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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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FTA가 체결되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서울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인 내 삶이 바다를 넘어 더 많은 연결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때, 현재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구조를 담당하는 축 중 하나인 수퍼 리치에 대해, 관련된 한 권의 책을 더 읽는 것은 나쁠 일이 없다.

 

그러나 그 한 권이 이 책이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깊이는 얕고, 전략은 지루하다. 기껏 시간을 들여 한 독서이니 흠을 잡기보다는 작더라도 장점을 발견하자는 것이 지향하는 독서의 자세이지만 이 책을 두고서는 좋은 평을 내리기 어렵다.

 

책의 내용은 크게 분석과 사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분석 파트를 살펴 보자. 여기에서는 사회의 전체 부 중에 수퍼 리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만큼인지, 오늘날의 수퍼 리치는 주로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예전의 수퍼 리치들과 무엇이 다른지 등에 대해 분석한다. 수많은 이론의 요약과 의미있는 사례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실 유럽의 수퍼리치가 미국의 수퍼리치보다 0.2% 많다'든지, '0.01%의 수퍼리치가 0.1%의 수퍼리치보다 엄청나게 많이 번다'는 정도의 경미한 자극이 있을 뿐, 대강의 내용은 '1:99'라는 구호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일통한다.

 

조금 더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것은 사례 파트이다. 여기에는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이런 부류의 기사에서 언급되는 유명인들의 사례가 백화점 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수십 명의 인물이 다뤄지는 방대한 분량에 비해, 그들을 다루는 이 책만의 독창적인 시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사람이 이 정도 번대'나 '그 사람이 이 정도 쓴대', 그리고 가끔 '그 사람이 이런 좋은 일도 한대' 정도가 주된 내용으로, 아주 나쁘게 말하자면, 고급스런 가십더미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미안한 말이지만, 책날개에 실린 소개인 경제에 관한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인상적인 서두로 쓸 법한 몇 가지의 이야기를 건지는 성과를 거둘 수 있겠다.   

 

사실 이것은 제멋대로의 실망일 수도 있다. 책날개의 소개글에서도 그렇고, 저자의 서문에서도 그렇고, 이 책은 결코 플루토크라트를 둘러싼 자본주의의 구조적 폐해를 분석하겠다든지, 아니면 나아가 그 대안을 제시하겠다든지 하는 야심을 드러낸 적이 없다. 여러가지 정보와 시각을 두루 소개하고 알리겠다는 것 정도가, 드러나 있는 기획의도의 전부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왜 멋대로 이런 기대를 하게 됐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역시 반 이상은 표지에 빚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표지는 명백히 카스퍼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패러디이다.

 

 

 

이 그림은, 당대에는 '자연'으로 상징되는 외부 세계에 맞서 실력과 당당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근대 문명인의 표상으로 이해되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자연 경시를 비롯한 물질 문명의 각종 폐해의 단초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도 사용된다. 구도, 자세, 배색 등의 요소들이 메시지에 충실히 복종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겹으로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그런 그림을 적극적으로 패러디했기에, 나는 <플루토크라트>의 표지를 보며 나름의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시점을 바꾼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날의 플루토크라트를 설명하는 데 18-19세기의 영국이나 미국 신사를 연상시키는 사람이 등장한 것은 어째서일까. 정복하려는 대상이 대도시인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가 발딛고 선 것이 다시 자연인 것은 왜일까.

 

 

 

그런 오해는, 소박하기까지 한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써 줬더라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서의 표지는 본문의 깊이와 넓이를 비교적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표지를 넘겨 독서를 시작했다면 범박한 주장이긴 하나 공들인 분석과 풍부한 사례의 인용에 부분적으로 후한 점수를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자도 독자도 원치 않았던 오해에, 그간 여러 권의 재미있는 독서를 빚진 출판사이지만, 나는 '열린책들'에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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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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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판사 '오월의 봄'에서 나오는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시리즈의 열세번째 책. 부제는 '새로운 젊은 우파의 생'이며 표지에는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라는 문장이 추가되어 있다.

