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
선대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1.

 

한편에서는 '99%를 위한 편파 방송'의 급부상하는 인기 패널로, 다른 한편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공공의 적으로 불리우는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의 2013년 근작. 부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메시지는 짧고 명료하다. 그간 여러 팟캐스트와 토론에 나와 반복적으로 주장해왔던 바를 정리하고 각각에 해당하는 자세한 근거들을 덧붙인 책이다. 방송을 일일이 찾아 들을 의지나 시간이 없는 사람, 혹은 들었던 이야기를 차근차근 정리하며 그 근거까지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딱 맞는다 할 수 있겠다.

 

방송에서는 길고 재미없다고 타박받는 것이 일쑤인 선대인이지만, 책만큼은 간명하고 논리적이어서 고맙기 그지없다. 선 하나짜리 그래프만 나와도 귀신 낯 본 듯 빠르게 책장 넘기는 나 같은 골수 문과생도 그럭저럭 도표와 내용을 비교해가며 천천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설명해 놓았다. 그래서 오늘의 독후감에서는 목차의 순서를 따라가며 간단간단히 요약을 하기로 한다. 단, 요약을 하면서 덧붙이는 풀이는 내 수준에 맞추어 쉬운 단어로 바꾸고 이런저런 자료를 참고한 것이니, 오독이나 왜곡을 우려하시는 분은 굳이 이 독후감을 깊이 읽지 마시고 꼭 책을 직접 접하시기 바란다.

 

2-1.

 

총 5부 중 첫 번째 챕터인 1부의 제목은 '두 개의 거대한 전환기가 시작되다'이다. 1부의 큰 주장은,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지난 십여년 간의 대세상승기를 마치고 대세하락기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동산 시장이 일정한 기간을 두고 대세상승과 대세하락을 반복한다는 일반적 경제 원리의 적용 외에도 한국 부동산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분석이 뒤따른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버는 돈에 비해 집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빚을 내라도 어떻게든 집을 마련하려는 수요가 있었다면, 2008년 경 이후로는 그러한 수요가 고갈되었다. 수요, 즉 사려는 사람이 없으면 물건 값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값이 내려가는 조건은 수요가 줄어드는 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 공급이 늘어나는 것이다. 한국 부동산 시장에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근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2014년 하반기부터 수도권을 위주로 한 미분양 물량이 본격적으로 풀리게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급격히 증가한 60-70대 이상 노령가구가 내놓는 매물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다.

 

 

2-2.

 

2부 '한국 부동산의 또 다른 핵, 전세'에서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거주 형태인 전세에 관해 설명한다. 전세는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이라는 전제 조건 하에서만 성립 가능한 수익 모델이다. 집주인으로서는 집값이 하락하고 있는데 전세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부동산 시장은 대세하락기로 들어갔다. 당연히 집주인은 적지만 안정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월세로의 전환을 꾀하게 된다. 공급이 줄었으니 전세 가격은 올라간다.

 

와중 최근 '전세 대란'이라고 부를 정도로 전세가가 올라가고 그나마도 구하기 쉽지 않게 된 것은, 전체 전세 가운데에서도 '안전한 전세'의 공급량이 적기 때문이다. '안전한 전세'란 집주인이 충분한 자기 자금을 확보한 뒤 전세를 내어 준 것으로 세입자의 보증금이 떼일 위험이 없다. 반대인 '불안한 전세'는 집주인이 투기를 목적으로 하여, 자기 자본금의 비율은 크지 않고 전세 보증금과 대출, 즉 빚을 더하여 대부분의 구매 비용을 마련한 형태이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가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경우, 집주인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이 넘어가거나 혹은 전세 기간이 끝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 줄만한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세입자 또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집주인들의 상당수가 2000년대 중후반 부동산 상승기에 위와 같은 방법으로 집을 마련하고 세를 놓은 '불안한 전세'의 주인공들이라는 점이다. 선대인이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를 하나만 인용해 보자. 전체 933 가구 중 전세집은 682 가구였다. 이 가운데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보증금을 떼일 위험이 없는 '안전한 전세'는 전체의 약 23%인 156 가구에 불과했다. 약 77%에 해당하는 526 가구가 '불안한 전세'로 분류되었으며, 특히 대출액과 담보액의 합계액이 이미 집값을 상회하는, 따라서 현재 가격대로 집이 팔린다 하더라도 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떼일 수 있는 이른바 '깡통 아파트'는 전체 전세집60%가 넘는 414 가구에 달했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이니 전세, 그 중에서도 '안전한 전세'를 찾는 수요는 증가할 수 밖에 없고,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전세가가 계속해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정부가 내놓아야 할 정책은 당연히 전세가를 안정시키고 국민들이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임대주택을 확대시키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줄이고 매매용 주택의 건축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였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를 축소하기는 하였으나 본래의 목적에 맞는 임대용 주택의 건축을 추진하지도 않았다.

 

한편 높아진 전세가에 대해서도, 정부는 전세가를 낮추는 쪽보다는 전세 수요, 즉 전세집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을 매매 수요로 전환시키는 정책을 주로 썼다. 구체적으로는 LTV의 한도 상승과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폐지, 취득세율 영구 인하 등이 있다. 쉽게 정리하자면, 빚 낼 수 있는 한도를 높여주고 주택 구매에 따르는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몇 가지의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몇 억이 넘는 상품인 주택을 구매하면서 일이백 만원의 세금을 깎아준다고 덜컥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라든지,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빚을 내면서까지 집을 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등이다. 모두 합리적인 의문이라 할 수 있겠다.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취득세의 영구인하와 지방재정 간의 관계도 심각한 문제이다. 부동산의 취득세는 해당 부동산이 속한 지방의 지방 자치단체에 납부하게 된다. 이 취득세가 평균적으로 지방 재정의 약 40%에 달한다. 지방 자치단체로서는 중앙 정부의 시책 하나에 한 해 세입의 40%가 날아가버린 셈이다. 중앙정부에서는 지방소비세율을 인상함으로써 지방 자치단체의 손실을 일부 보전해 주기로 했다. 지방 소비세란 국세로 거둬들인 부가 가치세 중에서 지방 자치단체의 재정을 보조하는 목적으로 일정하게 떼어주는 돈인데, 이 비율을 높였다는 것이다. 무엇이 됐든, 정리하자면 복지 등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쓰일 수 있었던 세금이 취득세 인하로 인한 손실을 메꾸는 데로 쏟아져 들어갔다고 할 수 있겠다.)

 

 

2-3.

 

3부는 '부동산 빚더미가 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버는 돈은 뻔한데 집값과 전세값은 엄청나게 올라 버렸다. 전세가 됐든 자가가 됐든 잘 곳은 있어야 하니까 집을 사기는 샀다. 뻔한 돈으로 집을 사자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빚을 지는 수밖에 없다. 작년 말을 기준으로 가계부채, 그러니까 기업이나 정부 말고 국민 한 명 한 명이 사는 각각의 집에서 꾼 돈의 총 합은 1000조가 넘었다. 전문가에 따라서는 1400조까지 잡는 이도 있다. 올해인 2014년의 국가예산인 358조의 약 세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빚을 끌어다 전세를 들어가거나 집을 사게 되면 당연히 그 여파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일단 실물경기가 얼어 붙는다. 몇 년치 봉급을 모아도 못 갚는 빚을 두고 흥청망청 돈을 쓸 바보는 없다. 중형차를 소형차로, 소고기를 돼지고기로, 유정란을 무정란으로 줄이게 된다. 소비심리의 위축으로 경기 전체가 얼어붙으면 기업 성장이 멈추고, 기업 성장이 멈추면 신규 채용이 줄어들고 '구조 조정'이 늘어나며, 신규 채용이 줄어들고 구조 조정이 늘어나면 가계 수입이 줄어들어 다시 소비심리가 위축된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건설업계의 경영부실, 과도한 대출과 연체 등으로 인한 금융업계의 위기 등이 뒤따른다. 선대인은 각종 자료를 통해 이것이 하나의 가상 모델이 아니라 모두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자세히 밝힌다.

