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서의 역사 (베르너 풀트 / 시공사)

 

덜고 뺄 것 없는 제목이라 기대가 쉬워 좋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금서들은 당대 시대정신의 최전선에 있었던

 

것들로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애정을 갖고 있는 명서의 뒷이야기를 알아 보는 작은 재미에, 검열의

 

칼날은 어디쯤에, 또 어떻게 내려지는지 그 전략을 살펴보는 의의까지 있으리라 기대한다. 같은 기획의도로

 

한국의 금서들만을 다루는 책이 나와주어도 좋으련만.

 

 

 

 

 

 

 

 

 

 

 

 

 

 

 

 

 

 

 

2. 청춘을 위한 철학 에세이 (오가와 히토시 / 아름다운사람들)

 

'거리의 철학자' 오가와 히토시의 신작. 특히 반가운 이유는, 가상의 수업 형태를 통해 철학과 사상을 쉽게 풀어주었던

 

전작 <철학의 교실>의 구성과 동일한 후속작이라는 점. 저자는 전작에서 각자의 고민을 가진 캐릭터를 창조해서 한

 

교실에 모아놓고, 그 고민에 가장 좋은 답을 줄 수 있는 철학자를 등장시켜 강의를 하도록 구성하였다. 이를테면 선

 

생님께 혼이 나고 성질이 나 있는 고등학생의 앞에 미셸 푸코가 등장하여 권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는 식이다.

 

전작에서는 '행복', '죽음', '인생의 의미'와 같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질 수 있는 철학적 논제들을 위주로 하여 목

 

차가 짜여졌었는데, 이번에는 서양 철학사에 혁혁한 족적을 남긴 이들을 생년 순으로 따라가는 순으로 구성한 모양

 

이다. 서양철학사의 전개나 철학자 간의 선후 관계 정도 만이라도 윤곽을 잡고자 하는 철학 초입자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전작에서는 가상의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단선화되어 그 활용의 폭이 좁았다든지, 여러 명의 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캐릭터성이 선연하지 않다든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었던 아쉬움이 이번에는 잘 해결

 

되었는지 접해보고 싶다.

 

 

 

 

 

 

 

 

 

 

 

 

 

 

 

 

 

 

 

3. 한국인의 탄생 (최정운 / 미지북스)

 

'한국인'이라는 집단 정체성은 존재하는 것일까. 태초로부터 존재하여 변형되어 온 것일까, 철저한 가상의 것일까,

 

혹은 가상으로 출발하였으나 그 영향력에 의해 실체를 갖게 된 것일까. -대단히 자의적일지언정- 느끼고는 있으나

 

규정하기는 어려운 난제에, '오월의 사회과학'을 통해 여러 도구로 현실을 재구하고 분석하는 데 총기를 보였던 저

 

자가 과감하게 도전을 하였다. 이번에는 주로 근대소설을 통해 '한국인'에 영향을 주고 또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요

 

소들을 살핀다 한다. 그 분석이 전작에서처럼 날카로운 것일지, 또, 혹여 분석이 날카롭다 할지라도 근대소설이 EB

 

S 고교 문제집에서나 소비되는 지금에도 그 분석이 유효한 것일지, 여러 호기심이 동한다.

 

 

 

 

 

 

 

 

 

 

 

 

 

 

 

 

 

 

 

4. 일베의 사상 (박가분 / 오월의 봄)

 

 한 사회를 이해하는 기준으로는 내부의 깊이 만큼이나 외연의 넓이도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최극단에 위치하는

 

현상들 중 가장 논쟁적일, 일베. 이제야 나왔나, 하는 안타까움 반, 이제라도 나왔나, 하는 안도가 반이다. 정치하며 또한

 

확장 가능한 분석이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길지 않은 분량이 마음에 걸리지만, 목차를 보니 최소한 일베의 연원과

 

흥성의 역사가 순차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출판사의 책소개에 따르면 발생의 원인

 

과 그 사회적 의의, 그리고 그에 대한 대책까지 정리되었다 하니 그 소개에 값하는 알찬 내용이 있길 기대한다.

