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영역에서 형이상학의 가치를 확인하려면, 논리학을 통해 들어가기 쉽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을 대표하는 <논리철학논고>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유명한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에서도, 동굴속에서 비치는 빛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우리들이라는 설정을 전제로 삼고 있어, 형이상학과 논리학이 어떻게 우리들 인식으로 들어와 자리잡은 지를 살짝이나마 보여여준다. 이 빛과 그림자와 동굴의 비유는 언어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 같다. 언어에서 지칭과 언어의 의미를 이 중 어느 곳에 할당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오해와 이해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언어에 대한 연구를 비트겐슈타인의 저서에서 흥미롭게 확인할 수 있고, 뜬금없지만 데리다의 수많은 논의가 언어에 대한 어떤이해를 토대로 삼아 이루어졌는지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승종의 아래 책에서 재밌게 읽은 내용이다.
제일 내 마음을 끄는 생각은, 언어영역이 동굴이고 동굴을 만든 이도 언어영역자체여서, 언어영역에 대하여 알아진 것이 생겨도 여전히 남은 부분은 검은 동굴 내부라는 것이다. 이 동굴을 만드는 방법도 알아야 하고, 만들어진 동굴도 알아야 한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나 Pinker의 <Stuff of Thought>를 보면서,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지는데 그 알아진 것으로 다시 생각지 못한 어둠이 내린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태반은 내 무지때문이지만).
소쉬르의 연구와 비트겐슈타인의 연구를 비교하는 것은 엄청 흥미진진한 모험일 수 밖에 없다. 잘 알려진 책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