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언어는 이중구조를 갖추고 있다.

일찍이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문토기는
‘빗살무늬‘의 흙그릇이다. 그 뜻을 모르면 ‘그냥 즐문‘ 토기라는 낯선 명칭으로만 알게 된다. 다른 문화재로 조금 더 예

항아리를 뜻하는 ‘호‘는 익숙하지 않다.

‘명일‘은 중국어와 일본어에서 함께 쓰이지만 ‘후명일‘은 일본식 한자이다. 중국에서는 ‘후천(後天/后天)‘으로 쓴다.

우리말의 말밭은 풍성하다.

‘노랗다‘의 비슷한 말을 꼽아보라 하면 막힘이 없다.
‘노르스름하다‘, ‘노리끼리하다‘를 비롯해 많은 낱말들이 쏟아진다. 거기에 ‘노랗다‘와 ‘누렇다‘처럼 큰 말과 작은 말까

무턱대고 쓰는 글은 없다.

낱말 만지기는 힘이 세다2

‘같았다‘는 표현 자체가 관찰자의 느낌을 드러낸 것이

역사책은 ‘시간‘을 만지게 해준다.

명사라고 늘 고정된 것은 아니다

명사 만지기의 백미는 상상력 만지기일 것이다.

‘늙다‘의 맞선말(반대어)은 ‘젊다‘이다. ‘젊다‘는 형용사이다. 그런데 ‘늙다‘는 동사이다. 이른바 상태동사이다. 형용

‘찰지다‘는 ‘차지다‘의 방언이었으나 2015년 12월 국립국어원에서 ‘차지다‘의 원래말로 보고 표준어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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