 

 

 

 

 

 

 

 

 

 

 

 

 

 

 

 

 

 

 

5.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김삼웅, 현암사)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평전만으로도 이토록 촘촘하게 깔아두면 한 역사를 거뜬히 재구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평전의 달인' 김삼웅의 신작. 배척의 대상이거나 숭앙의 대상이거나, 어느 쪽이든 홍범도는 남한

 

사회에서 죽은 아이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가 평생 추구하고자 하였던 이상에 공감하는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다만 같은 땅에 먼저 태어났던 홍 가의 한 인물에 매력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이

 

미 스스로 그 가치를 증명하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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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서의 역사 (베르너 풀트 / 시공사)

 

덜고 뺄 것 없는 제목이라 기대가 쉬워 좋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금서들은 당대 시대정신의 최전선에 있었던

 

것들로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애정을 갖고 있는 명서의 뒷이야기를 알아 보는 작은 재미에, 검열의

 

칼날은 어디쯤에, 또 어떻게 내려지는지 그 전략을 살펴보는 의의까지 있으리라 기대한다. 같은 기획의도로

 

한국의 금서들만을 다루는 책이 나와주어도 좋으련만.

 

 

 

 

 

 

 

 

 

 

 

 

 

 

 

 

 

 

 

2. 청춘을 위한 철학 에세이 (오가와 히토시 / 아름다운사람들)

 

'거리의 철학자' 오가와 히토시의 신작. 특히 반가운 이유는, 가상의 수업 형태를 통해 철학과 사상을 쉽게 풀어주었던

 

전작 <철학의 교실>의 구성과 동일한 후속작이라는 점. 저자는 전작에서 각자의 고민을 가진 캐릭터를 창조해서 한

 

교실에 모아놓고, 그 고민에 가장 좋은 답을 줄 수 있는 철학자를 등장시켜 강의를 하도록 구성하였다. 이를테면 선

 

생님께 혼이 나고 성질이 나 있는 고등학생의 앞에 미셸 푸코가 등장하여 권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는 식이다.

 

전작에서는 '행복', '죽음', '인생의 의미'와 같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질 수 있는 철학적 논제들을 위주로 하여 목

 

차가 짜여졌었는데, 이번에는 서양 철학사에 혁혁한 족적을 남긴 이들을 생년 순으로 따라가는 순으로 구성한 모양

 

이다. 서양철학사의 전개나 철학자 간의 선후 관계 정도 만이라도 윤곽을 잡고자 하는 철학 초입자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전작에서는 가상의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단선화되어 그 활용의 폭이 좁았다든지, 여러 명의 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캐릭터성이 선연하지 않다든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었던 아쉬움이 이번에는 잘 해결

 

되었는지 접해보고 싶다.

 

 

 

 

 

 

 

 

 

 

 

 

 

 

 

 

 

 

 

3. 한국인의 탄생 (최정운 / 미지북스)

 

'한국인'이라는 집단 정체성은 존재하는 것일까. 태초로부터 존재하여 변형되어 온 것일까, 철저한 가상의 것일까,

 

혹은 가상으로 출발하였으나 그 영향력에 의해 실체를 갖게 된 것일까. -대단히 자의적일지언정- 느끼고는 있으나

 

규정하기는 어려운 난제에, '오월의 사회과학'을 통해 여러 도구로 현실을 재구하고 분석하는 데 총기를 보였던 저

 

자가 과감하게 도전을 하였다. 이번에는 주로 근대소설을 통해 '한국인'에 영향을 주고 또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요

 

소들을 살핀다 한다. 그 분석이 전작에서처럼 날카로운 것일지, 또, 혹여 분석이 날카롭다 할지라도 근대소설이 EB

 

S 고교 문제집에서나 소비되는 지금에도 그 분석이 유효한 것일지, 여러 호기심이 동한다.

