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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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평생 끊임없이 찾길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사는 동안 바라보면 내 옆 자리에 있고, 그래서 등이 따뜻해지는 존재를 찾는 일이 아닐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톨스토이도 사람은 오직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고 말했듯 사랑이란 감정이 인간의 그 어떤 일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쯤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진정한 사랑을 얻는 행운을 누리는 이는 한정되어 있다.  그것도 첫사랑을.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랑을 찾게 되며 그 안에서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차가운 공기가 물러간 후 잠깐, 아주 잠깐 화려한 몸짓으로 인간을 유혹하는 꽃나무가 유한하기에 아름답게 느껴지듯 사랑 역시 항상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기에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여겨지는 것이리라.

 

이 소설 [막스 티볼리의 고백]은 주인공 막스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이다.  늙은 몸을 가지고 태어난 막스는 나이가 들면서 어려지는, 정상인의 성장과정을 역행하는 몸을 가지고 태어난 슬픈 남자이다.  그는 17살에 만난 14살 소녀만 평생 사랑한다.  그녀가 그를 떠났을 때도 오직 그녀만을 사랑한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때도.  그러나 그와 그녀는 운명인 듯 보인다.  그는 그녀가 운명인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제 3자가 지켜보는 사랑은 한 발 빠르거나 한 발 늦거나하는 타이밍이 어긋날 때, 아니면 타인이 끼어들 때 더 흥미진진해 지는 법이다.  그게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일지 알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재미를 위해 막스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는 자신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친구를 버렸기 때문이다.  마지막에는 버리려고 했던 모든 것, 가족도 친구도 잃어버리게 되고, 그가 평생 그토록 원하던 그녀도 잃어버렸지만 말이다.

 

살면서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행운아가 아닐까.  정상인과 다르다는 측면에서 그는 불행한 사람일지 모르겠으나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찾았다는 측면에서 그는 틀림없는 행운아이다.  그래서 그의 고백이 슬프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쓸쓸하지만 행복하게 느껴진다.  내 삶이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인간의 삶이 막스 티볼리의 고백처럼 그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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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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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죽임을 당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누군가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철저히 망가진 후 피살되었다.  내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나는 온전한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진다'는 말도 있듯 시간이 지나면 미어지는 마음도, 억울한 마음도 조금씩 덜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잊고 살 수 있을까.  살아 움직이는 동안 단 1초라도 편한 마음으로 쉴 수 있을까. 
 
가족을 죽인 자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그 불행이 내게 닥친 일이라고 하더라도 용서의 미덕을 운운하며, 받은 대로 똑같이 되갚아 준다는 복수만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내 일이 아니라면 복수를 기도하는 마음 앞에서, 처벌은 법에 맡기라고 말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안타깝고 슬픈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복수를 하면 살인자와 똑같은 수준 밖에 안 된다고, 복수가 가족의 상실을 대체하여 주진 않는다는 뻔한 사실들만 늘어놓을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내 일이라면 나는 살인자를 가만 놔둘 수 없다.  그럴 수 없다. 
 
책읽기를 마친지 한참이 지났지만 쉽게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불행이 내게 닥쳤을 때와 다른 사람에게 닥쳤을 때 너무 큰 차이를 보이며 합일점을 찾을 수 없는 방황하는 내 시선 앞에서, 무엇이 옳다고 콕 찍어 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난 나만 괜찮다면 다른 사람은 어떤 고통을 받든 상관없는, 무관심한 사람이었나 보다.    
 
