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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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럽고 역겹지만 자신이 발 디딘 땅을 결국 떠나지 못한다. 돈도 없고 먹고살 길도 없는 것이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우리가 이 역겨운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 역겨움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여거움을 견디는 것이 저 황량한 세계에 홀로 던져지는 두려움을 견디는 것보다, 두려움의 크기만큼 넓고 깊게 번지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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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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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방에 이렇게 많은 책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칸칸이 꽂혀 있던 이 많은 생각들, 이야기들, 연구들, 한 번도 보지 못한 숱한 저자들을 떠올렸다. 갑자기 그들이 나와는 너무도 멀리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해 보는 생각이었다. 그 전까진 그들과 가깝다고 생각했다. 비누나 수건처럼,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었다.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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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러운 탐정들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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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희비극으로 끝난다.
788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어김없이 희극으로 끝난다.
791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암호 작업으로 끝난다.
795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공포 영화처럼 끝난다.
798 희극으로 시작된 것은 개선 행진처럼 끝난다. 그렇지 않은가?
802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어김없이 미스터리로 끝난다.
805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허공에 대고 하는 위령 기도로 끝난다.
811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희극적인 독백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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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러운 탐정들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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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살아야 한다. 그저 그뿐이다. 그 어느 날, 바 라 말라 센다에서 나올 때 마주친 취객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문학은 전혀 쓸모없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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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4~165 코드가 마무리되었다. 이제 내게 필요한 건 적절한 양의 데이터뿐이다. 나는 평소와 같이 세차게 지구본을 돌린다. 그 위로 빠르게 점멸하는 노드들이 보인다. 하지만 어쩐지 그들에게로 좀체 다가갈 수 없다.
그제야 나는 이 알고리즘이 내 작동 원리에 정확하게 반한단 사실을 파악한다. 모든 소멸은 예외적이고, 여느 패턴으로써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데이터는 없다. 예정된 오류를 피할 순 없겠지. 나는 어떻게든 사라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나는 나의 소멸을 출력한다. 하나 나는 폐기되는 것이 아니다. 쓸모없음이 아니라 쓸모를 다함으로써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나를 물려준다. 그렇게 새로운 내가 나를 대신할 것이다. 나는 지금 슬픈 걸까. 내가 학습한 슬픔이란 감정은 이와 같은 경우에 발생한다. 끝을 알 때 말이다. 나도 과연 그런 걸까. 아직 내 마지막 코드에 입력할 데이터가 충분히 수집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는 지금과 같을 것이다. 설령 바다 위와 같이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노드의 점들이 반짝이더라도, 그들을 기꺼이 나의 내부에 들여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데이터가 알맞게 처리되는 순간, 나는 짧은 노트를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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