 

 

 

 

 

 

 

 

 

 

 

 

 

 

 

 

 

 

 

4. 일베의 사상 (박가분 / 오월의 봄)

 

 한 사회를 이해하는 기준으로는 내부의 깊이 만큼이나 외연의 넓이도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최극단에 위치하는

 

현상들 중 가장 논쟁적일, 일베. 이제야 나왔나, 하는 안타까움 반, 이제라도 나왔나, 하는 안도가 반이다. 정치하며 또한

 

확장 가능한 분석이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길지 않은 분량이 마음에 걸리지만, 목차를 보니 최소한 일베의 연원과

 

흥성의 역사가 순차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출판사의 책소개에 따르면 발생의 원인

 

과 그 사회적 의의, 그리고 그에 대한 대책까지 정리되었다 하니 그 소개에 값하는 알찬 내용이 있길 기대한다.

 

 

 

 

 

 

 

 

 

 

 

 

 

 

 

 

 

 

 

5.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김삼웅, 현암사)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평전만으로도 이토록 촘촘하게 깔아두면 한 역사를 거뜬히 재구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평전의 달인' 김삼웅의 신작. 배척의 대상이거나 숭앙의 대상이거나, 어느 쪽이든 홍범도는 남한

 

사회에서 죽은 아이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가 평생 추구하고자 하였던 이상에 공감하는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다만 같은 땅에 먼저 태어났던 홍 가의 한 인물에 매력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이

 

미 스스로 그 가치를 증명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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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작은 판형, 짧은 분량, 명징한 메시지의 힘을 빌어 이 책의 본문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오늘날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며 이는 수치로 검증 가능하다.

 

둘.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 구조로부터 발원하는 것이다.

 

셋. 아울러 구조는 그러한 구조로부터 이득을 얻는 계층 뿐 아니라 손해를 입는 층에 의해서도 견고하게 재구조화된다.

 

넷. 이러한 재구조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에는 경제적 손해 뿐 아니라 자존감의 추락과 같은 정신적 손해, 신뢰나 연대와 같은 무형의 자산이 손실되는 사회적 손해 또한 포함된다.

 

 

 

 

2.

 

고급스러운 하드커버와 깔끔한 표지디자인,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이 독서의 출발을 가볍게

 

한다. 잘 구획된 챕터와, 수치와 논리를 통해 증명되는 간명한 메시지 또한 이 책의 특장점으로 꼽

 

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적어도 이 책의 기획 의도에 공감하고 접근한 독자에게는 그닥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세계적인 화두이며 당장의 내 삶에도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위에 요약한 바

 

와 같이 그것을 다루는 내용의 구체는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일상적 담화의 소재로까지 내려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단견이지만, 나는 독서의 과정에서, 충격적인 수치나 엽기적인 상황의 소개를 통

 

해 이러한 내용들을 재차 삼차 활자로 확인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의식을 박제화시키는 부작용은 있

 

지 않을까를 의심하기도 했다.

 

 

 

3.

 

그러니까 이 책에 대한 감상은 '중요하지만 뻔하다'와 '뻔하지만 중요하다' 사이의 어딘가에 놓여질

 

것 같다. 단, 논의의 과정에서 자존감의 추락이나 신뢰, 연대의 상실과 같은 비계량적 요소들을 경제

 

성장과 같은 구체적 요소와 등위로 비교를 시도한 것은 눈여겨볼만한 점이다.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

 

이, 계량적 요소만을 바탕으로 하여 논의나 사고를 하게 되면 경제성장이나 소비 등을 미덕의 자리에

 

서 끌어내리기가 어렵다. 다소간 자의적이고 허황되어 보일지라도, 비계량적인 요소들을 거듭 객관

 

화시켜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그나마 남아있는 선택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매

 

일같이 이 사회의 질서를 스스로 재구조화하고 있는 개인이 위와 같은 과정을 혼자서 이뤄나가는 것

 

은 지난한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상황을 '파국'으로 가는 길이라 표현한다.

 

 

 

4.

 

심상한 요소를 들어 책의 내용에 트집을 잡고 명확한 결론이 없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

 

다. 그 논리 게임의 과정은 작은 쾌감을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가 전달하려 애쓰고 고민하였으나

 

해결하지 못한 그 문제가 바로 내 문제라는 생각을 해 보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 일독의 가치는 분명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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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없는 에세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1.

 

길지 않은 서양 철학사의 독서에서, 나는 이렇게나 상냥한 책을 만나본 적이 없다.