 

 

 

 

 

이 책은 근래의 몇 년간 가장 많은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던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약칭 '일베'를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필자의 몇 가지 주장들을 함께 묶은 결과물이다. 책의 내용은 일베의 연원, 일베의 사적 기반과 정체성, 그리고 결론의 세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다시 말해, '일베는 어디에서 왔는가', '일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일베가 아닌, 혹은 아니고자 하는) 우리는 어떻게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각각의 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세 부 모두 일베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접근하는 자세에는 차이가 있다.

 

 

 

 

 

1부 '일베와 그들만의 문화'의 필자는 키보드 앞에 앉아 있다. 그는 '1980년대 후반생'으로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흥망을 목격해 왔고 현재도 게임과 유머 등을 주요 컨텐츠로 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용자이다. 여기에서 그는 일베의 연원과 시초에 관련된 사건들 가운데 자신이 목격하고 인상적으로 인지한 바를 증언한다.

 

 

일베는 명확한 기획 의도와 집행 단계를 가지고 창립된 정부 조직이나 학술 집단이 아니다. 그 탄생과 진화에 주요하게 근거하고 있는 것은 재미, 친교, 유대감, 우월감 등과 같은 '감정', 혹은 '감성'의 우발적 발현이다. 가장 중요한 기점이 되었던 사건이나 발언, 또는 하나의 댓글은, 긴 시간이 지난 뒤 게시판에 남은 문자의 흔적을 그러모아 일베의 탄생을 학문적으로 증명하려는 어떤 연구자의 눈에는 어쩌면 너무나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라서 동세대로서 그 과정을 직접 체험하였던 저자가 재구의 형식으로 회상과 증언을 택한 것은 무척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2부 '일베의 사상은 무엇인가'의 필자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이제 그는 흥미로운 회고담을 마치고 현재의 일베란 어떤 집단인가에 탐구의 펜 끝을 갖다댄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베의 몇 가지 특징, 이를테면 잦은 은어 사용, 소수자 혐오 문화, 사실 관계 검증에 경도된 논술법, 자학과 조롱 등의 현상을 언급하고 그 각각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핵심에 접근해 간다.

 

 

 

 

 

3부 '일베와 한국의 정치'의 필자는 촛불집회가 끝나고 난 텅 빈 광장에 쓸쓸히 앉아 있다. 앞서 1부와 2부가 일베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일베를 혐오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를 뭐라고 분석했는지 궁금한 일베 유저 등 광범위한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이 3부는 '깨시민'도 아니고 일베도 아니고자 하는,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는, 비교적 축소된 규모의 독자를 위한 글이다.

 

 

명확히 정리하기는 아주 어렵다. 그들은 2002년의 월드컵과 촛불시위의 기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 한층 커진 집회의 주체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 집회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회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결집했던 것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부터 2012년 대통령 선거까지 이어지는 '나꼼수의 시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는 축, 여전히 회의하는 축, 그리고 아직까지도 촛불을 들고 있는 축 등으로 분화되었다.

 

 

필자는 이 과정에 꼭 필요했던 것으로 '축제의 밤이 끝난 후에도 개인들을 연루시킬 수 있는 기획들'이었다고 평한다. '집회가 끝난 후 한데 둘러 모여서 집회의 소감을 발언하고 선후배와 경험을 공유하는 운동권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예시되어지는 이 방향성은, 거칠게 정리하자면 '연대'일 것이다. 휘발성 강한 쾌락이 있었을 뿐, 그 이후 '자유와 평등이 실질적으로 관철 가능한 집단들을 구성할 능력'을 기르지 못한 것이 의혹과 고민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능력을 조직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그러니까 촛불과 함께 들어졌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 '국가에 의탁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이상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3.

