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에는 능력주의의 실패에 분노하는 엘리트들, 다른 한편에는 능력주의에따라 희망이 없다며 절망하는 청년들, 그리고 점점 더 유치해지고 비겁해지면서자기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초‘엘리트 관료 집단들. 교육에 대한 피해서사만 난무하는 가운데 공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분석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지현 선생과 나 모두에게 매우 절박한 질문이다.
공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우리 둘이 근거하고있는 진료실과 교실의 존재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우리‘가 왜존재해야 하고, 우리가 서 있는 교실은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찾기 위한 대화였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들―때로는 학생, 때로는 청소년과청년, 때로는 환자의 모습으로-과 그들을 통해 한국 사회를 읽었다. 이것은오로지 교실과 진료실에서 그들을 더 의미 있게 만나기 위함이었다. 엄기호 - P-1

진짜 공부는 무엇일까. 공부가 우리에게 주려는 것은, 우리가 공부로 얻을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공부는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한 계속하는 것이다.
끝없는 호기심이 필요하고, 보이지 않는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믿음도함께 해야 한다. 지금 뭐라도 되어가고 있고 어느새 꽤 단단해진다는 걸 언젠가깨달으리라 믿어야 한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사고 시스템의 핵심에 자리잡은 공부 담론을 한 번에 부정하고 곧바로 벗어나기란 어렵다. 이 담론이 이미촘촘하고 단단하게 개인과 사회 전체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문제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조금씩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향성이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음 10년의 시작을 위해. 하지현 - P-1

교육부가 2018년에 도입 계획을 발표한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선택한 과목에 따라 교실을 이동하며 수업을 듣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제도는2020년 마이스터고, 2022년 특성화고에 이어 2025년 3월부터 전국 모든 고교1학년 과정에 전면 적용되었다. 입시 중심의 경직된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의 성장을도모하고, 보다 유연하고 개별화된 교육과 수평적 다양화를 지향하는 것이 핵심취지다. 고교학점제의 도입 이후 수도권과 비수도권 학교 간 교육 여건의 격차가드러나고, 진로가 뚜렷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과목 선택 과정 자체가 부담이 될 수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P-1

 한국의 학교는 등급제가 아니지만, 실제로는 학력에따라 학교가 서열화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학력 서열과계급이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게다가지금 아이들 사이에서는 ‘학급‘이라는 개념도 별로 없어요. - P-1

학생들 말을 들어보면 소셜 믹싱, 그러니까 서로 다른배경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처음 경험하는 곳이 군대라고하더라고요. - P-1

직업 윤리, 소명 의식보다는 노동이 단위 시간당어느 정도의 보상을 주는지가 중요해졌어요. ‘워라밸‘을중요하게 여기지요. 라이프 안에 워크가 있는 건데, 워크와라이프를 별개로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제로섬 게임이되어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손해 보는 삶을 살고 있다는단순한 산수를 하게 됩니다. 내 라이프가 갉아먹히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ㅜㅜ - P-1

기호


바우만의 표현대로 한다면 이런 삶은 전형적으로
‘파편화된 삶‘입니다.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딱 분리된삶이요. 앞서 말했듯이 생애사적 기획으로 노동을 통해서도
‘나‘를 실현시키고 통합해야 하는데, 일은 그냥 돈 버는수단이라고 생각하고 분리해버려요. 근대에는 이런 세태를불행이라고 정의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전혀 불행하다고느끼지 않아요. 이런 삶이 너무 당연하니까요. 행복하기위해서는 이 도구화된 직업, 도구화된 일에 들이는 시간을줄여야 하니까요.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를 너무 잘 알고있는 것이지요. 직업을 통한 자아 실현이 판타지라는 걸너무 잘 알고 있어요. - P-1