 

2-4.

 

4부 '대한민국 부동산을 예측하다'에서는 향후 부동산 시장이 변해갈 방향을 예측하고, 그러한 흐름에 맞춰 일어나게 될 10가지의 현상을 예시하였다.

 

선대인이 예측하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향방은 다음과 같다. 일단 2년에서 3년 내, 부동산 가격은 그간 정부의 각종 집값 떠받치기 정책에 의해 비교적 느리게 내려가고 있던 시기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하락의 단계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급매물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하락은 금세 급락으로 바뀐다. 건설업체는 줄도산하고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급증한다. 전국적으로 100만 가구 정도로 추산되는 하우스 푸어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며 '깡통전세'의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이는 것도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다.

 

여기에 인구 구조에 따른 충격이 더해진다. 주택 구매의 총 수요층인 30-54세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증가 속도가 빠른 한국의 노령층이 빈약한 사회 복지체계 탓에 개인적으로 노후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게 된다. 공급이 늘어나는 셈이다. 수요는 줄어들고 공급은 늘어난다. 가격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신축 매물 또한 쏟아진다. 2014년 이후 입주가 본격화되는 위례신도시와 수도권 보금자리주택은 분양 물량을 줄였는데도 25만 호 이상이다. 전국적으로 계획된 보금자리주택은 약 150만 호에 이른다. 기업도시, 공공택지,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지역 등의 물량을 빼고도 이 정도이다. 아울러 이미 택지를 매입하여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 또한 현금을 회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사업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집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1. 이미 비싸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적다. 곧, 수요가 적다.

 

2. 그런데 구조적으로 집을 살 나이대의 인구는 줄어들고 팔 나이대의 인구는 늘어난다. 곧,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어난다.

 

3. 그리고 짓기 시작했던 주택 물량이 대규모로 풀리기 시작한다. 곧, 공급이 크게 늘어난다.

 

선대인은 이렇게 된 사회, 곧 10년 후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열 가지로 정리하였다.

 

1. 전세는 점진적으로 사라지고 월세가 증가한다. 단, 월세공급이 수요보다 더 빨리 늘기 때문에 월세임대료는 점진적으로 하락하거나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2. 수익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부동산은 투자 중심에서 사용 중심으로 옮겨간다. 앞으로 값이 뛸 집이 비싼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기에 좋은 집이 비싸다는 뜻이다. 당연히, 투자와 투기 목적만큼 더 껴있던 거품 가격이 빠지게 된다.

 

3. 투자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신축주택과 노후주택간의 가격 차가 크게 벌어지게 된다.

 

4. 사고 파는 데 유리해서 살았던 아파트의 인기는 떨어지고, 집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다양한 형태의 주택의 인기가 올라간다. 지금도 이미 확장되기 시작한 전원 주택, 모듈러 주택, 공유주택 등이 그 예이다.

 

5.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증가에 따라 중대형 주택의 수요가 급감하고 중소형 주택이 강세를 보인다.

 

6. 공급 과잉이 만성화된다.

 

7. 지역과 부동산 품질에 따른 일부 지역의 차별화 현상이 점진적으로 나타난다. 단 특정 역세권, 도심을 위주로 한 한정된 지역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8. 선분양제가 사라진다.

 

9. 재개발이나 재건축은 사업성이 떨어져 추진되기 어렵다. 당연히 노후 주택이 속출하고, 그 리모델링 비용은 자비로 감당해야 한다. 아울러 도심 및 보금자리주택 개발 등으로 인한 공급 증가와 이어지는 집값 하락으로 수도권 외곽으로 나갔던 가구들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1기 신도시들이 공동화될 것이다.

 

10. 대규모 개발사업의 추진이 어려워진다.

 

 

2-5.

 

다른 챕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인 5부 '대세하락기, 이렇게 대응하라'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대세하락기에 '개인'이 대응하는 법과 '국가'가 대응하는 법이 그것이다. '개인의 대응'에서는 각 가구가 처한 입지에 따라 일반적으로 추천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국가의 대응'에는 큰 방향과 전략, 그리고 실천 과제를 담았다.

 

먼저 개인의 경우를 살펴보자. 아직 책을 읽지 않고 이 독후감을 읽는 분들 중에는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부동산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독후감이 다소 길어지긴 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최소한 선대인 소장이 나누어 놓은 경우를 모두 소개하고 그 해결책을 짧게라도 요약하여 정리해 두려 한다. 현실적인 한계가 있으니 해결책의 근거나 자세한 해설은 책을 통해 접하시라.

 

1. 집이 두 채지만 빚에 시달리고 있다면 : 하우스푸어에서 완벽히 빠져나올 확률은 0에 가깝다. 빚의 최소화를 목표로 하고 가장 가치가 높은 부동산부터 차례대로 처분하도록 하라. 금융자산을 처리하는 것도 고려해보아야 한다.

 

2. 담보대출에 쪼들리는 1주택 소유자라면 :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막을 수 없다. 수입으로 이자와 원금의 상환이 어렵다면 주택을 매매하고 작은 규모의 전세에 거주하며 다시 집을 살 기회를 노리는 편이 낫다. 한편 빚이 없거나 소득 수준에 비해 빚이 크지 않다면 투자를 포기하고 거주를 목적으로 쭉 사는 것도 한 방법이다.

 

3. 심각한 전세난에 집을 살까 고민한다면 : 이자부담을 감당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매할 수도 있지만, 이미 많은 수의 주택 구매자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부동산 시장에서 빚을 내어서까지 집을 사려는 것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다.

 

4. 전세형 아파트를 고려하고 있다면 : 전세형 아파트는 입주자가 분양가격의 20-30%를 지불하고 2년간 살아본 뒤 구매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70-80%의 금액은 건설사가 은행대출을 받아 대신 내 준다. 2년이 지나 입주자가 아파트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하면 건설사는 계약금을 돌려주게 되어 있다. 기존의 전세와 유사한 형식이기 때문에 요새 인기가 있다. 하지만 건설사가 계약금을 돌려주어야 할 때 여유자금을 갖지 않았다면 입주자는 계약금을 떼이는 것은 물론 입주자 명의로 건설사가 대출받았던 70-80% 금액까지 갚아야 한다. 최근 들어 중견 건설사는 물론 LIG건설이나 쌍용건설과 같은 대기업계열 건설사까지 부실화되는 실정이니 위험은 매우 높다.

 

5. 결혼을 앞두었다면 : 집값이 장기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점과 결혼하는 세대가 출산-이직-전근 등의 잦은 변수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혼과 동시에 주택을 구매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되도록 작은 규모에서 시작해 착실히 자금을 모아두었다가, 집값이 더욱 떨어지고 자녀가 태어나거나 자라고 있는 때에 맞추어 구매하는 편이 현명하다.

