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의 오리무중 트리플 23
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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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일을 마주할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역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내게는 그 말이 새로운 가능성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가만히 곱씹다 보면 불가해한 일련의 사건들조차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게 된다.

또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먼저 적어놓고 나면 그 뒤에 따라오는 문장은 대개 희망적으로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연대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찾아왔던 것 같다.

박지영의 소설집 『테레사의 오리무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 너머의 무엇이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아도 희극적인 사건 안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비애만큼은 기어코 독자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역에 머무르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소설 속 인물들을 일컬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대신, 복잡성을 가진 상태 그 자체로 한계를 일임하면서도 아주 본원적인 연대의 가치를 놓지 않는다"라는 선우은실의 해설과도 맞닿아 있는데, 그 때문인지 나는 박지영의 소설을 접하는 동안 여러 번 내가 찾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다수와 소수가 뒤집히며 옳고 그름의 자리가 순식간에 반전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 매번 성 테레사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결책은 간단했다. 자아를 집에 두고 출근하면 된다."

「테레사의 오리무중」 中



성당 부속 센터에서 일하는 주인공, 테레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첫 번째 소설 「테레사의 오리무중」은 일명 '자아 분리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함께 일하는 중간 관리자 주경과의 일화를 통해 테레사는 자신이 자아를 분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러 개의 자아와 함께 살아간다. 자아를 분리하여 꿈을 이루고자 하지만 막상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주경에게 돈을 빌려 도망쳐 버린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나의 자아란 왜 이토록 유사하고 이토록 빈약한가"라고 말하는 테레사의 고백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소설 「올드 레이디 버드」는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유일한 미발표작이다. '영우'라는 인물과 '정'이라는 인물의 미묘한 관계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고양이'라는 매개를 통해 두 사람의 시선과 그에 따른 차이를 드러낸다.

정은 영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알잖아요? 진짜 어려운 건 누구도 다치지 않는 타협이라는걸." 영우는 생각한다. 자신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아버지 독고 씨의 죽음(장례식)을 사업화하여 판매한다는 기발한 설정이 바탕에 깔려있는 세 번째 소설 「장례 세일」은 그의 장남인 현수가 벌이는 일종의 '노동 소설'이다. '세일즈맨'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수는 장례식장에서 일하면서 직원 가족이 상을 치르게 되면 30%를 할인해 주는 혜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가 할인 혜택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일하고 있는 장례식장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급기야 현수는 아버지의 지인들에게 감사 메시지를 거짓으로 꾸며 보내기에 이르고, 얼마 뒤 아버지 독고 씨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자 메시지를 받은 많은 이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온다. '죽음 세일즈' 그게 바로 현수가 원했던 것이다.

우스우면서도 서글픈 세 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앞서 말했던 이상한 가능성의 너머를 가늠해 보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다름 아닌 구원과 연대의 가능성이지 않을까. 박지영의 인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삶의 지향점과 그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니까. 가능성의 지표를 되짚어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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