현 경쟁에서 우위에 선 사람이 보이는 주된 감정이불안이라면, 열세에 있는 사람은 주로 열패감에서 비롯된분노를 가지고 있어요. 심각한 경쟁 세계에 있다 보면 한번의 실패를 곧 존재의 붕괴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물론전혀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지만, 인생이라는 긴 경주에서보면 모든 실패가 반드시 치명적인 건 아니에요. 그런데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하면 다시 시도할 용기조차 잃어버릴수 있어요. 그런 선택은 안타까워요. 실패가 그다음을가능하게 하고, 발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가참 어려운 상황이에요. - P-1

기호실패해도 된다는 말이 지금 너무 여기저기서 상투적으로쓰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많은 학교들이 요즘
‘실패‘를 교과 과정 안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어요.
「모멸감]‘을 쓴 김찬호 교수가 이야기한 것인데, 이 방식을먼저 시도한 곳 중 하나가 카이스트예요. - P-1

이런 점에서 학생들에게 호불호가 극도로 나뉘는 수업은성공적인 수업이라고 봐야 해요. 도전적인 성향의 학생은강의 평가 점수를 후하게 주고, 낯설고 불편한 수업 방식에초점을 맞춘 학생은 점수를 아주 박하게 주니까요. 그런데평가 점수에 평균을 내면 중간에도 못 미치는 점수가나옵니다. 그러면 누가 도전적인 수업을 하려고 하겠어요?
그러면서도 보수적인 수업을 하면 모험 정신이 없다는 말을듣지요. - P-1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공부 자체로부터 오는 기쁨을잘 느끼지 못해요. 공부 자체로부터 오는 기쁨을 느끼기위해서는 흐름, 과정이라는 게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공부를할 때는 흐름을 타는 데서 오는 어려움들을 감수할 수밖에없어요.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공부를 성공하고만 결합해서결과를 만들어내야 하고, 결과를 통해서 보상을 받아야한다고 믿어요. 보상 없이는 전혀 만족하지 못합니다. - P-1

삶의 주도성 되찾기 - P-1

특히 직업 세습을 통한 계급 재생산은 한국 중산층의엄청난 목표입니다. 제가 최근에 예술계 학교에 몸담으면서본 것 중에 하나는요,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의 부모가소설가나 동화 작가 같은 예술인인 경우가 과거보다많아졌어요. 문화 자본과 사회 자본이 세습의 연결고리를 타고 내려온 거예요.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많은것을 풍부하게 보고 들은 아이가 부모의 재능, 그러니까유전자까지 물려받았다면 금상첨화이지요. 요즘 문화계에서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요.
가장 먼저 세습을 시도한 직업이 교수, 의사,
법조인이었어요. 그때는 다른 분야에 문화 자본이나 사회자본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대부분의 직역에서, 특히 소득이 높은 직역에서 사회 자본과문화 자본이 세습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다들 - P-1

흥미로운 것은 세습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도 없고 사회도없고 심지어 ‘나‘도 없어요. 초월이 사라지니까 겸손도사라지고 ‘나‘만 남아서 자아가 비대해지는데, 여기서 ‘나‘의실체는 자기 자신으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가족이나 직역등의 어떤 집단 정체성입니다. 권력화된 집단이나 이익집단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항상 바라보는 것이지요.
가끔 소위 상위권 대학의 학생들이 대학과 자신의정체성을 강력하게 동일시하면서 다른 집단에 배타적이고차별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볼 때가 있어요. 이전에는비수도권 분교나 타 대학에 대한 우월 의식과 차별이 보이지않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작동했으나 이제는 노골적으로드러내더군요. 소위 말하는 ‘입결(입시 결과)‘을 내세우면서자신과 그들이 결코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없다고 하면서요. - P-1

지현맞아요. 어느 순간부터 직역들이 ‘제2의 가족‘을 만들고있어요. 사례를 들자면 끝도 없어요. 이번 의정 사태도의사들이 외부인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뭉쳤지요.
정권이 바뀌면서 여권 인사를 대거 사면하기도 하고요.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논란도 마찬가지예요. 자신들의입장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고 있어요. - P-1