 

6. 월세와 전세를 놓고 고민 중인 1인 독신 가구라면 : 소득 수준과 상환 능력을 고려하여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있다면 전세로 전환하는 것이 유리하다. 단 이 경우 임대인의 재무 상황을 면밀히 살펴 보증금을 떼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한다. 큰 규모의 전세대출을 감당할 수 없다면, 부담 없는 수준에서 전세대출자금을 활용해 월세를 유지하되, 보증금을 늘리고 월 임대료는 낮추는 것이 현명하다.

 

7. 노후 대비책으로 오피스텔 투자를 생각한다면 : 오피스텔은 이미 공급 과잉 상태이다. 5%중반대의 수익률이 은행이율 3%보다는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공실률, 유지관리 비용, 각종 세금 등을 고려하면, '앉아서 은행이율 두 배'는 말이 안 된다. '열심히 부지런을 떨어야 은행이자보다 조금 더 챙기'는 수준이다.

 

이제 선대인이 제안하는 '국가의 대응 방법'을 살펴보자. 먼저 큰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어, 선대인은 비슷한 시기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폭락을 겪었으나 상이한 대응으로 인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 두 나라의 사례를 보여준다. 일본과 스웨덴이다. 두 나라는 1980년대 중반부터 막대한 부채 증가를 동반한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경험했다. 그러던 부동산 가격이 1991년 거품이 꺼지면서 2년에 걸쳐 30-40%씩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스웨덴은 94년 경제성장률이 6.7%까지 올라갔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성장을 했다. 한편 일본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길고 긴 장기침체의 늪에 빠졌다.

 

일본이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거품 붕괴 후 부실 구조조정을 지연시켰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경기부양이라는 미명 아래 토건업체를 위한 각종 부양책을 쏟아냈고 그마저도 효과를 보지 못하자 여러 금융완화책을 통해 주택 거품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늘어난 가계부채가 경기 활성화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편 스웨덴은 거품이 빠진 뒤 곧바로 부실채권의 정리에 나섰을 뿐 아니라 은행을 국유화하여 금융 불안을 잠재웠다. 각종 부양책은 최대한 자제하였으며 실패한 부동산 투자에 대한 보상이 없었음은 물론 문제를 일으킨 주체의 책임을 명확히 물었다.

 

우수사례와 반면교사를 바탕으로 하여, 선대인은 지금 한국 부동산 시장에 필요한 전략을 제시한다.

 

- 부실 부동산을 정리하라는 명확한 신호를 보낼 것.

 

- 주택대출 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할 것.

 

- 공공적 차원에서 가계 컨설팅을 실시할 것.

 

- 건설업계 '시장 청소'를 할 것.

 

- 재정 지원의 초점을 저소득층 복지로 전환할 것.

 

 

 

3.

 

굳이 다시 소개하지 않아도 이미 화제이다. 그런 책을 몇 차례 읽은 것에 그치지 않고 오목조목 요약한 이유는 나 또한 이 책이 가리키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빙빙 돌고 있는 난파자이기 때문이다.

 

집이 문제다. 이건 내 입버릇이기도 한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지방대를 졸업해서, 대기업의 비정규직이나 중견기업의 정규직으로 취업해서, 30대 중반쯤 부모의 도움이나 대출 없이 서울 외곽에 중소형 주택을 구매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우울증 약 먹어가며 투잡 쓰리잡씩 뛰어 가며 미친 듯이 살아갈까? 물론 사람들 중에는 아주 조금의 여지조차 두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사회의 최고에 올라가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평일이면 정시에 퇴근하여 자신만의 취미를 즐기거나 새로운 계발에 도전하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만나거나 가족과 짧은 여행을 떠나는 삶 쪽을 택하려는 이들이 훨씬 다수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면, 내 아이도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세상에서, 수험생 중 1% 정도만이 들어가는 3개 대학에 입학을 시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아이의 혀를 자르고 기러기가 되어 타국으로 떠나 보내고 마침내는 파출부나 대리기사 생활을 하면서까지 과외비를 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자연스럽고 편안하'너 하고 싶은 일 해라'라고 말하며 그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내 아이가 그렇게 살고 또 행복했다면, 아이의 아이 또한 그렇게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세상에는 적어도 두 가지가 없다. 지금 여기 한국의 가계부채 항목 중 1위와 2위인 주택담보대출과 사교육비 대출이 그것이다.

 

학벌의 중요성이 감소하니 사교육이 줄어들고 공교육에서의 전인교육이 시행 가능하게 될 것이다. 여유 시간이 늘어나니 관광, 레저를 위시한 내수시장이 살아날 것이고 출판, 강연, 평생교육 등의 저변 확대를 통해 사회 전반의 문화 교양 수준 또한 올라갈 것이다. 반드시 이렇게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변화 양상인 것은 틀림없다.

 

 

다시, 집을 생각한다. 사람 살자고 있는 것이 사람 죽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하다. 비싸기 때문이다. 비쌀 이 비싸다면 하는 수 없다. 안 비쌀 게 비싸면 안 비싸게 하는 것이 옳다. 단순하다.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이 사실을 새삼 배우고 또 주장하기 위해 왜 이렇게 큰 노력과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갓난쟁이부터 돌아가시기 직전의 분까지 한국인을 싹 다 합쳐 공식적으로 집계된 총 가계부채 1000조를 나누면 한 사람당 부채가 2천만원 나온다. 목포에 갓 태어난 아이든 부산의 유치원생이든 서울의 초등학생이든 기본으로 빚 2천은 깔고 가는 인생이다. 왜 그 꼴이 났는지, 그 꼴이 났으면 어찌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이 책, 고맙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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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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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숙한 듯 낯선 제목과 강렬한 표지 디자인이 눈길을 잡아챈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연구원인 오찬호 씨의 근작.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저자가 시간강사로서 대학생들을 만나며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토론하며 얻어낸 '20대 세대론'을 정리하였다.

책의 본문은 총 4부로 나뉘어져 있다. 각 챕터마다 재기 넘치는 소제목이 붙어있어서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지 왜 그 차례에 들어가 있는지를 추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본래 그의 박사논문이었던 내용을 대중서로 다시 풀어서 쓴 것이라는 저자의 발언을 참고하며 다시 읽어 보니 문제제기 - 원인적시 - 현상파악 - 대안제시 의 전형적인 논문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2-1.

1부 '강의실에서 바보가 된 어느 시간강사 이야기'에서는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저자 본인의 트라우마적 경험을 회상하며 본문의 문을 연다. 2008년 5월, 저자는 한 대학에서 '인권과 평화'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 주의 토론 주제는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 문제였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여승무원들의 주장은 논리적 정합성을 갖고 있었고, 사측과 벌인 법적 분쟁에서도 승무원 측이 4번 중 3번에 승소하였다. 그래서 저자는 사실 이것이 '토론'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다. 이 사례를 통해 곧 사회로 나아갈 20대 대학생들에게 인권과 노동권의 정의와 적용 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생들의 반응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일어나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강경하게 반문하였고, 당황한 저자가 그의 의견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묻자 수강생의 2/3가 손을 들었다고 한다. 이 경험이, 저자가 4년간의 시간을 바쳐 이 책의 모태가 된 박사논문의연구 주제로 20대 대학생을 주목하게 된 계기였다.