 

 

그러니까 3부는, 단지 일베에만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다소 열없는 얼굴로 읽을 수도 있는 내용이다. 다소 갑작스럽다고 해도 좋을 이런 방향 선회의 이유로, 필자는 '시간낭비'를 꼽았다. 일베는 유사한 집단으로 간주되는 일본의 재특회와 달리 '구체적인 정치적 요구와 강령을 중심으로 결집'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일베는 오히려 그런 현실적 행동을 '결여한 채로 상대를 상처주고 비꼬는 방식을 지속'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의 영향력은 이미 최고점을 지났다는 것이다. 책이 출간된 이후의 한 인터뷰에서 필자는 일베가 이미 사양길에 들어섰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일베라는 커뮤니티의 검색 순위가 줄어들거나 서버 유지비가 부족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를 통해 한 차례 생생하게 발현되었던 몇 가지 속성들은 잔존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속성들을 바라보며 하나의 긴 선을 연상해 왔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 선을 뛰어서 넘어가면 지금보다 나은 무언가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을 넘어가는 데에는 물리적 시간, 자금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귀찮다'. 그 낭비와 고생을 한 끝에 무언가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두렵다'. 결국 선을 넘어 가서 얻게 된다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단기적인 쾌락이나 물질적 보상과 같은 당장의 쓸모를 주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선 이 쪽에 있는 것이 이익이다. 무서워서 넘어가지 못한다는 마음은 센 척하며 감춘다.

 

 

 

 

 

이 선은 작게는 이웃이나 동료와의 친목에서부터 진지함, 양심, 소수자에의 관용 등 내면의 문제 뿐 아니라 사회합의의 준수, 공동체 의식의 확립, 정의 실현과 같은 사회 일반의 문제까지를 포함한다. 옳고 좋은 것임은 듣배워서 안다. 하지만 일일이 힘을 들여 선을 넘어가는 것은 불편하고 귀찮다. 안 넘어가고 하고 싶은 대로 하잘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까 나는 이쪽에 그냥 있을 것이며, 그런 나를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말할 것이다. 다. 그런 나는 '병신'이다. 그러나 하기 싫다는 속마음을 감추면서 그 힘든 짓을 하고 있는 너도 병신이다. 따서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이 주장에는 일단의 논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일베가 단순히 선을 넘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혐오의 권리'는 단순한 의사표현을 넘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하나의 사상, 개념이 갖는 의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구체적 피해자에게 정신적 상해를 입히고 그의 사회적 관계망을 붕괴시키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게다가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그 공격의 대상이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 여성, 야당 등과 같이 권력 관계 상의 약자를 향해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우월감과 안온함의 쾌락을 동시에 느끼고자 하는 저열한 의도가 읽힌다. 귀찮음과 두려움으로 시작된 과정임을 감안해 보면 낙폭의 격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선 위로 한 발을 옮기는 일은 고단하고 피곤하다. 시간과 돈이 들고, 때때로 자괴감과 패배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선이 상징하는 바를 지키고자 했던 것은 그것이 (분명히 나를 포함하고 있는) 집단의 공동선에 기여하는 바이며, 아주 작게는 나 자신의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쾌락의 원동력이기 때문일 이다. 재미 없는 결론인 것은 안다. 하지만 인생이 순간마다 쾌감을 느끼라고 있는 것이 아님은 일베도 안다. '인실좆'인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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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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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비판적 평전'이라는 말 그대로, 이 책은 프로이트의 이력을 밟아 나가며 그의 행적과 사상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곧, 기왕에 프로이트의 삶과 학문

 

에 대한 자세한 이해 없이 아주 간단한 인상만을 갖고 있었다면, 이토록 집요하고 성실한 비판

 

의 열기에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프로이트의 유명한 저서나, 혹은 팟캐스트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이트 읽기 등과 함께 접하면 저자의 의도와 열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

 

약 700쪽에 달하는 내용에서 주요한 주장을 거칠게 정리해 내면 다음과 같다.

 

 

하나. 프로이트는 인격적인 결함을 지닌 존재이다.

 

 

- 그는 금전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데 별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상담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 그는 세속적인 명예를 강하게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명사'들의 모임에 끼지 못하거나 끼더라

 

도 존중받지 못하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 그는 자기 절제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불륜에 가까운 방탕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영위

 

하였으며, 건강에 치명적인 것을 알면서도 흡연을 멈추지 못했다.

