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핑커의 책들은 전달하려는 내용과 전달하려는 방식을, 충분히 숙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가 다루는 영역인 언어와 마음에 대한 배경지식이 일반독자들에게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핑커가 책 전체 구성을 잡는 방법이나, 자신이 잡은 차례 속에서 글을 풀어내는 방식이 몇몇 지점에서는 썩 명쾌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충실한 언어학자로서 자신의 커리어에서 나오는 영민하고 재치있는 글솜씨는 인정한다.

마음에 관한 <마음의 과학>은 이런 그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예인 거 같다.

 

 

 

 

 

 

 

 

 

 

 

 

 

마음을 가지고 쓰는 글은 어떤 모습을 띨 수 있을까? 방향은 조금 다른지만, 심신문제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책들의 차례들은 이렇다. 처칠랜드의 책은 누구나 익숙한 구성을 띤다. <물질과 의식>에서, 2. 존재론적 문제 3. 의미론적 문제 4. 인식론적 문제 5. 방법론적 문제 6. 인공지능 7. 신경과학 으로 차례를 잡아 심신문제를 다루는 철학적인 지형도를 초보자에게 도움이 될정도로 잘 그려준다.

김재권의 책은 이 철학 지형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그의 책 <심리철학>에서, 001. 영혼으로서의 마음 002. 행동으로서의 마음 003. 두뇌로서의 마음 004. 컴퓨터로서의 마음 005. 인간적 구조로서의 마음 006. 심적 인과성 007. 의식 008. 심성내용 009. 환원적 물리주의와 비환원적 물리주의 으로 차례를 잡아 심신문제를 다룬다. 특히 이 책은 단순히 시간순으로 배열한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관심, 성과, 그 한계를 담아 정리하고, 그 다음 시대가 그 한계를 어떤 방식으로 뛰어넘으려 했는지를 반복하면서 보여주고 있다. 심신문제를 지적으로 아름답다고 할만큼 문제-해결 방식으로 뛰어나게 기술하고 있다. 끝 부분에서는 저자의 관심영역인 심신수반문제로 집중하여 마무리한다.

 

 

 

 

 

 

 

 

 

 

 

 

 

하지만 스티브 핑커의 책은 이런 방식은 아니다. 그의 방식은 로버트 라일 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 처칠랜드가 철학적 행태주의 범주안에 위치시킨, 영민하고 세밀한 지적질이 주된 방식인 라일의 방법이 계속 생각난다. 스티브 핑커는 계산  과 진화심리학이라는, 자신이 인정하듯이, 다른 사람의 연구틀을 가지고, 여러 수준과 여러 영역에 걸쳐 있는, 심신에 관한 여러 편견과 오해를 풀어 주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각 영역과 일반 사람들의 잘못된 지식에 대한 세련된 지적질이 주를 이루는 인상이다. 자신이 주장하려는 뚜렷한 방향없이, 계속해서 낯설고 새로운 지적인 도구를 끌어 들여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자신의 주장과 해결책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현안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깊은 이해가 따르지는 않은 인상이다. 또 다른 책 <빈 서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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