저자는 의문했다. 전체 노동자 대비 계약직 노동자의 비율은 가장 보수적인 조사에서조차 전체의 33%인 600만 명에 달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조치는 곧 노동 시장으로 진입할 20대 대학생들에게도 유리한 조건을 형성해 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승무원들의 그런 요구를 '도둑놈 심보'라고 표현했다. 내 삶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지만 시민으로서의 연대 의식을 발휘해서 뛰어들어야 하는 그런 주제도 아니고, 자신의 노동 환경과 비교적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안에조차 드러나는 '20대 특유의 냉정함'은 도대체 어디서 발원한 것일까. 저자는 이 매커니즘의 주요한 동력원으로 '자기계발'을 적시했다.

 

2-2.

2부 '자기계발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에서는 자기계발의 논리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20대에게 내면화되는지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강의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나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과 나누었던 내밀한 대화 등의 경험을 소재로 삼아 여러 전략을 통해 문제의식을 확립시켜 나가고 있다. 이 과정이 매우 흥미롭지만 이 독후감에서는 분량의 한계 상, 내용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입말로 바꾸고 거칠게 도식화해 보기로 한다.

20대는 지금의 세상이 어떤지를 잘 '안다'. 이들에게 세계는 개인이 발버둥쳐서 바꾸거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그런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자기 계발의 노력 뿐이다. 어차피 세상이 그런 거라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노력이란 본래적 의미의 자기 계발이라기보다는 생존의 필수 행위에 가깝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취업 시의 이력서에 적어넣을 수 있는 활동상과 자격증에 한정해서만 '노력'이라는 용어가 인정된다. 암벽 타기나 클래식 음악사 배우기와 같이 그 자체로 만족을 느끼거나 자신에게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은 이들에게 있어 자기계발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자기 계발의 노력이란 취업이라는 성과를 위해 동반되어야 하는 필수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고통 등의 자기 희생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과정 자체를 즐기거나 아니면 애당초 목적이 없을 수도 있는 여타의 자기계발과 달리 이 자기계발은 취업이라는 특정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설정된 것이므로,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한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목표는 단 하나이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해서 다른 대안을 찾을 수도 없다.

반복되는 고통은 심한 스트레스 뿐 아니라 무기력증과 우울증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십대들은 이러한 위기적 상황을 어떤 식으로 해소해 나가고 있을까. 저자는 그 해소 행위 중 핵심적인 것으로 ''게으른 자'와의 비교에서 오는 위안과 만족'을 꼽았다. 여기에서 '게으른 자'는 '노력'을 하지 않아 충분한 학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혹은 안정된 고용 환경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이른다.

말하자면 이렇다. 지금 나는 힘들다. 하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다. 게다가 확실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는 언젠가 분명히 구체적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래도 힘들다면 그렇지 못한 '게으른 자'들의 말로를 보자. 나는 적어도 '그들보다는' 행복하다.

바로 그래서, 이들은 용산 철거민들에게 '처음부터 철거 지역에 안 살았으면 됐을걸'이라고 말할 수 있고, 미네르바에게 '전문대 출신 주제에 전문가 행세를 하지 않았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걸'이라고 말할 수 있고,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들에게 '해고당한 순간에 뭔가 다른 방도를 궁리했어야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파업을 하며 권리만 주장하는 것은 게으르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저자도 한 마디 들었다. '시간강사가 교수보다 대우가 좋지 못한 것을 다 알고도 선택한 거 아니냐. 그러면 받아들이고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이 과정에서 그들이 반복적으로 다시 강조하는 것이 '노력'이다. 세상에 안 힘든 사람 없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 죽도록 노력한다. '게으른 자'들의 처지는 안 됐지만, 노력했더라면 그렇게 안 됐을 것이다.

2-3.

3부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에서는 그렇게 자기계발서의 논리를 내면화한 이십대가 드러내는 인식과 행위의 양상을 밝혔다. 다시 정리하자면, 1부는 '왜 20대가 문제인가'이고, 2부는 '왜 그렇게 되었나'이고, 3부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이다.

저자가 관찰한 20대의 인식과 행위 양상 중 주목되는 첫번째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남의 심장마비보다 내 새끼손가락이 칼에 베인 것이 더 아픈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자기계발서와 그 사회에서는 지금 20대인 내가 겪고 있는 이 지독한 고통조차 '성장통'이라 한다. 그걸 다 지나가야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계발서의 주인공인, 즉 '성공한' 사람들의 고생과 고통을 읽어보면 참으로 지독하다. 이렇게 누구나 힘든 판에서 '존버'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뭐가 힘들다고 그렇게 우는 소리들이냐. 힘든 상황에 가기 전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충분히 했던 것이냐.

바로 그 질문에서 두번째의 특징이 나타난다. '편견의 확대재생산'이다. 패자는 패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 패한 것이다. 귀책 사유는 개인에게 있다. 사회 탓하지 말아라.

세번째 특징 또한 위의 두 특징의 확장선 상에 있다. 이렇게 힘든 세상이다. 누구나 힘들고, 남 탓할 수도 없고, 탓해서도 안 되고, 탓해봐야 들어줄 이도 없다. 그래서 이십대는 '정해진 길'에 집착한다. 나 또한 패자로 여겨지지 않기 위해서는 안전한 길을 택해서 충실히 따라가야 한다. 시장질서나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고 때로 두렵기까지 한 일이다.

이런 20대가 그들 세대의 일반적 신분인 '대학', 즉 '학력'에 집착하는 것은 필연적 결과이다. 곧 연봉과 직장, 거주지 등에 집착하게 될 그들이 보이는 예후적 증상이다. '명문'과 '인서울'이 갈린다. 그렇다고 '인서울'이 학벌 위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시 '인서울'과 '지방'을 갈라주길 요구한다. 그리고 '지방'은 '지잡'과의 차별을 요구한다. 이렇게 구분된 학력은 그 학교에 속한 학생의 취업 능력 뿐 아니라 교양과 심지어는 인성을 판단하는 준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비록 충분한 논리를 갖지 못한 것이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런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면 오해를 받을만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노력'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3부의 마지막에 저자는 이들이 '이렇게 된' 주요한 환경을 밝혔다. 하나, 이들은 IMF때 유소년 기를 보냈다. 이들이 최초로 학습한 생존 양식은 극단적 상황에 처한 부모 세대의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그런 그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노동 시장으로 나갈 무렵, 사회는 그 때 못지 않은 극단적 상황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배운 대처법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둘, 대학의 경영학과 화. 서울 소재 한 사립대에 대한 저자의 조사에 따르면, 이 학교에는 총 25개 학과가 있는데, 그 중 경영학을 단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 전체의 19%였으며 복수 전공으로 경영학을 택한 학생은 18%였다. 25개 분과 중 하나일 뿐인 경영학과에 이 대학 학생 중 34%가 속해있는 것이다. '기업가적 자아'나 '효율성' 등의 단어를 강조하는 경영학과의 학풍에 좀 더 쉽게 노출되게 된 셈이다.

셋, '성공 후'만을 강조하는 사회 환경이다. 서적과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는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고통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힐링' 이상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그런 고통을 참고 나면 얼마나 달콤한 과실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소수의 사례들이다.

2-4.