 

- 그는 근친상간에 대한 뿌리깊은 열망을 갖고 있었다.

 

 

 

둘. 프로이트는 학문적인 엄정함을 지키지 못했다.

 

 

-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인류 전체로 적용시키려 하였다.

 

- 그는 종종 별다른 근거 없이 직관에 의한 추론으로 결론을 내곤 하였다.

 

- 그는 아주 간단한 신체적 생리 현상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정신과

 

연결짓고자 하였다.

 

- 그는 자신의 주장 내에서도 논리적 일관성을 갖지 못했고, 그러한 점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하지 않았다.

 

 

 

셋. 그런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정한 전략을 사용했다.

 

 

- 그는 별다른 근거 없이도 확언적인 발언으로 주장을 마치곤 했다.

 

- 그는 학술적 용어보다는 문학, 철학, 신화학 등의 영향이 강한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 그는 신비술의 작동 과정에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고 있었고, 정신분석학에서 그것을 활용

 

하는 데 별다른 논리적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넷.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반론들도 프로이트는 학술적 토론이 아닌 전략적 대처로 피해갔다.

 

 

- 그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분석은 오로지 정신분석학을 체험한 이들의 것만이 가치 있다고 규

 

정하였다.

 

- 그는 자신에 대한 학술적 반론들도 반유대주의의 일종으로 치부하였다.

 

- 그는 환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언변으로 그 상황을 해결하였으며, 환자들의 고통이 일

 

시적으로 잦아들었거나 혹은 전혀 치료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도 치료가 성공한 것으로 발

 

표하였다. 특히 그가 남긴 정신분석학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들조차도 그 실상은 대부분 환자들

 

에게 별다른 효과를 갖지 못하거나 악영향을 끼쳤다.

 

 

 

다섯. 그런 프로이트가 세계적인 명사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가 '우상'으로

 

서의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는 기록들을 끊임없이 삭제하였으며 또한 후대의 전기 작가들이 그의

 

좋게 해석될 수 있는 면들만을 뽑아 우상화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기록이 속속 공개됨에 따

 

라 어두운 면들도 밝혀지고 있고,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는 기록들도 많

 

다.

 

 

 

 

3.

 

이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책에서 단 한 문장만을 뽑아야 한다면 나는 460쪽의 '정신분석학

 

은 결국 그의 자전적인 모습의 발현에 지나지 않았다'를 택하겠다. 이 책의 주요한 주장은 결국

 

프로이트 자신이 많은 내적 결함을 갖고 있었고, 그런 결함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비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방법들을 동원하였으며, 그 과정을 통해 얻어진 일종의 방법론을 직관과 신비

 

론의 도움을 얻어 학술의 체계로 승격시켜 인류 전체에 적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문제적 인간 프로이트에 대해서 뿐 아니라 그가 창조해 낸 정신분석학에 대한 의혹이기도 하다.

 

연원과 형성 과정에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점철되었던 학문을 과연 학문이라 부를 수 있

 

을까.

 

 

문제의식의 제기, 요약, 비판 등이 성실하게, 그리고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프로이트

 

나 정신분석학에 대한 구체적 이해가 없이도 그 논리를 즐기는 재미는 일정 정도 보장된다. '우상

 

을 추락'시키는 비밀한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그러나, 물론 한 책에 모든 책무를 요구할 수는 없

 

는 것이지만, 결국 해체와 회의에만 머물렀을 뿐 좀 더 발전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생각

 

거리를 남기지 못한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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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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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승호 씨의 인터뷰 북 시리즈 근작. (2013년 10월에 출간되었는데, 한 달 뒤 이 리뷰를 쓰는 시점까

 

지 두 권의 책이 더 출간되었다. 신작이라고 쓰기 애매하게 된 셈이다.) 이번의 인터뷰이는 전 경찰

 

대 교수 표창원 씨이다.

