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전국 시대 글을 보며, 서양 수사학 전통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새삼느낀다. 공자의 행적이나 논어에 모여 있는 글들을 볼 때면, 예를 들어 핑가레트의 철학자 관점에서 논어를 들여다보는 방식은 논어에 나온 한자 중에서 철학적 개념을 지녔을 것들을 대상으로(도, 인, 예, 의) 철학적 분석을 통해 공자의 사상을 정리한다. 문헌중심의 이런 태도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논어의 사상을 들여다보는 넓은 시야는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마르셀 그라네가 <중국사유>에서 폭넓은 방식으로

 

 

 

 

 

 

 

 

 

 

 

 

 

 

 

 

그와 같은 면모는 의례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완전히 예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여러 의례 절차와 과정들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바가 있다.

 

 

 

 

 

 

 

 

 

 

 

 

 

 

 

 

 

 

 

그렇게 의례를 모아 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잊혀져가는 의례를 보존하기 위해서 일까? 그런 이유도 의례를 수집한 의도 중 하나겠지만, 고대 중국 현자에게는 그에 버금가는 다른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의례는 의례에 집중했지만
인간이라면 떠올릴 범주들이 도 예 인 의(인간이 인간다움, 임금이 임금다움...)랄 수 있다.

 

논어가 가진 동아시아의 위치는 수많은 맹신을 낳았고, 이를 경계하고 분석한 글들이 최근 인기다.

강신주 <관중과 공자>에서 강조한 공자관은 당대 정치와 경제 현실 중심으로 가치를 매겼기 때문에 논어에서 전하는 내용의 가치를 깍아내릴 수 밖에 없다. 리링이 보는 논어는 현대 중국인이 가질법한 공자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경계하고, 논어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방법을 그의 말대로 논어를 세번 찢으며 탐색한다.

 

 

 

 

 

 

 

 

 

 

 

 

 

 

 

 

논어의 본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은 고고학과 뗄레야 뗄 수 없다. 최근 번역된 <고고학 증거로 본 공자시대 중국사회>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카이즈카 시게키가 <공자의 생애와 사상>에서 제시한 모습도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논어의 화자, 공자가 어떤 인물인가, 그의 고결한 학자의 모습말고, 그 당시 선생님 될 만한 학식과 사회적 위치가 어떤 환경에서 주어지는지

 

 

 

 

 

 

 

 

 

 

 

 

 

 

 

 

논어가 백화라는 대화체 형식에, 한 권 책으로 보기에는 통일성이나 쳬계가 없는 어록에 가깝지만,

각각의 글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그 과정에서 고대 중국 선생님이 의미를 현실로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방식은, 당연한 일이지만 일반적인 글쓰기와는 전연 다른 기반을 갖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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