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는 점점 느낌이 안좋아진다. 절반 정도 읽었는데, 무위와 덕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참신한 시야에서 점차 미국꼰대로 들어서는 변환을 목격하는 중이다. 장자의 포정고사를 인용하면서, 포정의 칼이 소를 해체하는 것이, 마치, 인간이 세상의 풍파에 사는 적절한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은 참 인상적이었다. 보통, 인위적인 마음을 덜어내는 무위를 가르키는 해석을 주로 접하다가, 이런 해석을 들으니 괜찮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위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개념과 얼만큼 같고 다른지 비교도 흡족했다.
















그러다가 점차 공자와 논어를 인용하면서, 무위보다는 유위에 초점을 맞추어 얘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맹자와 순자도 간간히 인용되면서, 유교감성의 정신집중법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마음을 비우는 무위에서 시작했다가, 어떠한 생활태도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자연스럽게 실행하는 유위로 전환하고, 이 둘을 비슷한 경지로 여기는 듯하다. 공자가 40, 50, 60 이 되면서 이르게 되는 경지를 마음을 비운 포정과 유사한 경지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인용되는 고전 번역도, 영어원문에서 직역한 문체가 주는, 한문고전에 익숙치않은 불확실함이 내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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