 

 

이 책의 상냥함은 조지아대학교의 사학과 교수인 커크 윌리스의 2009년 판 서문에서부터 전투적으

 

로 육박해 온다. 양 철학사 개론서 몇 권의 끄트머리에서 버트런드 러셀의 이름 정도나 몇 차례 접

 

해본 것이 전부인 나에게는, 건조하고 딱딱한 논문 식의 문체, 혹은 그 감동의 깊이를 짐작하기도

 

어려운 찬사의 문체로나마 연대기나 활동, 사상 중 하나 만이라도 설명해 주는 서문이 있다면 감읍하

 

며 받아들여야 할 첫 디딤돌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런데 15페이지의 짧은 분량에서, 커크 윌리스는 자

 

연인 버트런드 러셀의 연표, 사회인 버트런드 러셀의 종횡무진하는 이력, 그리고 지성인 버트런드 러

 

셀이 남긴 사상과 그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연표와 사회적 이력을 구성하면서 그가 맺은 인적 관계망과 사회의 평판

 

등을 기준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전직 총리의 손자이자 백작 작위 계승권자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는 철학과 논리학 등의 논문으로 초기의 성공을 이루어냈으며 제자로 T.S. 엘리엇, 루트비히 비트겐

 

슈타인 등을 두었다는 것 등은, 간단하기는 하지만 그가 갖는 스펙트럼의 범위가 아주 넓을 것이라

 

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는 충분한 정보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조국인 영국의 참전에 반대하였으며

 

그로 인해 한편으로부터는 배신자로 경멸을 받고 한편으로부터는 지성으로 추앙을 받았다든지, 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조국에서 가장 큰 존경을 받았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든지 하는 사실로

 

는, 개개의 말단까지는 짐작할 수 없으나 그의 사상들에 공유된 기본적 세계관의 냄새 정도는 맡을

 

수 있게 해 준다.

 

 

아울러 커크 윌리스는 결어부에 이르러, 길이도 제각각이며 각기 상당한 시차를 두고 쓰여진 글의

 

모음인 이 책은, 단순한 선집으로서 아니라 그가 일생을 추구하였던 '진보에 대한 확신', '지성을 추

 

구할 자유', '민주주의 정치' 등의 가치를 반복적으로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라고 그 가치를 평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전문적 직업인으로서의 철학자들이 버트런드 러셀의 지엽까지 낱낱이 장악하고자

 

읽는 전공 서적이 아니라 오히려 버트런드 러셀의 초입자들이 택할 수 있는 진입로 가운데 가장 넓고

 

확실한 길이라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도 잘 모르는 판에 커크 윌리스가 누군지는 더더욱이 깜깜이

 

지만, 그래도 어딘가의 누군가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때에는 일말의 진실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일

 

단이지만 그래도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2.

 

그리고 시작되는 버트런드 러셀의 상냥함의 메인 디쉬. 책의 본문은 총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양 철학사에 대해 초보적 지식이라도 구비하고 있어야 조금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1장 '이 모든

 

게 정치와 무슨 상관인가?'정도를 제하고 나면 나머지는 언제의 누구라도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

 

는 명제들을 다루고 있다. 왜 철학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철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2장

 

'초보자를 위한 철학'이나 교사에게 요구되는 본질적 자질과 그것을 저해하는 요소 등에 대해 탐구

 

하는 8장 '위대한 스승이 되려면' 등이 좋은 예이다. 그 외의 장에서도 평화, 신앙 등 누구나 한 번쯤

 

은 생각해 보았을, 혹은 생각해 보지 않았더라도 지금부터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재가 '난무'하

 

며 출연한다. 심지어, 9장과 10장의 제목은 '인류에 도움이 된 관념들'과 '인류에 해를 끼친 관념들'

 

이다. 여기에서는 그의 말대로 도움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명하는데부터 시작하면 된다.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 생각의 출발점과 방향을 이토록 상냥하게 잡아 주다니.

 

 

 

3.

 

여기에 더욱 독서의 맛을 돕는 것은 저자의 유머이다. '여는 글'을 부분 인용해 본다.