반면 86세대는 자신의 기대치를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자식들은 커갈수록 그 모순이 보이기 시작해요. ‘아버지는진보적인 사람이라면서 돈 되게 밝히네‘, ‘너무 경쟁적이고,
경제관은 또 보수적이고 주식에 열중하고 그러네, 이런모순이 아이들로 하여금 반항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부모와의 갈등을 만들고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도 혼란을가져오기도 하고요. - P-1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속계급사회(inheritocracy)의청년들은 ‘해서 뭐 하나‘ 같은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어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지 못해서 이미 늦었다는 마음, 그리고물려받을 자산이 없으니 해봤자 벽을 넘을 수 없다는열패감이 결합해 분노로 표출되고 있어요. - P-1

*시사IN 한국리서치가 2025년에 실시한 ‘6.3 대선 이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에따르면, 청년 남성은 다른 집단보다 평균적으로 더 보수적이며 경제적 지위가상층일수록 보수성이 두드러진다. 김창환 캔자스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확인하기 위해 가구소득·가구자산·주관적 계층 인식을 종합한 ‘경제적 지위지표‘를 만들고, 네 가지 항목 ①국민복지는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② 복지 향상을 위해 추가 세금을 낼 의향이 없다 ③장애인 의무 고용제에 반대한다④이재명 정부에서 불평등 완화와 복지 확증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으로
‘경제정책 보수성 지수‘를 만들어 두 변수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청년 남성은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능력주의에 근거해서 경제적 배분을판단한다. 현재의 어려운 처지는 능력의 결과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인위적인 재분배는 정당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 P-1

*교육부는 2014년 9월 ‘2015년 교육 과정 개정‘을 발표하며 문·이과 통합 교육을전면에 내세웠다. 고교에서는 공통 과목(국어·수학·영어·한국사·통합사회·통합과학 등)이 신설되었고 학생은 적성에 따라 선택 과목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 또한 2022년도부터 ‘공통+선택 과목‘의 구조로 전환되며문·이과 구분 없이 탐구 영역의 선택 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문·이과가 정말통합되었다고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거의 없다. 대학이 여전히 인문·자연계열을 나눠 선발하기 때문에 입시 교육 또한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문·이과의 유불리 문제가 제기되었다. 다수 대학에서 과학 탐구 선택자만자연계열 학과에 지원이 가능하다고 공표한 한편, 이과생들은 높은 수학 과목 표준점수로 인문·사회 계열 학과에 교차 지원하고 있다. 2024년, 교육부는 이과생의문과 교차 지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실질적인 방안 없이 일부 대학이자연계열 선택 과목 지정을 폐지하는 대응으로 마무리되었다. 통합 교육은학생들이 문·이과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계열에 지원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도입되었으나, 사실상 문과생의 자연 계열 진학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매우 불리한 것으로 나타나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교육부는2027학년도 수능 또한 기존 체제 그대로 진행하기로 발표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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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사회학자.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말을 듣고기록하고 나누며 사회를 구축하는 역량에 대한방법론으로서의 페다고지에 관심이 많다.
사회학과 문화연구를 공부했으며 한국의교육과 청년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에서 사람과사람 사이의 관계 변화와 그 의미에 대해주로 연구한다.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만화콘텐츠스쿨 교수로 일하고 있다. 펴낸책으로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나는 세상을리셋하고 싶습니다」「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말인가」 「공부 공부」 「단속사회」 「교사도학교가 두렵다」「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공저) 공부중독」(공저) 등이 있다. - P-1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대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
너무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문제들을진단하고 그에 적합한 해결책을 고민해왔다.
비정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많은 사람을 만나 시시비비를 가려주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청소년과보호자를 상담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고 있다.
펴낸 책으로 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

고「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고민이고민입니다」「지금 독립하는 중입니다」「공부중독」(공저) 등이 있다. - P-1