 

 

작년, MBC 해직기자 이상호 씨와 진행한 <이상호의 GO발뉴스>나 영화감독 양익준 씨와 진행했던

 

<렛츠 시네마 파티? 똥파리!>에서 전문 인터뷰어로서의 직능적 회의감과 현실적인 고민들을 적극

 

으로 토로하였던 저자는,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 올해엔 정말로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사

 

정없이 날뛰는 인터뷰이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정봉주와의 <대한민국 진화론>은 그렇다 치더

 

라도, 두께에서 압도당하고 내용에서 한 번 더 압도당했던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이나, 전문적인 특정 분야에 접근까지 꾀해야 했던 정동영 씨와의 <10년 후 통일>, 이석연 씨와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를 보면 그 활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오늘 소개하는 책인 <공범들의 도시>에서도 그러한 미덕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서문에 싣고 있는

 

기획 단계의 일화부터 그러하다. 저자는 인터뷰를 준비하던 도중 개인사에 관한 다른 인터뷰가

 

행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는데, 작년의 (저작물에서 연상되는) 그라면 아마 조금쯤 좌절

 

하거나, 혹은 이 프로젝트를 조용히 접고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갔을 것 같다. 그러나 2013 지승호는

 

전 경찰대 교수이자 범죄 전문가인 표창원의 직능에 주목하고 그와 관련된 깊은 내용을 준비하였다.

 

표창원 또한 언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정치, 문화, 사회의 보편적인 주제들에 대해 다소간 범박

 

한 의견도 섞어가며 발언하던 중 오랜만의 본인의 전공 분야를 만나 그 교양의 넓이와 고민의 깊이

 

를 마음껏 뽐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표창원의 전문성과 지승호의 활력이 만난 결과물이다.

 

 

 

2.

 

나는 이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알라딘의 13기 신간평가단의 일원이고, 이 리뷰는 10월에 제공받은

 

이 책에 대한 숙제이다. 곧,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이 글 말고도 다른 신간평가단 분들이 작성하신 글

 

이 일단 여남은 개 보장되어 있다. 서로 면식은 없지만 같은 신간평가단으로 있기 때문에, 지난 몇

 

달 간 나를 포함해 함께 숙제해야 할 책에 그분들께서 다신 리뷰를 모두 읽어왔다. 그 때 생겨난 경

 

탄감과 신뢰감이, 갈수록 리뷰 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숙제를 안 내고 잠수하거나 읽지도 않고

 

아무 글이나 대충 써 내면 안 되겠지만, 무채 역할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나는 성공이다.

 

 

비겁한 변명 같은 글을 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책을 읽으며 강하게 받았던 인상과 절절하게 떠

 

올랐던 생각은, 실제로 책의 내용과 큰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단 한 편의 리뷰를 써야 한다면 서문

 

이나 결론에서 가볍게 다루고 말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인터뷰이 개인에 대한 인상부

 

터 핵심 내용의 효율적인 요약, 지금의 정세, 그리고 보수의 역할 등까지 책과 관련된 생각의 줄기

 

들이 큼직큼직하게 이미 잡혀 있다.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정도의 공감만 이

 

끌어 내도, 무채 역할은 할 수 있는 셈이다. 역시. 무채라고 같은 무채가 아니다. 광어 밑보다는 다

 

금바리 밑에 깔리고 볼 일이다.

 

 

 

3.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이야기 하며 싸우지 않기란 지난한 일이다. 누군가의 편을 들거나 누군

 

가의 적이 되지 않는 것조차 하나의 편향성으로 지목되는 한 때이다. 그러나 표창원은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싸움을 하는 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같은 편이었던'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는 중이

 

기 때문이다. 한 시사프로에서 밝힌 바와 같이 17대 대선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이명박 후보를 찍었

 

던 그는, 6년 후인 지금 야권의 거대정당조차 '대선불복' 프레임 앞에서는 기가 죽을 때 '과정에 문

 

제가 있었다면 하야하는 것이 옳다' 라고 가장 소리 높게 외치는 이이다.