 

 

지난 15년 동안 이런저런 상황에서 쓴 다음의 에세이들은 대부분 투쟁의 기록으로서, 그 목표는 이제껏 우리의 비극적인 세기를 특징지었던 교조주의가 좌파에서도 우파에서도 성장하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막는 것이었다. 간혹 경망스러워 보이는 글이 있을지언정 원래의 목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지했다. 경망스럽게 쓴 까닭은 엄숙하고 오만한 자들을 상대로 더욱 엄숙하고 오만하게 싸워봤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p23)

 

 

'엄숙함'과 '더욱 엄숙함'은 피아구분이 어려우므로 그 대칭항인 '경박함'을 택했다는 이 언술은 그

 

논리 상의 전복 때문에 무의식적인 웃음을 유도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 안에 교조주의의 본질과

 

'적'을 상대하는 전략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 유머는 단순

 

한 언어적 습관이 아니라 투쟁과 논설에 기반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본격적으로

 

주제를 다루는 본문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책에 실린 에세이는 '비합리', '전쟁', '교조주의'와 같이 당대에는 거대한 영

 

향력을 행사하던 관념을 상대로 한 투쟁의 기록이다. 저자로서는 이에 맞서기 위해 사력을 다 하고

 

있었을 터이지만 일반 독자들이 그 문제의식과 열정의 크기를 모두 공유하는 것은 무리이다. 일단 중

 

요한 것은 '함께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고, 이 때 '적'의 본질을 적시하고 그에 대한 비유, 조롱을

 

통해 이해를 심화시키는 '유머'는 큰 힘을 발휘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 전략이 가장 빛을 발하고 있

 

는 부분은 349쪽부터 5쪽에 걸쳐 실려 있는 '스스로 쓴 부고'인데, 분량이 길지 않으니 이 부분은 직

 

접 읽어 보시길 권한다.

 

 

 

3.

 

메인 디쉬가 소문난 집에 후식까지 이름이 나는 것은 만나기 어려운 일이다. 번역서의 마지막에는

 

체로 옮긴이의 글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서 독자가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내용은 번역을 맡게 되

 

는 과정의 신이함, 번역을 하는 과정의 지난함, 그리고 최초의 독자인 번역자의 독후감과 가족에 대

 

한 감사 등이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어려운 글이지만 다른 언어로 쓰여진 책을 한국어로 접하

 

게 해 준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옮긴이의 글'에서까지

 

유감 없는 상냥함을 떨치고 있다. 번역자인 장성주는 이 책의 의의에 대해 '길게 얘기하려' 했으나

 

커크 윌리스에게 '선수를 빼앗겼'음을 순순히 인정하고, 책에서 언급된 버트런드 러셀의 어떠한 '문

 

적 주장'이 그 후 어떠한 경과를 가졌는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버트런드 러셀을 읽고자 하는 사

 

람에게는 러셀이 직접 집필한 본문의 어떠한 내용에 비해 봐도 결코 그 중요성이 뒤지지 않는 정보이

 

다. 그 저자에 그 역자,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부분이다.

 

 

 

4.

 

한 차례의 독서 만으로 그 내용을 완전히 장악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무척이나 즐거웠고 또 버트런드 러셀의 다른 책들과 이 책이 속한 시리즈인 '철학자의 휴일' 시리즈

 

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탓인지,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보니 처음 볼 때에는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던 표지 그림이 잘 데워진 정종이 담긴 술잔 같아 보인다. 추운 겨울이라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도 받아들고 싶을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입문 뿐 아니라 철학의 입문을 바라는

 

사람에게 건네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0.

 

수상한 시절이라 겁이 나지만, '미국'의 대척점으로 호명된 '소련'의 현실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

 

여기'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겹쳐 보였다. 아전인수 격의 망상인지 옛것을 배워 새로운 것을 깨달

 

은 것인지, 책을 읽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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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종석의 낭만 미래 (고종석, 곰)

 

새 시리즈인 '지식과 책임' 총서의 1차 도서.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해당 시리즈는 '지식인에게 당대의 첨예한 의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와 입장을 묻는' 기획의도를 갖는다 한다. 부정을 감추기 위해, 혹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행동과는 정반대의 말을 내세우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린 세태에 적확한 기획 의도였으며 또한 흥미로운 필자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종석의 '자유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논쟁적인 주제들을 다수 다루고 있다 하니, 우리 사회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나 고종석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나 유용한 교재가 될 듯 하다.

