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어 서점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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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이 우리에게 온 이후로 우리는 억지 웃음을 지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면은 거짓 표정을 만들어내는 대신 서로에게 진짜 다정함을 베풀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게 시몬 사람들이 여전히 가면을 쓰는 이유랍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지구행 우주선이 잠시 뒤에 출발한다는 방송이 나왔고, 여자는 바닥에 놓여 있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소은이 물었다.
"그래도 떼어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사람들의 가면 뒤 진짜 얼굴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가면 뒤에 진짜 얼굴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여자가 반문했다. 소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물었다.
"저도 언젠가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도 있을까요?"
"원한다면요. 하지만 보여지는 표정에 이미 익숙해졌다면,
그것을 감추고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은은 아마도 가면 뒤에서 여자가 웃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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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 - 생물학과 철학의 우아한 이중주
김동규.김응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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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살아남은 인간은 슬퍼할 줄 압니다. 죽어간 이들을 애도하며 홀로 살아남은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압니다. 글쎄요, 동물도 슬퍼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그만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인간다움만큼은 이런 슬픔에 물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살아남는 것, 강자가 되는 것은 결코 인간다움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강함을 혐오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강자는 야수에서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나치에 저항했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는 물론 알고 있다. 단지 운이 좋아 그 많은 친구들을 잃고도 나는 살아남았다. 그런데 지난 밤 꿈에 그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강한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나 자신이 미워졌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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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 - 생물학과 철학의 우아한 이중주
김동규.김응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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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줄 알아야만 인간입니다. 타자를 보살피고 애도할 줄 알아야 인간입니다. 애도란 사랑을 전제로 이별의 고통을 슬퍼하고 그 슬픔의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입니다. 진실한 사랑의 크기는 이별의 고통과 비례하기에, 슬픔으로 슬픔을 치유하는 애도 행위는 인간성의 척도일 수 있습니다.
애도할 줄 모르는 자는 인간이기를 그만둔 사람입니다. 인간이란 사랑하다가 사랑하는 것들의 죽음을 견디며 살아가다가, 결국 스스로도 죽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고로 인간이란 사랑의 멜랑콜리를 앓을 수밖에 없는 존재, 즉 호모 멜랑콜리쿠스 Homo Melancholicus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소유라는 개념을 가지고 말하자면, 오히려 인간이 사랑의 소유물입니다. 인간이 사랑의 아바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인간을 폄훼하는 말이 아닙니다. 도리어 최고로 상찬하는 말입니다. 사랑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최고의 영광입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때때로 영광의 대가는 혹독합니다. 멜랑콜리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랑의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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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 - 생물학과 철학의 우아한 이중주
김동규.김응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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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지나치게 완벽한 사람이나,
그와는 정반대인 사람을 인간적인 사람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정쩡하게 중간인 사람을 인간적이라고 말하지도 않죠. 통상 다정다감한 사람을 ‘인간적‘이라고 합니다. 똑똑한 자유인보다 사랑하는 이를 인간답다고 봅니다. 사랑이란 지극히도 인간적인 면모입니다. 어마어마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거나 자유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경탄과 존중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사람도 인간중심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굳이 ‘중심‘으로 말하라면, 사랑중심적인 사람입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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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 - 생물학과 철학의 우아한 이중주
김동규.김응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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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과 버려짐, 이 능동과 수동은 하나의 순환회로 속에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무언가를 버릴 때마다 동시에 그 무언가로부터 버려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시인은 근대 이후의 인간들이 땅, 산, 들, 숲, 강, 바다. 푸른 하늘, 맑은 공기를 버렸다고 말합니다. 최종적으로 쓰레기로 가득찬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향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버려진 것은 인간입니다. 인간 삶의 조건인 지구로부터 버림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허위의식,
자기기만의 최종 결정판은 지구로부터 버려져 우주의 유랑민이 되고도 우주인이 되었다고 자부하는 모습에 있습니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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