 

 

그 동인(動因)으로 그가 스스로 적시한 것은 '원칙'과 '정의' 등의 덕목이었다. 안정된 직장과 존중

 

받는 지위를 내던지며 시대에 가장 결핍된 가치를 현현한 그에게, 진보-개혁 진형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보며 위태로움을 느꼈다. 그에 대한 지지 가운데에는 적실하게 그를 향한 것도 있

 

었지만, 보수 측을 자극하고 조롱하기 위한 도구로만 그를 소비하려 드는 전략 또한 분명히 있었다.

 

하나의 생물 같은 이 전략은 그의 가치가 떨어지면 다음 상품을 찾아 떠날 것이었다. 아울러, 그를

 

향한 열광조차 아주 현실적으로 말해 그의 안위를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SNS 등을 통해

 

말로 오고가는 그 응원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힘든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게는 해 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극우층의 협박이나 국가기관의 사찰까지는 막아줄 수 없는 노릇이다. 아주 작게 말하자

 

면 그가 있어 더 맛깔났던 '그것이 알고싶다'의 광팬으로서, 나는 그가 걱정됐다. 영웅화, 신격화된

 

인물의 비극적 결말은 이미 충분히 봤다.

 

 

 

4.

 

그러나 이 책 <공범들의 도시>에는 정의감과 환호에 도취된 어수룩한 영웅이 아니라, 묵묵히 체

 

중감량과 고된 훈련을 감내하는 파이터의 모습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이것은 특히 그가 현재 싸

 

우고 있는 대상인 국정원을 언급할 때에 직설적으로까지 표현된다.

 

일단 강해 보이고 싶었죠. 거대한 권력과 싸우고 있는 상태다 보니까 약한 모습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약점을 보이는 순간 저들은 기고만장하고 우습고 짓밟고

싶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뭔가 나에게 저들이 두려워할 무기가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거든요... ...제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힘없는 일개 개인에 불과하고,

저들이 마음만 한 번 잘못 먹으면 훅하고 날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제가 인식하

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공포로 늘 자리했겠죠. (p337 - 338)

 

 

행동하는 양심이라지만, 그 또한 인간이다.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유난스런 강성 발언은 어찌

 

보면 '허세'의 일종이기도 했다. 앞서 내가 했던 걱정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읽으며

 

연민보다는 우려의 심정이 더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유난스런 정의감을 가진 사람들

 

이 잃기 쉬운 중요한 덕목이 있었다. 바로 생존과 승리의 전략이다.  

 

 

(국정원과의 싸움에서) 직접적으로, 직설적으로 부딪히는 돌직구적인 모습도 보였지만,

저는 나름대로 고도의 심리전도 병행해 왔습니다.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하고 혼자 싸우

는데 미련스럽고 우직하기만 해서 되겠습니까? 그건 아니거든요. 충분한 고도의 심리전

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다시 제가 안정된 모습, 차분하고 분석

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보시게 될 거예요. (p335) 

 

 

신념만으로 투쟁을 하는 이는 요절하고 자위만으로 투쟁을 하는 이는 변절한다. 그러나 그에게

 

서는 끈덕지게 살아남아 신념을 지키겠다는 단호함이 느껴진다. 구체적으로 자기 좌표 확인과

 

앞으로 선점해야 할 위치에 대해서도 그는 명징한 인식을 보여준다.

 

 

저를 반대하는 분들이 최악의 선동가라는데, 일부 맞기도 해요. 제가 순수하게만 해온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던졌을 때 여론이 제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언론이 반응을 하고,

제가 혼자 외롭게 고립돼서 저들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않을 것인가.