세상에는 정의의 이름으로 수많은 행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행위들이 모두 약자의 억울한 심사를 헤아려 주지는 않는다.  이 책 [방황하는 칼날]의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측면을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은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소녀를 죽인 살인자는 미성년자이다.  미성년자는 중한 죄를 짓더라도 앞으로 얼마든지 올바른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성인보다 가벼운 처벌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소년법에 근거하여 보호받는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p129) 공평하지 못한 법에 실망한 소녀의 아버지, 나가미네는 딸아이를 죽인 범인 두 명 중 한 명을 칼로 찔러 죽인 후, 나머지 한 명에게도 똑같이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나가미네의 추가 살인을 막는 동시에 어디론가 숨어버린 소년 한 명을 붙잡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은 총력을 기울인다.  언론에서는 연일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전 국민의 시선은 나가미네에게 쏠린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시민들의 시선은 나의 시선과 똑같이 방황한다.  심지어 경찰 내부에서도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 게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는 일인지에 대해 자문하면서 그들조차도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지 못하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소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 그리고 타인, 나아가 세상을 발가벗겨놓는다.  겉으로 보기에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듯 보이는 세상이란 숲에 감춰져있는 극심한 이기주의를 표면으로 끌어올려 이웃의 고통을 모른 체하는 메마른 풍토에 대해 이야기한다.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 소설 속 인물이 내 모습이고, 소설 속 세상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기에, 부끄럽다는 생각 외에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앞에서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느끼지만 뒤돌아서서는 금방 잊어버린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 일이 아니라서 절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관심으로 외면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언제나 앞만 바라보고 있고 옆을 보기 위해서는 몸을 완전히 돌려야 한다.  그래서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까지 이런 내 모습은 성격 때문이라서 고칠 수 없다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성격 탓이 아니라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나의 작은 관심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이 모인다면 세상에서 상처받아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는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그리고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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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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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마침표를 보고 책을 덮는 순간, 나는 웃음이 터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다카하시 겐이치로를 비웃는 게 아니었다.  이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독특한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 라는 느낌을 담은 존경과 호기심을 표현하는 웃음이랄까.  이 웃음의 의미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작품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를 읽지 아니한 이는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 웃음이 계속 나오는군.  히히.
 
글쓰기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어서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고뇌하는 마음.  글을 쓰겠다는 진지한 자세.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에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 글쓰기는 어렵고 험난한 길임에 틀림없구나, 나는 좋은 글을 쓸 재목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되는가.  나 역시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 왔다.  책을 읽은 후 쓰는 글(지금 쓰고 있는 글)도 가끔은 너무나 막막해서 아무것도 쓸 수 없을 때가 있는데, 하물며 소설이나 시 쓰기를 시도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발전은커녕 퇴보하고 있는 부끄러운 글쓰기 실력을 알고 있는 내가 어떻게 나만의 작품을 창작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누구나 쉽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행복한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가르쳐 주는 글쓰기 수업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편안하게 앉아서 웃을 준비만 하면 끝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글쓰기를 시작할 때 어떤 준비도 필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무엇에 대해 쓸까, 어떻게 전개시켜 나갈까 등은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바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소설과 놀아주라고 말한다.  그의 말들은 약간은 뜬금없다.  마지막에 가서 좋아하는 작품을 흉내 내라는 말은 당혹스럽기 까지 하다.  그가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알려주는 20가지는 이렇듯 고개가 갸우뚱 거려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가 말한 대로 하면 정말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건 왜일까.  이상하다.  이상하다.  너무 쉽잖아.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그의 문체를 흉내 내 보려는 시도를 해 보았다.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이라 어설프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만족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쓰는 동안 정말 즐거웠다.  그리고 계속 웃음이 나온다.  하하.
 
첫인상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내 마음 속에 독특하지만 즐거운 사람, 글을 통해 즐거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는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그가 무조건 좋아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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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미술관 -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정혜신 지음, 전용성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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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마지막에 읽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그 책은 즐겁고 기쁠 때보다 우울하고 슬플 때 찾게 됩니다.  머리가 복잡해서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찾게 됩니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그 책을 읽고 있으면 나에게로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요 며칠 마음이 가볍지 못했습니다.  회사만 가면 갇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와 하루 종일 기운이 없었습니다.  아주 가끔씩 만나는 슬럼프가 올 봄에 나를 찾아왔나봅니다.  왜 하필이면 이때야, 라며 투덜거렸습니다.  더없이 좋은 날씨와 자연, 그 안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나만 외톨이가 된 것 같아 속상했습니다.  어떻게든 마음을 풀어야 하는데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내게 손을 내밀고 다가와 준 이가 있습니다.  바로 이 책, [마음 미술관]입니다.
 