4부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를 치유하자'는 이러한 문제 상황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가장 중요한 대안으로 '자기계발의 오류'를 명확히 밝히자고 제안하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지금 20대의 행동과 인식에 가장 중요한 준거틀은 자기계발이다. 그런데 이 자기계발의 논리과정에 결함이 있다면 그것을 따라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자기계발의 오류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저자는 먼저 자기계발서의 베스트셀러인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사례를 들어 그 논리를 공박하고, 뒤이어 '기회의 균등성', '과정의 공정성', '결과의 정의로움'이라는 기준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이 담겨있는 부분이므로, 어설픈 요약으로 그 논리에 흠결을 가하기보다는 관심있는 분께 직접 독서하시길 권하는 것 정도로 갈음해두고자 한다.

3.

인터넷 상의 이 책에 대한 서평 중엔 좋지 않은 것이 꽤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읽기 전에 나는 그 악평들이 20대 본인들로부터의 반발이거나, 저자가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기회의 균등성', '과정의 공정성', '결과의 정의로움'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주요한 구호로 쓰였던 만큼 우익들의 앞뒤없는 비난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객관성'에 대한 지적이 가장 많았다.

대중서로 출간되긴 했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회과학 연구서이다. 사회과학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바로 '객관성', 즉 '주장에 부합하는,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논거를 갖추었는가'라는 사실에는 이의를 제기할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 책에 한해, 그러한 지적은 타당하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 연구에 4년을 쏟았으며, 2000편이 넘는 에세이를 읽었고, 그 중 100편을 골라 집중 분석하는 한편 50명을 선정해 심층 인터뷰까지 진행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사 논문이 아니라 이 책 내에서는, 준거 집단이 충분한 수를 확보한 것인지, '집중 분석'이나 '심층 인터뷰'의 방법론은 무엇이며 그것은 학문적으로 검증된 것인지 등에 대한 단서를 찾기가 어렵다. 꽤 많은 수의 장이 저자가 만난 학생과의 대화, 그리고 그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 분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경영학 커리큘럼에 자주 노출된 것'을 '괴물이 된 이유' 중 하나로 꼽은 부분은 좀 더 정치한 설명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학의 '일반적 학풍'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수강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미치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 등의 과정이 제시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한 근거가 되었어야 할 이들은 본문에서 대체로 생략되어 있고 경영학에 대한 저자의 혐오감 정도만을 희미하게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아울러 대안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십대에게 자기계발 논리가 이식된 것이라 치자. 그 자기계발의 논리에 매커니즘 상의 결함이 있다는 저자의 지적 또한 사실이라 치자. 하지만 냉혹한 사회는 거기 그대로 있는데 이십대를 지탱해 주고 있는 자기계발을 걷어치우면 그 자리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대안 없는 비판은 공허하다.

나는 위의 두 지적이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드는 인상은 -이 인상이 대단히 자의적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가혹하다, 는 것이다.

우선, 저자가 선언한 바와 같이 이 책은 논문이 아니다. 사회의 한 현상을 고발하고 함께 고찰해 보자는 데 목적이 있는 대중교양서이다.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해 왔거나 혹은 이전에는 몰랐지만 책을 읽고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게 되었다면 한 번 자리를 잡고 앉아 생각해 보면 될 노릇이고, 충분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여겨진다면 필요한 부분을 골라 읽거나 안 읽으면 그만이다. 혹은 다음 저작에서는 논문의 객관성과 대중서의 상업성을 잘 아우른 작품이 나와주길, 하고 바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유의미한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날선 비판으로 그것을 꺾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모습을 갖춰 가도록 조언하고 격려하는 '따뜻함'이, 결과적으로 독자 본인에게도 더 낫지 않을까. (그러나 다시 한 번 적듯이, 이는 개인적인 독후감이며 얼마든지 논쟁적일수 있는 시각이라고 인정한다.)

둘째로 '대안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분명히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 대안까지 내놓는다면 그것은 칭찬이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적소를 관통하는 대안과 그 구체적 실천방안까지를 내놓지 못했다고 해서 저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의 적시와 그 매커니즘의 증명은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한 사상적-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여기에 대안을 내놓지 못했을 때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는 대체로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저자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본문 전체를 통해 '공감'과 '연대', 그리고 그를 통한 '구조의 개혁'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왜 괴물이 되었나'는 의문은, 뒤집어 생각하면 '어떻게 하면 괴물이 안 되나'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공감이나 연대와 같은 추상적 구호로는 부족하다' 라든지, '그렇다면 왜 그런 대안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나'는 불만은 가능해도, '대안이 없다'는 지적은 불합리하거나 가혹하다.

본문 가운데 '야구 잠바의 사회학'이라는 소챕터가 있다. 2010년을 전후로 하여 학교 캠퍼스에 학교의 이니셜이 새겨진 '야구 잠바'를 입고 다니는 대학생이 많아졌다는 현상을 바탕으로 해 20대 대학생의 학력에 대한 집착을 설명하는 소챕터였다. 이 책의 내용과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다른 연구들을 만나기 이전에, 나 또한 그 시기를 전후해 학교를 점령한 '야잠(혹은 '과 잠바'를 줄여 '과잠'이라고도 한다)' 현상을 주목하고 있던 터였다.

내가 십수년 째 재학중인 연세대는 예전부터도 '라이벌'로 호칭되는 고려대와 함께 과잠을 입는 문화가 잘 자리은 편이었다. 그러나 내가 입학하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과잠을 사 입거나 단체로 맞추는 것은 막 대학합격한 신입생들의 과장된 통과 의례이거나 혹은 축제나 연고전을 앞두고 벌이는 일종의 단결 이벤트에 불과다. 그나마도 과잠을 맞춰 입기보다는 과마다 그 과의 특성을 반영한 '과 티셔츠'의 제작 쪽이 더 보편적이었것으로 기억한다. 부족 사회부터 내려온, 자기 집단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인간의 일반적 본능이라 할 수 있겠다. 아울러 이것은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과잠을 즐겨 입고 다니는 학생을 보는 다른 학생들에게는 '촌스럽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2010년을 전후하여, 과잠을 입은 학생이 캠퍼스를 뒤덮기 시작했다. 학생회에 있는 후배들을 통해 알아보니, 신학기와 동시에 과잠을 맞추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문화가 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안 그러다가 갑자기 왜 그렇게 됐니, 라는 질문에 그들은 특별한 답을 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이전에 없던 '유별난' 짓들이므로, 나는 애들한테 뭔가 심정적으로 결여된 바가 있었나 보다, 라고, 연애사나 인간사에서 얻은 범박한 원칙을 적용한 뒤 사고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때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한 현상을 떠올렸다. 왜 과잠을 입니, 과잠을 입으면 뭐가 좋으니라는 질문에 대한 후배들의 답 중에, '우리 연세'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어지간히 연대 들어오고 싶었나 보구먼'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이전에는 분명히 보편적이지 않았던 저 표현 속에서 과잉된 집착을 읽어낼 수도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는가, 를 계속해서 탐구했다면, 아마도 오찬호가 가 닿은 그 지점 언저리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내가 실제로 관찰하고 의문을 가졌던 한 현상에 대해 해답을 얻었다. 분량상 다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책 속에 소개된 20대의 '차가운' 자화상들 또한 계속하여 강단에 서 오면서 분명히 느꼈던 현상이기도 하다. '비록 이 책에서는 엄밀하고 정확하게 증명되지는 못했지만', 지금 20대에게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문제적이다, 라고 느끼시는 분이라면 자신있게 권해드린다. 기대에 준하는 소득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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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 주세요.

