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영역이 진리일 수 있다?? 이성과 합리로 무장한, 스스로를 지적인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곤란한 상황이다. 과도한 감정과 감성이 어떻게, 개인의 내면에서라도, 진리일 수 있을까? 루소의 작품 <신 엘로이즈>나 <고백록>을 보면, 주인공이나 저자가 어느 순간에서만큼은 자신의 상황을 충실하게 감성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작품 내내 그런 태도로 진행하는 모습에는, 지나친 감정의 충만함으로 읽는데 감정의 피곤함마저 든다. 물론 충분히 동시대인이 절대적이고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던 쟝르일 수 있음은 알게 되었다.

공감하거나 그렇지 않거나인 루소의 변명과 의도는 칸트에 와서 이해될 수 있었다.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는 그런 감성을 이해하려는 작업을 한 거 같다.

 

 

 

 

 

 

 

 

 

 

 

 

 

 

많은 사람들이 <판단력 비판>을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추천하는 김상현의 책이다(그 중 한명은 <중용한글역주>에서 신나게 중용의 철학적 가치를 열창하는 김용옥이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태도는 지적이라고 여기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루소의 독자나 칸트의 독자가 감성적인 영역에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하다고 하겠지만, 오늘날 독자에게는 그런 동기부여는 유효하지 않다. 여기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감성의 영역이 진리일 수 있을까? 진리라면 어떤 종류일까? 이런 얘기들이 김상현의 책에 녹아 있다.

루소가 펼친 감성의 영역은 당시 이성중심의 계몽사상가들과 충분한 교류와 함께 구축된 것으로, 다음 시대 감성인 낭만주의로까지 영향을 준다.

 

 

 

 

 

 

 

 

 

 

 

 

 

김진수의 책에는 이러한 감성의 영역이 오늘날 독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논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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