간혹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안에 모든 것을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 적당한 그 누군가를 찾기란 힘든 일입니다.  나를 도와줄 자는 나뿐입니다.  홀로 마음을 추스르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나를 도와줄 자는 나뿐이라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혼자 있다고 생각했지만 혼자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항상 이 책과 함께였습니다.  한 번 읽은 후 책장에 꽂고 뒤돌아 설 수 없었던 이유, 석 달이 넘도록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책 [마음 미술관]은 그림 하나, 그리고 그림에서 떠올린 글 하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림과 글 하나씩, 수십 장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이 책에 담겨진 그림과 글은 난해하거나 딱딱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우리네 정서에 친숙한 그림과 또 그런 그림에 어울리는 단아한 문체를 가진 글이 한 권의 책 속에서 한 호흡으로 숨 쉬고 있습니다.  쉼 쉬고 있는 글들이 벌떡 일어나 때로는 나를 꾸짖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깨우쳐주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나는 반성하고 위로받으며 희망을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의 어리석음과 욕심을 바로 보게 됩니다.  내게 이런 마음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마음 미술관]은 나, 자신에게 솔직해 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내 앞에 벌거벗은 내가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나는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아직 성숙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나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 노력했다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나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외치지만 정작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지금보다 더 아플까봐 겁이 나서요.  하지만 지금은 겁나지 않습니다.  겁이 날 때마다 내 옆에 있어줄 친구가 있으니까요.  그 친구는 나를 외면하지 않고 언제나 내 옆에 있으리란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오늘도 나는 미술관에 갈 계획입니다.  마음 미술관에 가는 길은 한 번 갈 때마다 나에게로 한 걸음 가까워지는 길이지요.  [마음 미술관]으로 가는 길, 저와 함께 가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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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온화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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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를 아시나요.  판도라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때 신으로부터 받은 상자 하나를 가지고 옵니다.  어느 날 호기심이 발동한 판도라는 절대로 열면 안 된다는 신의 당부를 무시하고 상자를 열기로 결심합니다.  상자 안에는 질병, 재앙, 슬픔, 아픔, 괴로움, 미움 등 온갖 나쁜 것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나쁘다는 감정을 모르고 지내던 인간들은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간이 흐른 후 인간들은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판도라의 상자 맨 밑에 있던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나쁜 일, 힘든 일이 있더라도 인간에게는 마지막에 희망이 찾아옵니다.  그 때문에 인간은 살 수 있었던 게지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소설 [연민]은 희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한 가정에 젊고 멋진 남성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호프밀러는 쥐꼬리만큼 받는 장교(소위) 월급과 큰어머니가 매달 얼마씩 보내 주시는 돈으로 생활하는 가난한 청년입니다.  그런 그는 자신을 대단할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귀족집안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바로 케케스팔바 씨입니다.  귀족의 성에는 늙은 아버지 케케스팔바와 딸 에디트, 조카 일로나가 살고 있습니다.  오래 전 케케스팔바의 성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습니다.  아내가 죽고 어린 딸은 장애인이 되어 걸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케케스팔바의 성에는 돈과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아픔, 슬픔, 고통, 의심 등 모든 게 존재합니다.  그런데 단 하나 희망만이 없었습니다.  그 희망을 가지고 온 자가 바로 호프밀러입니다.  호프밀러는 자신이 그들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었다는 데 짜릿함을 느낍니다.  자신을 미비한 존재로 여겼던 그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단지 그 기분에 도취되어 그는 의도하지 않은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판도라 역시 세상에 나쁜 것들을 보낸 게 의도했던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요.  케케스팔바의 가족들은 희망을 보았고, 그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고 욕심을 내면서, 그 욕심은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끝내 절망이 이르게 됩니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호프밀러가 케케스팔바 씨 집에 드나들면서 가졌던 처음 감정은 연민, 동정심이었습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데 우쭐함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행복해서 그 또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에디트에게 생각지 못한 고백을 받게 되면서 그는 혼란스러워집니다.  아니 당황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숙하지 못한 그의 마음은 장애인인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면서 혹시나 그녀가, 그녀의 가족이 그의 진심을 알지 못할까봐 동분서주합니다.  하지만 희망도 때가 있나 봅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케케스팔바의 집안으로 희망이 오려는 찰나, 상자는 닫히고 맙니다.
 
결단력 없고 책임감 없는 호프밀러와 대조되는 인물로 작가는 의사 콘도르를 등장시킵니다.  그는 자신이 치료하다 눈이 먼 맹인과 결혼합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려고 또 누군가는 맹인 여자의 재산이 탐나서 결혼했다고들 하지만 그녀 옆에 있는 콘도르는 슬퍼 보이지 않습니다.  불행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연민이 사랑의 출발선이었다 하더라도 결승선은 결코 연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의 종류가 여러 가지 이듯 사랑의 정답 역시 없습니다.  어떤 방법이 옳다 그르다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상처 받지 않고 상처 입지 않는 사랑이 누구나 원하는 게 아닐까요.  나 역시 그러니까요.
 
이 작품은 1939년에 출판된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입니다.  그의 작품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문체는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이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표현한 그의 문체에 빨려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알게 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와의 인연의 끈을 이대로 놓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나의 이 마음은 어쩌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호기심일 지도 모릅니다.  어쩐지 그의 생은 불행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입니다.  어서 그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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