 

 

1. 폭력의 자유 (김종철 / 시사IN북)

 

바로 오늘 지금까지도, 한국의 언론은 한국 사회에서 제 3자로서 기록과 평론의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으

 

로 이해 당사자로서 직접 참여해 그 방향성을 결정짓기도 한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집회시위와 결사,

 

그리고 의견 표명의 자유가 보장된 지금에도 그럴진대, 최소한의 상식마저 통용되지 않았던 근현대사

 

의 몇몇 순간에 그 영향력이란 대단히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었다. 특히 해당 시기 언론의 주류라고

 

할 수 있었던 활자매체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언론의 근현대사'를 재구하였다는 점, 그리고 그 작업이

 

동아투위의 일원에 의해 직접 수행되었다는 점 등이 이 책의 가치를 보여준다.  

 

 

 

 

 

 

2. 공범들의 도시 (표창원, 지승호 / 김영사)

 

방송과 지면에서 깊이 있는 인터뷰가 점차 외면받고 있는 이 때에, 장인처럼 작업을 진행하는 지승호의

 

결과물에는 아무리 높이 기대를 하여도 배신받기가 어렵다. 특히 이 책에서는 정의, 애국심, 단호한 처

 

벌 등 전형적인 보수주의자로서의 인식을 갖고 있는 인터뷰이가 현재 한국에서는 진보의 한 입으로 분

 

류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의미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지승호, 표창원, 그리고 한국 사회의

 

한 단면까지를 한 차례에 관찰할 수 있는 수작이다.

 

 

 

 

 

 

3. 일베의 사상 (박가분 / 오월의 봄)

 

한 사이트로서의 일베는 점차 그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일베적 에너지'는 그 방향성을 잃지

 

않았다. 그것은 비슷한 성격의 새로운 사이트들을 발굴하는 한편 보다 폭력적이고 저열한 언행을 통해

 

스스로가 견고하게 진화하고 있음을 과시한다. 하나의 소동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성을 갖는 '현상'으로

 

자리잡은 때, 동년배로서 그들의 연원과 발전을 실시간으로 목격해 온 필자의 소개와 분석은 매우 소중

 

하다. 단순히 시도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인데, 유의미한 결론과 제언까지를 겸하고 있어 더욱

 

눈길이 간다.

 

 

 

 

 

 

4. 명작순례 (유홍준 / 눌와)

 

췌언이 필요할까. 투표를 통해 인문/사회 분야에서 가장 오래 생명력을 유지해 주었으면 하는 필자를 뽑

 

게 된다면 아마도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하시지 않을까 싶다.

 

 

 

 

 

5.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류신 / 민음사)

 

시의성 있고 명확한 기획의도, 신선한 구성, 진솔한 고백. 두 번째의 독서가 한층 더 재미있는 흔치 않은

 

책.

 

 

 

 

- 13기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신간평가단 활동 중 지원받았던 도서 가운데 단 한 권만을 고른다면,

 

김종철 기자의 <폭력의 자유>

 

 

 

 

- 13기 신간평가단을 마치며.

 

 

담당자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선생님이 회사 문을 열고 출근하시는 순간

 

터의 모든 행위는 '일'이겠죠. 새 평가단을 선정하고 마감을 공지하고 신간을 발송하는 것 등이 모두 '일'

 

이어서, 그것이 받는 사람에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잊고 지내실 때가 더 많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혹여나

 

싶어 지원했다가 선정되었던 때나, 꼭 읽고 싶던 책이 지정 도서로 선정되었을 때, 카드값과 스팸 문자에

 

시달리던 와중으로 날아드는 신간 발송 문자를 보았을 때 등에 한 호흡 멈춰서서 빙그레 웃게 되던 것이

 

각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괜한 말 같지만 고마운 기회 주신 분께 살가운 한 마디 못 건넨 것 같아 마지

 

막 글에 덧붙여 인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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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원제인 'Poetry and the Police'는 작은 해석의 여지를 주었을 뿐 대체로 범박하고 다소 건조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어판에서는 시국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에 전체의 내용을 간결하게 요약하는

 

부제가 따로 붙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시도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부제인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에서 보이듯, 이 글은 이미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재구하고 그를 분석함으로써 유의미한 학문적 결과를 도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집필의

 

동기로만 보면 한 편의 논문인 셈이다. 실제로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과 문체, 분량 등에 있어 이 책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논문에 가장 가깝다.

 

 

 

'서론 - 본론 - 결론, 그리고 본문 중에서 언급된 자료와 작품들을 기재한 부록'의 목차까지도 논문임

 

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본문의 구성이다. 전통적인 형태의 논문이라면, 예상되

 

는 구성은 시간 순서에 따른 사건의 전개를 소개하며 그 사이사이에 분석을 넣어 주장을 점차 강화시

 

켜나가는 것일 테다. 그러나 이 책의 본문은 서로 간의 선후나 인과 관계로 긴밀하게 얽혔다고 보기 어

 

려운 15장의 소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소챕터가 바뀔 때마다 독자는 여운을 남기는 결구, 갑작

 

스러운 새 화제의 제시, 그리고 시점의 빈번한 변화 등을 목격하며 '흥미'를 느끼게 된다. 굳이 비유하

 

자면 뉴스의 심층분석보다는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의 구성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외국의 논문에서는 종종 발견되는 방향성이긴 하지만 이 책의 구성에서는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다

 

자의 의지가 대단히 강하게 느껴진다.

 

 

 

거칠게 정리해 보면, 이 책은 대단히 재미있는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척 재미있는 논문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고, 어차피 그래봐야 논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저자, 해당 주제, 혹은 신선한 글쓰기

 

방식에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소기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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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
류신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1.

 

우리가 일상으로만 소비해온 공간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출판계의 한 트렌드이다.

 

매일매일 그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공간의 의미를 음미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공간은 '계속 그 자

 

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사회적 환경, 그리고 미래의 발전 방향

 

성이라는 '의미'를 지속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곳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사람에게 의미가 없는 공간

 

은 있을 수 없다.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 그것을 잊고 사는 것이 하나의 신선한 지적 충격이라, 이 지점을

 

다룬 책들이 인기를 얻어왔던 것이다.

 

 

근래에는 부산과 인천 등의 도시를 대상으로 하여 공간의 의미를 탐색한 결과물도 나오고 있지만, '일상'

 

'의미'와의 간격이 가장 현격한 곳은 역시 서울이다. 가이드 북 브랜드인 '100배 즐기기'의 '서울' 판

 

서도 즐비쇼핑 정보와 맛집 정보 사이로 '서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북촌'이나 '강남' 은 상징성 강한 공간을 특정하여 웅숭깊게 바라본 저작물도 적지 않다. 가장 최근에

 

는 '서울 사람이 사랑한 음식'이라는 문화사적 시각으로 이주민들의 도시인 서울의 근현대사를 엿보게

 

해준 <서울을 먹다>라는 수작이 있었다.

 

 

 

 

2.