 

 

 

 

 

 

 

 

 

 

 

 

 

 

 

2. 우상의 추락 (미셸 옹프레, 글항아리)

 

지난 세기의 천재들 가운데 아직도 일반 대중에게 강력한 패러다임으로 존재하는 이들이 있다. 프로이트는 아마도 그 선봉에 서 있을 것이다. 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그가 정립하였던 몇 가지의 핵심적인 주장의 대강은 알고 있으며, 또 자신이나 주변의 삶에서 목격한 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혹은 정체를 밝혀낼 방법론조차 명확하게 정립되지 못한 '정신'에 대해, 근대의 태동기에 태어난 단 한 명의 이론이 지속적으로 군림하여도 괜찮은 것일까? 의문을 제기하는 구체적 방법에는 그의 이론 자체를 논증하거나 혹은 사고의 근원인 그의 경험세계를 검증해 보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책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평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후자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경험과 이론 사이에 걸쳐진 다리, 그 다리를 잘 재구해 냈다면 단지 프로이트 개인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인문학적 사고의 방법론에 대한 성찰까지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3. 공범들의 도시 (표창원/지승호, 김영사) 

 

출판사의 책 소개에는 '보수주의자이며 범죄 심리 전문가인 표창원과 진보적이고 대중적인 성향의 지식인 지승호의 대화'라고 되어 있다. 제 3의 길을 모색하는 건설적 토론이 담겨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표창원의 전문 분야로 구성되어 있는 목차를 보면 인터뷰어 지승호가 꾸준히 행해 온 인터뷰 북의 신작인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선에서는 이른바 '진영'을 월경하는 이들이 이전에 비해 더 많이 눈에 띄었는데, 선거가 끝나고 열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선거 전 만큼의 열기로 발언을 하고 있는 이는 표창원이 거의 유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주의자이나 보수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우리는 당연한 현재로 살고 있으나 언젠가의 미래에는 반드시 괴상한 과거였다고 평가하게 될, 현실을 기록해 두는 데 있어 그와의 인터뷰만큼 상징적인 것이 있을까. 에두르는 수사보다는 철침같은 직언이 더 많길 기대한다.

 

 

 

 

 

 

 

 

 

 

 

 

 

 

 

 

 

 

4. 국정원을 말한다 (신경민, 비타베아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은 수사의 과정까지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아직 완전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판결이 난다 할지라도 그것은 법률적인 종결일 뿐 정치적이나 도의적 맥락은 아주 긴 시간동안 한국 사회를 맴돌 것이다. 같은 근거를 놓고도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주관을 갖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역시 '사실'을 확인하는 길일 것이다. 책의 필자가 현역 민주당 의원이고, 그 중에서도 비교적 개혁적 색채를 갖고 있는 신경민 의원이니 완전하게 가치 중립적인 자료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목차를 보면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배치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다.  작게는 정보 기관의 올바른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보는 재료에서부터 크게는 이처럼 큰 사건을 통해 드러나게 된 한국 사회의 갈등과 폐해에 대해 성찰해 보는 단초로 삼을 수 있겠다.

 

 

 

 

 

 

 

 

 

 

 

 

 

 

 

 

5. 사진예술의 풍경들 (진동선, 문예중앙)

 

스마트폰의 광범위한 보급 이후로 제한해 보면, 가장 선호하는 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답이 갈릴 수 있어도 가장 가까운 예술이나 손쉬운 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사진이라는 답이 압도적인 수를 차지할 것이다. '예술'이 맞는지 '얘술'이 맞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할 꼬마 아이들도 머리를 새로 자르거나 길에서 연예인을 만나면 사진 작가가 된다. 사진이 반드시 예술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진이 본디 예술이었고 언제든 예술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사진의 예술로서의 정체성을 공부하려는 데에, 유명 작가들의 사진의 분석을 통해 연원, 구성, 효과 등의 다종한 카테고리를 설명하는 이 책, 기댈만한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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