근대 사회에서 교육의 약속은 명확했다. 가난하더라도재능이 있고 열심히 하면 교육을 통해 사회 이동을 할수 있다고 말이다. 이 약속에 따라 한국의 많은 가족은자신들이 가진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한국은 능력주의가 말하는 ‘능력‘의 의미가 무엇인지적나라하게 보여준 사회였다. 능력이란 ‘자신이 가용할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총동원할 수 있는역량‘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능력주의가 만든 신화가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며 힘을 발휘한 사회가 한국이었다. - P-1

그러다 비상계엄 사태에서 고위 관료들이 보인 민낯은그 공부가-모든 것이 공부의 문제는 아니지만-사람을비겁하게도 만든다는 점을 드러냈다. 공부에는 이것이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과정이포함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없다. 즉 한국의 공부에는자신의 그릇과 역량을 파악하는 자기 객관화와 성찰이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할수록 자기에 대해 알아가는것이 아니라 자기를 망각하고, 나아가 망상에 빠졌다가자기의 그릇이 드러나는 순간이 오면 감당하지 못하니사유가 마비되고 행동이 비겁해지는 것이다. - P-1

물론 이것은 공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한국의 공부는 한편에서는 다른 재능이나 역량에 비해과대평가되어 이런 유치하고 비겁한 존재를 양산하고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을 통한 ‘약속‘을 제대로지키지 못한다며 교육 자체가 무능해졌다고 맹렬히비난받고 있다. 교육이 ‘무능한 유능력자‘를 양산하는것만이 아니라 교육 자체가 ‘무능한 유능력‘으로 낙인찍혀있는 것이다. - P-1

반면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게 한국의 능력주의는 실패한약속이다. 의사와 변호사를 포함하여 많은 전문직은자신들이 들인 노력에 비해 주어지는 보상은 적다고 여긴다.
경제적 보상을 비롯하여 노동 조건이나 사회적 존중과인식 등 모든 면에서 박탈감을 느낀다. 오히려 능력주의를제한하는 수많은 규제와 ‘평등‘ 조치들이 한국 사회를통제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린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능력주의의 수혜자이지만 정작 이들은 자신을 능력주의의실패에 따른 피해자라고 인식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퍼져있는 것도 피해 서사다. - P-1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속계급사회(inheritocracy)의청년들은 ‘해서 뭐 하나‘ 같은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어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지 못해서 이미 늦었다는 마음, 그리고물려받을 자산이 없으니 해봤자 벽을 넘을 수 없다는열패감이 결합해 분노로 표출되고 있어요. - P-1

여전히 공부는 ‘능력‘ 있고 더 많은 성과를 낸 사람에게사회적 사다리를 올라가거나 문화 자본을 획득하는 도구일뿐만 아니라, 만능감을 보존하는 유용한 수단이에요.
한편에서는 피해의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공부는 여전히 만능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 만능감과피해의식이 결합해 엄청난 상승 작용이 일어나고 있어요.
자신은 굉장히 만능한 존재인데 다른 한편에서는 끝없이빼앗기고 있고,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생각하지요. - P-1

호그렇지요. 확신하려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자기 주장의허점을 인정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질 겁니다. 하지만인간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근대 사회 주체의 핵심은불안이에요. 틀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는 게 온전하지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불안합니다. 확신하는동시에 불안해야 해요. 지현 선생님이 계시는 의료계도 그럴테고요, 저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늘 불안합니다.
제가 하는 말에 오류나 잘못된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불안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인간을계속 공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 P-1

그런 점에서 제가 일상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는 망상을설명하자면, 망상은 ‘상식적인 수준으로 설명하고 설득해도교정되지 않는 잘못된 믿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어요. 이맥락에서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이 어떻게 망상으로 불릴만한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이해할 정도로설명하고 설득해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인것이지요. 이 망상의 인식 체계에서는 자신에게 벌어지는불가해한 일들을 명료하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불안이 줄어듭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더 이상 불확실하거나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이처럼 모든 것이 단순하게 설명된다고 느끼는 상태에서는망상에서 벗어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시스템의 오류를아무리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근본부터 뜯어고칠엄두가 나지 않으니까요. - P-1