 

이 책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그러한 '서울 찾기'의 지도책 가운데 역대 가장 깐깐한 가이드를 자랑

 

한다. 저자가 '소비자', '여행객', '서울 시민', '연구자' 등의,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하나의 자세를 정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7쪽에서 17쪽까지 다섯 장 가량의 '책머리에'를 통해 저자

 

본인이 어떤 경험과 어떤 시각, 그리고 어떤 말투를 갖고 서울을 찾아나갈 것인지에 대해 꼼꼼하게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추가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저자는 인천 출신으로 지금도 인천에 거주하나 낮 동안의 생활은 서울에서 하는 사람이다. '유년의

 

추억을 공유하지' 못했으며 사람 많고 시끄러운 서울은 그에게 낯설고 차가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

 

울이라도 오래 생활하다 보니 '애증'이 생겼다. 매일매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공간'의 '의미'를

 

알고 싶어졌다.

 

 

둘. 한편 저자는 독일에서 유학한 독어독문학 박사이기도 하다. 독일에는 도시를 읽고 의미를 찾아가는 데

 

가장 유명한 방법론을 확립한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1892-1940)이 있다. 유대계 독일인인 벤야민은 나치

 

정권을 피하여 파리로 망명했던 시절, '아케이드 프로젝트'라 명명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파리 도시를 '산

 

책'하며 그 공간이 담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화적 뿌리'를 예리하게 밝혀낸 바 있다. 저자는 서울을 읽는데

 

그의 방법론을 채택하기로 한다.

 

 

셋. 그 내용을 전하는 데에는 '구보 씨'라는 캐릭터를 빌려온다. '구보 씨'는 특히 박태원의 제 1대 구보에

 

서 한국 문학 작품 가운데 벤야민의 '산책자' 개념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캐릭터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

 

가 구보 씨의 일일>의 주인공인 구보 씨는 하릴없이 서울을 걸어댕기며 시야에 포착된 근대적 일상을 관

 

하고 그에 대해 감상하고 지적인 성찰을 거친 뒤 그 결과물을 글로 적는다. 박태원 본인이 '고현학(考現

 

學)'이라고 표현한 이 방식은 벤야민의 기획 의도와 대단히 흡사하다. 바로 이런 구보 씨의 캐릭터와 소설

 

적 형식을 빌려온다.

 

 

넷. 이 때 해당 공간을 소재로 공유하고 있거나 혹은 저자의 감상 및 평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문학작품, 그

 

림, 사진 등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도록 한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렇다. 인천 출신, 서울 생활, 독일 유학이라는 구체적 경험을 가진 저자가 서울의 구

 

체적 공간을 찾아 그 의미를 생각한다. 이때의 방법론은 벤야민의 '산책'과 박태원의 '고현학'이며, 형식은

 

'구보'를 주인공으로 하는 평론 + 소설이 될 것이다. 문학작품과 사진, 그림 등이 이해를 돕는다. 이런 설명

 

이 끝난 뒤 책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초반을 패러디한 '프롤로그'로 바로 뛰어든다. 

 

 

그러니까 이 책의 효율적인 감상법은 다섯 장 가량의 '책머리에'에 제시된 지침을 얼마나 습득하고 공감하

 

는가에 달려 있다. 대단히 특정한 방향으로 걸어가게 될 것이라 산책인지 탐험인지 알 수 없는 이 서울 찾

 

기 길에, 가이드를 얼마나 신뢰하는가가 독서의 만족도를 결정할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지엽적인 내용에

 

대해 심상한 감상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 그리고 자세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는 쪽이

 

건설적이겠다.

 

 

 

3.

 

첫번째. 실체적 자아인 저자 본인에 관해.

 

 

앞서 밝힌 것처럼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도 서울에 대한 '애증'이다. 부대끼고 살다

 

보니 정이 들었지만 애당초 내게 정을 줄 생각은 없었던 공간. 하지만 오래 붙어있기도 했고 앞으로도 그

 

안에서 살 것이다 보니 온전하게 사랑하고 싶다, 는 말일 것이다.

 

 

기에는,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은 내가 알고 사랑해야 할 공간이며 그 공간은 나에게 사랑을 돌려주어야

 

다' 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경험에 의한 것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나는 이런 인식의 냄새를 주로 '촌

 

사람'에게서 맡는다. 이 때의 '촌'이란 인구 수 만 이하의 행정단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 외의 모든

 

지역을 포함하며, '촌사람'이란 내 고장의 연원과 출신 연예인, 그리고 단골 술집과 숨겨진 맛집 따위를 일

 

거에 나열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사람들은 지리, 문화, 역사적 정보 등을 통해 자신의 공간을 '인

 

식'하고, 소비 행위나 친목 관계 등을 통해 그 안에 자신의 '각인'을 남겨, 마침내 중립적인 '공간'을 사적

 

'영토'로 전환시키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삼수갑산 보다도 광역시로 호칭되는 대도시 출신의 '촌사람'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

 

표출되는 것 같다. 인구 수나 경제적 지표 등으로는 같은 '대도시' 급인데 서울/비서울의 프레임에서는

 

저 비서울일 뿐인 열등감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추측하고 있다. 인천 시장도 아니면서 '서울

 

외항이었을 뿐인 내 고향 연안부두에 흐르는 눈물'을 읊고 다니는 나 또한 그런 축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저자가 행정적으로는 인천 시민, 생활은 서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졌다는 점은 같은 특성을 공

 

유한 입장에서 볼 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집필 동기로 여겨진다. 쉽게 말해, 서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서울 책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서울 촌놈'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막상 서울 사람 가운데

 

서울의 정보를 곳곳이 꿰고 있거나 남다른 애향심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란 (경험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

 

다. ('내 공간'이라고 인식하기에너무 넓어서인지, 혹은 너무 많은 종류와 너무 많은 양의 사람이 있어서

 

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러니까 서울 사람이라면 깊은 '애증'으로 서울 책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

 

다. 

 

 

이 동기는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독자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서울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나 새로운 시각 등을 전해 주면 좋을텐데, 굳이 '나는 촌놈이야'라는 자의식을 갖고 서울의 탈공

 

동체적인 면, 구성원을 소외시키는 면 등을 부각시키는 점 등이 특히 그렇다. 혹은 살고 있는 '공간'을 굳

 

'영토'화, 더 속말로 말하면 '나와바리'화 시키고자 하는 그 욕망에서 폭력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도 역시 불편할 수 있다. 

 

 

 

 

4.

 

두번째,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방법론을 가져온 것에 관해.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그렇고 이 책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그렇고, 두 작가는 파리와 서

 

울이라는 대도시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아케이드'를 택했다. 이 책 뿐 아니라 복수의 사전에

 

서 공통적으로 택하고 있는 정의에 따르면 아케이드란 '열주(列柱)에 의해 지탱되는 아치군(群)과 그것이

 

조성하는 개방된 통로공간'을 가리킨다. 본래는 콜로세움 등에 사용된 장치라고 하나 오늘날에는 홍콩이

 

대만 등지의 쇼핑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상점 사이의 통로 위로 아치 형의 덮개를 쭉 덮어 놓아 비

 

더라도 상관 없이 쇼핑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아케이드이다.

 

 

벤야민이 언급한 것도 이쪽의 아케이드이다. 그는 '세기의 수도'였던 파리의 아케이드를 관찰하며 그 안에

 

서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자본주의의 문화적 뿌리'를 읽어낸다.