늘 첨예하게 계산도 하고, 계획도 하고, 그에 따른 레토릭 수사도 준비하고, 글도 고민

해서 쓰고, 그렇게 해왔던 거죠. 제가 그렇게 탄압받거나 내쳐지거나 피해 입고, 불쌍

하게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늘 대중의 관심사에 있는 것이었어요. 대중의 관심 속

에 있는 이상 함부로 못 건드리거든요. 그렇게 건드리면 저는 더 큰 투사가 되고, 저

이 더 불편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반대편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제가 정치를 해서 힘이 생기는 것이라서)

저는 계속 혹시 뛰어들까, 혹시 저 사람이 정치권으로 갈까 하는 의혹과 비난이 나올

수 있는 한계까지만 나아가고, 그 직전에서 멈추는 거죠. 대신에 제가 정치권으로 들

어가는 순간, 제 순수성과 상품 가치 내지는 특별함, 대중의 관심, 이런 것들은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p 345)

 

 

원칙이나 정의와 같은 원론적 덕목을 거듭 발언하기 때문에, 선하기는 하지만 혹 나이브한 사람

 

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곧 또 하나의 곧은 목소리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했던 우려는 싹 날

 

아갔다. 생각해 보면, 범죄심리 전문가이자 가장 유명한 프로파일러인 그는 사회적 인생의 거의

 

전부를 바쳐 대화와 행동의 전략에 관해 고민해 온 사람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필연의 산물이라

 

고 해도 좋다. 우리는 이 사람을 꽤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5.

 

물론, 지금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영원할지는 미지수이다. 공정 대 반공정의 프레임 상에서 지

 

금 그는 진보-개혁 진영과 비슷한 지점에 서 있지만, (실현되기는 지난하나) 진정한 진보 대 보수

 

의 프레임만으로 토론을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지금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과 그 사이의 간격을 새

 

삼 깨닫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 그렇다.

 

 

(일베 현상에 대해 말하며) 일베 현상은 절대로 보수가 아니에요. 보수가 뭔지도 몰라요.

상당수는 그냥 반항 심리, 겉으로 깨끗하고 좋은 척 하는, 소위 말하는 진보적 지식인과

진보적 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반감으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해체

시키고 이념적으로 하려면, 정계 개편처럼 전체 시민들이 다시 한 번 논의를 해서 정말

보수인 사람은 보수 쪽으로, 진보인 사람은 진보 쪽으로, 중도인 사람은 중도인 쪽으로

 나뉘면 좋을 것 같아요. (p417)

 

 

여기에서 그는 일베를 '해체시켜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발언의 바탕에는, 사회에는

 

떤 목소리들을 '해체'시켜서라도 존중해야 할 모종의 '가치'가 있으며, 또 그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해체'를 행할 수 있는 모종의 '권위'가 있다는 인식이 숨어있다. 예시로 들어지는 일베가 워낙

 

극단적이기 때문에 암묵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만, 이 인식은 분명 완고한 보수주의자의

 

그것이다.

 

 

시민들이 스스로의 사상적 좌표를 밝히면 좋겠다는 의견도, 물론 그 의도는 불필요한 정치적 정쟁

 

종식시키고 건강한 공존 상태를 형성하고자 하는 선한 것이기는 하지만, 과정에 수반될 수 있는

 

폭력성에 대한 고려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아주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좋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다소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까지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관

 

/세계관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기도 하다.

 

 

 

6.

 

다시 한 번 물론. 위의 논의는 '진정한' 진보 대 보수의 구도가 도래하는 세상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그는 한동안 진보의 여러 입 중 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어떤 입에 비해서는 덜 세고, 어떤 입에 비

 

해서는 덜 화끈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의 나는 확신한다. 이 입은, 그 몸에 탈이 없는 한 가장 오래 살

 

아남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독후감의 결론. 표창원에게 소식과 규칙적인 운동을 요구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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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서의 역사 (베르너 풀트 / 시공사)

 

덜고 뺄 것 없는 제목이라 기대가 쉬워 좋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금서들은 당대 시대정신의 최전선에 있었던

 

것들로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애정을 갖고 있는 명서의 뒷이야기를 알아 보는 작은 재미에, 검열의

 

칼날은 어디쯤에, 또 어떻게 내려지는지 그 전략을 살펴보는 의의까지 있으리라 기대한다. 같은 기획의도로

 

한국의 금서들만을 다루는 책이 나와주어도 좋으련만.

