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논어 (양장) - 세상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고전 ㅣ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4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원문 [繪事後素]를 번역한 글.
"'고운 미소에 팬 보조개, 아름다운 눈동자에 또렷한 눈, 흰 바탕에 여러 가지 색깔을 그렸구나'라는 말은 무슨 뚯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 이후의 일이다."
자하가 여쭈었다.
"예는 [인의] 다음에 온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깨우는 자는 상 商이로구나.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
김원중 번역 논어의 총20편중 제3편 팔일에 나오는 사람은 좋은 바탕이 있은 뒤에 문식(文飾)을 더해야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인 [繪事後素]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현대 문화, 예술, 방송등에서 종종 "표현의 자유"에 대해 논란이 불거질때 염두에 두면 좋을만한 공자의 말씀인 것 같다.
모름지기 반듯하고 단단한 바탕위에서 생성되어진 [표현]이 아니고서는 그 가치를 인정함에 있어서 엄정한 잣대가 필요한 세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검증되어지지 않은 쭉정이 같은 언어들이 무성한 인터넷상의 세상에서 객관적이거나 전문적인 바탕이 없이 사람들은 이리저리 휩쓸려다니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인한 사람을 이웃으로- 논어 제4편 이인里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을이 인仁한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스스로]가려서 인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살지 못하면, 어찌 지혜로움을 얻었다고 하겠는가?"
[맹모삼천지교]가 떠오르는 교육을 위한 맹모들의 이사철 분주함이 생각난다.
하지만 정작 머물만한 장소에 자리를 잡을 줄 아는 지혜야말로 삶의 근본적 소양이라는 논리는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이다. 사람도 가려서 사귀어야 하듯 제 몸이 살아나가는 터를 선택함에 있어 기준이 仁이라는 것은 현대인들의 삶으로 끌어온다해도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가?" 하는 물음에 "그렇다면 仁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살아라!"하는 해답이 완벽하지 않은가.
신설되는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혹은 신도시의 유망한 아파트 집 가격의 투자성을 따져서 철새처럼 이동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仁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존재하는가?
논어의 내용이 아니어도 김원중 번역본의 가치를 떠나서도 공자가 지향하는 바가 공통적으로 어느것인가를 분별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논어의 번역을 위한 학문적 소양이 얼마나 위대한 역자인지 책의 전문적 편집의도가 얼마나 우수한 수준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논어의 내용이 고전부터 현대를 막론하고 그 위대함을 높이 평가하는 근거는 바로 [참된진리]를 말하고 있어서가 아닐까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공자의 네 가지 가르침을 제자는 학문, 덕행, 충심, 신의라 전하고 있다.
"선한 사람은 내가 만나보지 못하는구나.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 없으면서 있는 척하고, 비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척하며, 곤궁하면서도 부자인 척하니, 어렵구나, 한결같음을 지닌다는 것이!"
공자의 이 말을 귀담아 듣고서 한결같음을 지닌 우리가 되기위해 애를 쓴다면 우리가 머무는 이곳은 저절로 仁한 세상이 될 것이다.
교육자이건 정치인이건 종교인, 학부모... 仁한 세상을 이루는 바탕이 되어야할 바로 자신.
공자의 [논어]를 읽는 풍토가 환영받는 다는 것은 좋은 조짐이 아닐 수 없다.
김원중님의 [논어]번역이 어느정도의 훌륭한 전문성을 보여주는지 가늠하기조차 불가한 범상하기그지없는 독자로서 감상을 말하자면 [논어]를 읽었다면 비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척할 것이 아니라 仁한 세상의 바탕이 되는 일에 힘써야한다는 것이다. 지혜를 얻는 자격엔 제약이 없으니......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