또한 10년 전과 비교해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과거에는공부의 영역에 속하지 않던 것들이 이제 공부 영역으로들어왔어요. 삶을 통해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확장해야할 영역이 체계적 훈련의 범위에 들어온 겁니다.  - P-1

그런데 사람들이 한국의 제도나 공교육에 요구하는 것을보다 보면, 교육이 천재를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그러지 못하면 ‘당신이 시키는 대로 다 했고, 나는 너무열심히 했는데, 그러면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탁월해져야하는데 왜 그러지를 못해‘ 같은 억하심정을 가집니다.
교육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교육의 결과에 대한 망상을만들어내고 있어요. - P-1

기쁨을 망각한 삶 - P-1

[공부 중독」에서 양극화된 두 그룹을이야기했어요. 한 그룹은 정규 교육과정에서 일찌감치 떨어져 나와 지적교양과 사회적 상식 수준이 확연히낮아진 사람들이에요. 저는 ‘외로운늑대‘에 비유하곤 해요. 약간의 우울이깔려 있고 거친 성정을 가졌는데 자세히들여다보면 고립된 채 외로워하고 있지요.
학교를 일찍 그만둔 데다 가정에서도사회화의 경험을 하지 못해서 감정 표현을어려워하고 관계 맺기에도 서툴어요.
어쩌면 사회적 능력이 무엇보다 더 중요할수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다른 한 그룹은 오직 공부 머리만비대하게 키운 사람들입니다. 이 그룹은주로 ‘~한 다음에 놀아‘ 같은 말을들으면서 자랐어요. 무척이나 ‘바람직한‘
학창 시절을 보냈으나 이 그룹 역시외로운 늑대와는 다른 의미로 사회화경험을 하지 못했어요. 학력의 우위가다른 결함을 덮고 열외로 해주었기 때문에이들의 문제는 학창 시절에 잘 드러나지않아요.  - P-1

하지만 과학은 한계를 계속 발견해나가는 과정이잖아요.
이 방식으로는 무엇이 안 되는지, 왜 안 되는지를 배워가는게 중요합니다. 제 고등학교 동기가 포스텍에서 발표한 석사논문의 결론이 ‘이런 연구는 더 이상 안 해도 된다‘였어요.
연구를 해서 결론을 내려보니 안 해도 되는 연구였던거예요. 하지만 이런 과정이 과학적으로는 굉장히 의미있어요. 사회적인 성공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문제를규명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의 성공이니까요. - P-1

여전히 대한민국은 정답에집착하는 사회예요. 학생들은 공부에 정답이 있다고 믿고 그정답을 찾는 게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잘하면 정답을찾을 수 있고, 이를 쉽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정답을 찾아서 적용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받아들여야한다는 논리지요. 이렇게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일인데왜 토론을 하고 있냐는 말에서 굉장한 특권 의식을 엿볼수 있어요. 자신은 전문가로서 정답을 알고 있고 당신은비전문가이니 정답을 모른다는 겁니다. - P-1

문리라는 단어를 보면 배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있어요. 배움은 이치를 ‘읽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에요.
문과는 인문(人文)을 공부하고, 인문학은 사람의 무늬를읽는 학문입니다. 고대 중국에서 거북 등딱지에 열을 가해서만들어지는 무늬를 보고 운을 점친 것처럼 (이를 기록하기위해 생겨난 상형문자가 갑골문이지요) 사람에게도 무늬가있다고 본 것이지요. 실제로도 그렇잖아요. 손의 거칡을보고 누군가의 직업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색이 어떤지,
어디가 유독 거친지, 어디에 굳은살이 있는지 무늬를보면 알 수 있어요. 나아가 무늬만 보고는 드러나지 않는이야기를 읽는 것이 인문학의 핵심이에요.. - P-1

