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자료가 없는 시기인, 상나라은허시기 이전은, 거의 고고학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거꾸로 고고학관점으로는 도무지 보기 힘든 영역도 적지 않은거 같다.

그래도 고고학으로 그동안 억측이나 문자전승에만 기댔던 미지의 영역이 몇몇은 뚜렷해져 보인다. 문자전승에 따라 하상주 삼대 중 하나라라고 중국측에서 주장하는 중국 초기국가와 상나라 후기 이전 초기 중기 상나라에 관한 고고학자들의 주장이 다음 책들에 잘 정리되어 있다.















<중국고고학>에서는 얼리타우, 얼리강 문화 속 초기국가의 문화 복잡도가 주변 지역을 압도한다고 보고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수십개의 문화가 얼리타우 지역 포함 중국 지역 에서 자생하고 있었지만, 국가급의 복잡도가 등장한 것은 얼리강 문화가 처음이라고 한다.

중국고고학에서 문화복잡도는 최고위층이 주도하는 제사와 의례용품(고급 청동기) 제조에 관련된 것, 제조에 필요한 자원수집, 일상용품(일상 청동기, 자기) 제조, 자연자원(소금) 채취 등에 따라 나뉘는 거 같다. 수도, 지역중심지, 거점지역 그 일들을 나눠서 한다.

그리고 청동기나 합금의 비율로도 문화를 볼 수 있다. 청동기 서역기원설도 있었지만, 청동기 합금 비율이 중국중원 기원과 유라시아초원 지역은 차이가 커, 오히려 상나라 영향권인지, 유라시아초원 영향권인지 구별을 준다.

상나라 중심으로 문화력을 기술하면, 상나라 초기 주변 문화에 비하여 우위에 서서 주변지역으로 확장해 들어갔고(문화적 영토상 모두), 상나라 중기가 되면 이러한 우위는 힘을 잃어 수도나 지역중심지에 방어시설이 크게 늘고 문화적 전파는 줄게 된다. 은허시기인 상나라 후기에서는 조금 회복하는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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