 

 

 

 

 

 

 

 

 

 

 

 

 

 

 

 

 

 

 

2. 청춘을 위한 철학 에세이 (오가와 히토시 / 아름다운사람들)

 

'거리의 철학자' 오가와 히토시의 신작. 특히 반가운 이유는, 가상의 수업 형태를 통해 철학과 사상을 쉽게 풀어주었던

 

전작 <철학의 교실>의 구성과 동일한 후속작이라는 점. 저자는 전작에서 각자의 고민을 가진 캐릭터를 창조해서 한

 

교실에 모아놓고, 그 고민에 가장 좋은 답을 줄 수 있는 철학자를 등장시켜 강의를 하도록 구성하였다. 이를테면 선

 

생님께 혼이 나고 성질이 나 있는 고등학생의 앞에 미셸 푸코가 등장하여 권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는 식이다.

 

전작에서는 '행복', '죽음', '인생의 의미'와 같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질 수 있는 철학적 논제들을 위주로 하여 목

 

차가 짜여졌었는데, 이번에는 서양 철학사에 혁혁한 족적을 남긴 이들을 생년 순으로 따라가는 순으로 구성한 모양

 

이다. 서양철학사의 전개나 철학자 간의 선후 관계 정도 만이라도 윤곽을 잡고자 하는 철학 초입자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전작에서는 가상의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단선화되어 그 활용의 폭이 좁았다든지, 여러 명의 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캐릭터성이 선연하지 않다든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었던 아쉬움이 이번에는 잘 해결

 

되었는지 접해보고 싶다.

 

 

 

 

 

 

 

 

 

 

 

 

 

 

 

 

 

 

 

3. 한국인의 탄생 (최정운 / 미지북스)

 

'한국인'이라는 집단 정체성은 존재하는 것일까. 태초로부터 존재하여 변형되어 온 것일까, 철저한 가상의 것일까,

 

혹은 가상으로 출발하였으나 그 영향력에 의해 실체를 갖게 된 것일까. -대단히 자의적일지언정- 느끼고는 있으나

 

규정하기는 어려운 난제에, '오월의 사회과학'을 통해 여러 도구로 현실을 재구하고 분석하는 데 총기를 보였던 저

 

자가 과감하게 도전을 하였다. 이번에는 주로 근대소설을 통해 '한국인'에 영향을 주고 또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요

 

소들을 살핀다 한다. 그 분석이 전작에서처럼 날카로운 것일지, 또, 혹여 분석이 날카롭다 할지라도 근대소설이 EB

 

S 고교 문제집에서나 소비되는 지금에도 그 분석이 유효한 것일지, 여러 호기심이 동한다.

 

 

 

 

 

 

 

 

 

 

 

 

 

 

 

 

 

 

 

4. 일베의 사상 (박가분 / 오월의 봄)

 

 한 사회를 이해하는 기준으로는 내부의 깊이 만큼이나 외연의 넓이도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최극단에 위치하는

 

현상들 중 가장 논쟁적일, 일베. 이제야 나왔나, 하는 안타까움 반, 이제라도 나왔나, 하는 안도가 반이다. 정치하며 또한

 

확장 가능한 분석이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길지 않은 분량이 마음에 걸리지만, 목차를 보니 최소한 일베의 연원과

 

흥성의 역사가 순차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출판사의 책소개에 따르면 발생의 원인

 

과 그 사회적 의의, 그리고 그에 대한 대책까지 정리되었다 하니 그 소개에 값하는 알찬 내용이 있길 기대한다.

 

 

 

 

 

 

 

 

 

 

 

 

 

 

 

 

 

 

 

5.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김삼웅, 현암사)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평전만으로도 이토록 촘촘하게 깔아두면 한 역사를 거뜬히 재구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평전의 달인' 김삼웅의 신작. 배척의 대상이거나 숭앙의 대상이거나, 어느 쪽이든 홍범도는 남한

 

사회에서 죽은 아이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가 평생 추구하고자 하였던 이상에 공감하는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다만 같은 땅에 먼저 태어났던 홍 가의 한 인물에 매력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이

 

미 스스로 그 가치를 증명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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