 

 

그런데 저자가 '관찰-성찰-평론'의 방법론만이 아니라 '아케이드'라는 상징까지 빌려왔다는 데 이 책의 특

 

징이 있다. 비록 '지하도, 공중 가교, 유리와 철골로 이루어진 건축물'까지로 그 정의를 확장하고 '대형 쇼

 

핑몰, 지하상가, 버스 정류장'까지도 아케이드의 한 변형으로 간주했다고는 하나, '아케이드'라는 상징을

 

택한 순간 그가 보는 서울은 벤야민이 파악한 파리의 본질에서 멀리 갈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대도시', 그

 

것도 구성원을 고립화시키며 소비 자본주의에 매몰되게 하는 대도시이다. 본문을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

 

는 이 시각은, 이전에 이러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독자에게라면 신선한 지적 쾌락이겠지만, 이 책이 아

 

니라도 여러 사건과 경험 등을 통해 절감해 온 독자에게는 다소 지겹거나 피상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5.

 

'구보 씨'를 빌려온 것에 관해.

 

 

서울을 걸어 다니며 관찰하고 성찰하는 책을 쓰는 데 있어 단 한 명의 캐릭터만을 패러디할 수 있다면 구

 

씨야 로 적격이긴 하다. 특히 종로구와 중구를 중심으로 하여 인근의 지리를 한번에 떠올릴 수 있는

 

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가 실제로 서울 길을 걸으면서 작품을 썼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서울을 걸었다든지 걸으면서 생각과 평론을 하고 소설 식으로 썼다든지 하는 의도는 새로운 '구보

 

씨'를 등장시키는 것 하나만으로도 명료하게 전달된다. 게다가 구보 씨라면 원작자 박태원 뒤로도 여러 명

 

의 후배 작가들에 의해 활발히 패러디되어온 바이다. 표절의 혐의는 걱정할 바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 '구보 씨'라는 캐릭터의 활용은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나는 이 책 전에는 이 책의 저자

 

를 몰랐지만, 책날개의 정보와 저자 자신이 자신의 목소리로 밝힌 이력만을 가지고도, 본문 속에 등장하는

 

'구보'라는 인물이 거의 완전한 저자 자신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책의 주된 내용이 '관찰 - 성찰 -

 

평론'이기 때문에 시각이 주관적인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 서적

 

인 만큼 그 시각은 주관적이고 독창적일수록 좋다. 그러나 인천에 거주하며 서울에 오가야 하는 고충이라

 

든지, 독일 유학 생활의 경험담이라든지, 전공인 독문학에 대한 소회라든지, 이 책을 집필하는 데 영감을

 

준 발터민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이라든지 하는 '개인적 경험' 차원의 내용이 대단히 구체적으로 서술되는

 

지점에 이르면, 왜 굳이 자신을 '구보'라는 3인칭으로 불러가며 '코스프레'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럴 거라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영감을 얻었다'라고 밝힌 뒤 담담하게 '나'의 호칭으로 서술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아주 개인적인 감상임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나는 이 부분에서 자신을 '본좌는' 등으

 

로 호칭하는 부풀려진 과시욕이나, 'OO이는요-'라고 호칭하는 부담스러운 애교를 떠올렸다.

 

 

물론 저자는 이 책이 소설의 형식만을 빌려왔을 뿐 '소설+평론'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임을 수 차

 

례 명시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거니와, 특히 전공자가 대중서적을 집필

 

하는 데 있어 장르의 확장을 고민하는 것은 천금을 주고라도 따라 배우고 싶은 자세이기도 하다. 내가 느

 

이질감, 이물감은 그저 낯설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6.

 

나는 사실 좀 열없이 첫번째 독서를 마쳤다. 앞서 지적한 바의 '단점'들은 '이런 식으로 보면 단점일 수도

 

있겠지'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느꼈던 거북함이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독후감을 위한 발췌독을 마치고 나

 

면 다시 읽을 생각이 없었다. 와중 마지막으로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벤야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책의 마무리 중에서도 맨 끝 문단이었다.

 

 

산책의 보람은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의 아케이드를 걸으며 길바닥에 음각된 '나'라는 말의 희미한 윤

 

곽을 보았습니다. 저는 소망합니다. 제가 목도한 '나'라는 말이 당신이라는 '나'의 온몸으로 스며든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되울리기를. 그럼으로써 서울 거리에 새겨진 서로 다른 수많은 '나'들

 

이 공명하기를.

 

 

그렇지! 걸렸어! 나는 마음 속의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형이 인천 출신이라 이런 글을

 

거잖아. 형이 서울 와서 쓸쓸했고, 독일 유학 가서 외로웠어서 이런 책을 쓴 거잖아. 형은 구보 씨 탈을

 

고서도 계속 형이 경험한 거랑 형이 생각하는 것만 얘기했잖아. 결국 '나' 얘기를 하고 싶었으면서, 서울

 

관해 이야기하는 척, 벤야민처럼 쓴 척, 구보의 생각인 척 얘기하다가, 끝에 결국 들통났구만! 마지막에

 

내는 사람에다 '서울 영등포에서 구보 드림'이라고 해 봐야 소용없어.

 

 

흥분한 나는 작가의 인터뷰를 탐색했다. 책에서조차 드러난 이 속마음이라면 구두 인터뷰에서는 속절 없

 

통날 것이다, 하고. 과연 하나 찾았고, 과연 서울에 대한 애증이니, 벤야민은 이런 사람이니, 구보를

 

택한 유는 무엇이니 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그런데 마지막 질답을 읽는 내 표정이 굳었다.

 

 

     마지막으로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의 화두는 공간입니다. 공간은 인간 실존 양식을 해독하는 실마리입니다. 독

 

자들에게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상 공간에 대해 애정을 갖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공

 

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발품을 팔아 걸으며 그 공간의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산타워에서 올라가 서울의 야경을 본다고 진짜 서울을 알 수 없습니다. 서울의 맨 얼굴은 거리입니

 

다. 아케이드죠. 그리고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보는 상상력도 공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죠. 예컨대

 

이 책의 주인공 구보는 63빌딩을 한강을 굽어보는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서울의 여신으로 해석하고, 대

 

형 쇼핑몰이 입점해 소비 공간으로 전락한 서울역을 롯데아울렛역으로 보며,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기둥을 6개월 이상 헬스클럽에서 운동한 근육질의 다리로 새롭게 읽습니다. 공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불

 

변의 조건이 아닙니다. 스스로 새롭게 상상해 창조하는 우리 삶의 토대입니다. 공간은 실존의 근거입니

 

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을 사랑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24203)

 

 

 

저자는 서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서울의 '도시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 것도 아니었

 

다. '공간'을 통해 '인간'을, 그리고 '인간의 실존'을 이야기하려 한 것이고, 공간의 소재로 '서울'을, 인간

 

소재로 '나'를 택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서울'과 '나'를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개인적일수록 좋다. 저

 

자는 구체적 사례를 보주려 한 것이지 일반적 공식을 도출시켜주려 한 것이 아니다. 존과 자기애를

 

말하는 인문학 도서인데 수도 울을 말하는 사회과학 도서로 읽어놓고 이러저러 불평을 늘어 놓니.

 

오독도 이런 오독이 없다. 부끄럽고 민했다. 화끈거리는 낯을 달래며 독서 중 끄적인 메모들의 맨 마지

 

막 줄을 보니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 책을 쓰기 위해 실제로 서울을 걸어 다니며 생각을 갈무리하고 추억을 되씹었던 저자의 경험과

 

 삶의 방식이 부러웠을 뿐 그 결과물인 이 책에는 큰 흥미를 못 느끼겠다.

 

 

 

그 부러운 게 핵심이었다고, 이 멍청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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