그렇지만 정답이 존재해야만 공부를 평가할 수 있는것은 아니에요. 경영학과라면 경영학과에서 뽑고자 하는인재상이 있고 그 인재상이 가져야 할 자원이 있지요. 그자질들을 충분히 겸비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문제를 내야 할겁니다. 아니면 면접에서 물어볼 수도 있고요. 하지만 50만명에 육박하는 수험생이 응시하는 수능은 그래서는 안 돼요.
주관식, 특히 서술형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의바칼로레아를 운운하지요. 한국 사회에서 바칼로레아의채점 방식을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논술 시험은학생의 숨통을 틔우는 정도로만 시행하는 게 최선이겠지요. - P-1

일본과 미국의 미술 교육에서의 큰 차이를 간접 경험한적이 있어요. 제 딸이 일본에서 미대를 다녔어요. 그학교에서는 1학년 때 자기 전공과 상관없는 목공이나 철공작업도 해야 해요. 교양 수업으로 듣는 게 아니라 전공수업처럼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자유 주제가 아니라전교생이 똑같은 것을 만들어요. 정말 무의미할 정도로사포질과 대패질을 반복해야 해요. 같은 학년의 학생 전체가만든 똑같은 목공품을 교정에 수백 개 늘어놓은 것을보았는데 장관이더군요.
비슷한 나이에 미국 미대를 간 아이들은 선생으로부터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라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을들어요.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가진 학생들이 두각을드러냅니다. 남들이 볼 때 완성도는 떨어질지 모르지만자신이 이것을 왜 만들었는지 잘 설명하는 친구들이 주목을받아요.
저는 양쪽 다 적절한 교육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P-1

호한국의 학생들은 고도화하는 공부 방식에 너무 익숙하다보니 한 발 더 나아가는 걸 무서워합니다. 그래야 할 의미를잘 모르기도 하고요.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학생들에게는 만남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자신이그동안 고도화해서 정답이라고 생각해온 것이 어떤 것을못하게 만드는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 절실하게 마주하는경험이 필요해요. - P-1

전향적 사고와 후향적 사고 - P-1

제가 하는 수업으로 예를 들면, 저도 수업에서 제가 어떤아웃풋을 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다고해도 학생들의 성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요. 만약제가 굉장히 도전적인 수업을 했는데 강의 평가를 포함한아웃풋이 나쁘다면 저에게 책임이 돌아오겠지요. 그러면이후로 필요한 실험적인 수업을 시도하지 않게 됩니다.
검증을 거친 가장 안전한 수업만 하겠지요. 앞에서 이야기한고도화된 수업만요. - P-1

이들이 이렇게 무능력한 동시에 무책임한 가장 큰 이유는공부를 가치 지향적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치와기술이 별개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기술 안에는 이미가치가 배태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전혀 없이,
가치에 책임을 지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기술적으로집행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의식이 발달해 있어요. 명령에따라 기술을 집행하는 기술만을 고도로 익힌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지명을 한 게 아니라 발표했다는 궤변이만들어집니다. - P-1

이번 12.3 계엄에서 파면, 그리고 대통령 선거로이어지는 국면에서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가, 임지봉교수가 최상목 부총리에게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법조문에없다‘고 말한 장면이에요.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언어화할필요도, 법으로 규정화할 필요도 없는 상식적인 영역이있어요. 물론 이것도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해요. 상식수준에서는 문제가 없더라도 제도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상식이라는 기준이 너무 느슨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전문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서 나와요. 비전문가들은 뭘그렇게까지 생각하냐면서 지나치지만 전문가의 관점에서볼 때는 더 촘촘하고 정교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 정교한 장치가 없으면 제도 자체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 P-1

