온5 소설, 『눈송이 쥐기』를 읽고

1. 김영은의 「눈송이 쥐기」

나는 아무에게나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다. 내가 아픈 만큼 똑같이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끝내 대답할 수 없는,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내 안에 남을 것이었다.

p. 34

언젠가 읽은 책 속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용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해야만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애초에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김영은의 「눈송이 쥐기」는 관념적으로 굳어진듯한 용서와 이해의 개념을 보다 강력한 주체성이 부여되는 1인칭 시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어쩌면 용서는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지도 모른다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2. 조찬희의 「만한에서」

희망은 사람을 빛나게 한다. 선윤은 그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예스니아의 따스한 기운이 선윤에게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p. 58

연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자리에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조찬희의 「만한에서」도 그러하다. 타국의 소도시 '만한'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방인과 또 다른 이방인의 깊은 연대를 다루고 있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희망이, 쏟아져 내리는 따스한 기운이, 곳곳에서 더 자주 발견되기를. (다소 감상적인 생각이지만) 이 작품을 읽은 뒤에 든 마음이다.


3. 박소민의 「입에서 입으로」

우리는 농담이 아니잖아요.

p. 109

통역사로 일하는 '연우'는 기억을 잘 잊어버린다. 그래서 그는 기록을 한다. 그는 "받아 적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굳이 밝히지는 않았다."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기록이라는 점. 망각 속에서도 타인의 불편함을 신경 쓰고, 공감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인물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은 작품


4. 주이현의 「몬 몬 캔디」

그날 고다와 선요는 천천히 걸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란히 걷는 동안 그들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며, 남은 모든 말들을 속으로만 삼켰다. 다만 그들은 갈림길 앞에서 서로에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내일 개학이야, 늦지 마, 하는 말을 주고받았다. 이후 둘 중 누구도 울지는 않았다.

p. 200

따뜻한 장면. 따스한 기운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장면. 그런 장면을 발견할 때면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마치 진실처럼 느껴진다. 훼손되지 않는, 훼손될 수 없는 진실. 결코 현실 세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그런 진실. 선요가 고다를 달래주고, 고다는 선요의 말을 진실이라 믿기로 하는 결말부의 장면이 내게는 그러했다.


5. 이지혜의 「잇기」

언제부터였을까. 경수의 그림 안에서 어둠 속을 나아가는 빛들이 마치 희미하게 연결된 점선 같다고 생각한 것이.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게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이. 수채화에서는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가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던 경수의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되돌아왔다.

p. 236

어둠 속에서도 기어이 한줄기 빛을 발견해 내는 이야기. 애도와 상실, 그로 인해 발생한 구멍을 '연결'이라는 희망으로 잇는 이야기.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가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 가슴속에 구멍을 간직하고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의 모습이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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