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족이 죽임을 당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누군가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철저히 망가진 후 피살되었다.  내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나는 온전한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진다'는 말도 있듯 시간이 지나면 미어지는 마음도, 억울한 마음도 조금씩 덜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잊고 살 수 있을까.  살아 움직이는 동안 단 1초라도 편한 마음으로 쉴 수 있을까. 
 
가족을 죽인 자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그 불행이 내게 닥친 일이라고 하더라도 용서의 미덕을 운운하며, 받은 대로 똑같이 되갚아 준다는 복수만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내 일이 아니라면 복수를 기도하는 마음 앞에서, 처벌은 법에 맡기라고 말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안타깝고 슬픈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복수를 하면 살인자와 똑같은 수준 밖에 안 된다고, 복수가 가족의 상실을 대체하여 주진 않는다는 뻔한 사실들만 늘어놓을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내 일이라면 나는 살인자를 가만 놔둘 수 없다.  그럴 수 없다. 
 
책읽기를 마친지 한참이 지났지만 쉽게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불행이 내게 닥쳤을 때와 다른 사람에게 닥쳤을 때 너무 큰 차이를 보이며 합일점을 찾을 수 없는 방황하는 내 시선 앞에서, 무엇이 옳다고 콕 찍어 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난 나만 괜찮다면 다른 사람은 어떤 고통을 받든 상관없는, 무관심한 사람이었나 보다.    
 
세상에는 정의의 이름으로 수많은 행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행위들이 모두 약자의 억울한 심사를 헤아려 주지는 않는다.  이 책 [방황하는 칼날]의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측면을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은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소녀를 죽인 살인자는 미성년자이다.  미성년자는 중한 죄를 짓더라도 앞으로 얼마든지 올바른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성인보다 가벼운 처벌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소년법에 근거하여 보호받는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p129) 공평하지 못한 법에 실망한 소녀의 아버지, 나가미네는 딸아이를 죽인 범인 두 명 중 한 명을 칼로 찔러 죽인 후, 나머지 한 명에게도 똑같이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나가미네의 추가 살인을 막는 동시에 어디론가 숨어버린 소년 한 명을 붙잡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은 총력을 기울인다.  언론에서는 연일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전 국민의 시선은 나가미네에게 쏠린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시민들의 시선은 나의 시선과 똑같이 방황한다.  심지어 경찰 내부에서도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 게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는 일인지에 대해 자문하면서 그들조차도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지 못하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소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 그리고 타인, 나아가 세상을 발가벗겨놓는다.  겉으로 보기에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듯 보이는 세상이란 숲에 감춰져있는 극심한 이기주의를 표면으로 끌어올려 이웃의 고통을 모른 체하는 메마른 풍토에 대해 이야기한다.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 소설 속 인물이 내 모습이고, 소설 속 세상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기에, 부끄럽다는 생각 외에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앞에서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느끼지만 뒤돌아서서는 금방 잊어버린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 일이 아니라서 절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관심으로 외면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언제나 앞만 바라보고 있고 옆을 보기 위해서는 몸을 완전히 돌려야 한다.  그래서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까지 이런 내 모습은 성격 때문이라서 고칠 수 없다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성격 탓이 아니라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나의 작은 관심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이 모인다면 세상에서 상처받아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는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그리고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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