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관조하는 차원에서 아파하는 차원으로, 아파하는 차원에서 공감하는 차원으로 넘어갈 때 연민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자신의 감정이나 신념 혹은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
"내가 믿어왔던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순간, 나 역시 불우한 땅을 딛고 있는 가엾은 존재가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게 됐다." (p.64)
"감정적 차원의 진실이란 한순간에 급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추억을 헌납하며 조금씩 만들어가는 공유된 약속일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 시간이 조심스럽게 준비해 놓은 구체적인 사건들도 있어야 한다. 사랑이란 언어가 그 모든 것을 보듬어준다고는 믿지도 않았고, 이제부터 연인이 되자는 식은 선언은 유치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을 관통한 후에 손안에 들어온 서로에 대한 신뢰감, 이 사람이라는 안도감, 시시콜콜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일과 일상, 그런 것들만이라도 나는 충분했다." (p.72~73)
"가장 아픈 진실은 그 모든 것이 다만 우리의 선택이었다는 것, 그것이다." (p.74)
"희망은 하나여서 절박했고 절망은 그 후를 약속해주지 않아서 두려웠다." (p.108)
"어떤 사람에겐 위로도 뜻대로 해줄 수 없다. 그 위로의 순간에 묵묵히 소비되는 자신의 값싼 동정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무엇으로도 치환되지 못한 감정은 이렇게 때때로 단 한번도 조우한 적 없는 타인의 삶에서 재현되기도 한다." (p.112)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죽은 자들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환멸과 눈물도 희생자의 수치, 그 체온 없는 수치로 수렴되어 추모의 비문(碑文)도 없이 매장되었던 것이다." (p.122)
"나의 한계에 대해서 적어도 나만은 침묵할 자격이 있다는 믿음은 그러나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p.138)
"그러나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타인의 고통이란 실체를 모르기에 짐작만 할 수 있는, 늘 결핍된 대상이다." (p.151)
"우리가 사랑의 고백에 인색했던 것은 더없는 행복, 완벽한 충만, 한순간의 천국 대신 다만 끊임없이 우리 사이의 불충분과 관계의 결여를 원해서였던 것뿐이라는,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 사랑의 정체성이라는 그런 말을 간절하게 듣고 싶다." (p.205)
"타인과의 만남이 의미가 있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삶 속으로 개입되는 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p.209)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 (p.222)
"소설은 독자에게 닿기 전에 작가를 꿈꾸게 하고 살게 합니다" (새로 쓴 작가의 말中)
"믿고 싶다. 결국엔 위로의 언어로 기억되기 위해 쓰여지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작가의 말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