문제는 이 말들이 ‘단어 (word)‘로만 작동하는 경우예요.
이럴 때 말은 애초의 의미, 입법 취지, 혹은 그 말의 본질인
‘언어 (language)‘를 배신합니다. 말은 많은데 말만 많고언어는 없이 정신을 배신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스웨덴의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1979년 3월에」에서 "말로,
언어는 없고 말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지겨워 눈 덮인섬을 향한다"고 썼어요. 시인은 "언어, 말 없는 언어"를만납니다. 물론 그가 노래한 것은 언어와 말, 그리고인간이라는 존재의 숙명에 대해서이지만, 이 시구는 지금관료 기술자들이 법의 정신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배반하고있는지에 대해 적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정신이 들어가 있는 것이 ‘언어‘라면 입에서 나오는대로 그냥 떠드는 게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우리사회에서 많이 공부했다는 전문가들, 특히 법 기술자들의태도예요. 정신은 사라지고 분절화된 말만 남아 있어요. - P-1

법 기술자가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위기를 빠져나가려는현상을 보다 보면, 이제는 애초에 제도가 왜 존재했는지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문자 그대로의자의적 해석만 남아 있습니다. 왜 이런 규칙이나 법이명문화되었는지에 대한 맥락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요.
의사, 법조인, 언론인, 학자, 정치 관료 등 각각 직역의전문성은 갈수록 고도로 발전하고 있어요. 직역이 가진철학, 이론, 지식, 정보의 수준은 무척 깊어지는데, 그게일종의 벽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깨달음의 영역이 확장되는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그만큼 다른 영역과의 단절은깊어진달까요. - P-1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가는 불신의 대상이기도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더 무장할 수 있는 기회를얻습니다. 이걸 국가가 마다하지 않겠지요. 지금 서구에서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주민에 대한 공포, 그에대한 반응으로 법을 넘어서는 방식으로의 이주민 통제와추방이 대표적인 사례예요. 이처럼 파생적 공포는 불신에기초합니다. 개인의 무장을 부르고, 더 강력한 국가권력과공권력을 만들어내고, 이주민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등 특정 집단을 범죄시하여 사회로부터 격리하려고 합니다. - P-1

반면 지금의 부모 세대는 그전 세대보다 교육 수준이전반적으로 높아졌어요. 자녀가 읽는 책을 훤히 아는 경우가많아요. 알면 통제하고 싶어지고 그냥 두기 힘들어져요.
이를테면 초등학생 자녀가 전태일 열사의 평전을 읽고싶다고 하면 진보적인 부모는 장려할까요, 아직은 이르다고판단해 근심할까요? 이건 어떤 부모의 실제 사례이기도합니다. 자녀의 발달 단계, 책의 수준, 현 상황 등등을 너무많이 알다 보니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통제 욕구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자유롭게소통하면서, 아이를 충분히 기다리면서, 폭력적이지 않은방식으로 양육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P-1

실제 삶에서는 이 괴리감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같아요. 보통 조율할 줄 알거든요. 고수익을 내는 대치동학원 강사 중에 운동권 출신이 엄청 많잖아요. 자기 친구나후배가 진보 정치한다고 하면 엄청 도와주고, 거액 기부를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 진보적 가치관이 있지만 아이양육에 있어서는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모순을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 P-1

부모를 부정하고 나면 텅 빈 공간이 남습니다. 이 공간을채우는 것이 친구나 유튜브예요. 그들 생각을 무조건으로신뢰하고 필터링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보여요. ‘왜여자는 군대를 안 가지, 불공평해‘, 이런 말들은 옳고 그름을떠나서, 부모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겠지만 청소년의 발달과정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기도 합니다. - P-1

자본의 세습 욕구와 부족주의 - P-1

브뤼노 라투르가 쓴 『존재양식의 탐구] 서론에 재미있는일화가 하나 나옵니다. 프랑스 사회에서 기후위기로 토론을하면 2000년대 초반까지는 다들 기후학자의 말을 심각하게받아들였다는 거예요. 그런데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기업인들이 "왜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당신을 더 믿어야합니까?" 하고 따지기 시작했대요. 라투르는 이 장면이너무나 상징적이었다고 회고합니다.
과거 우리는 화자가 전문직이거나 전문적인 훈련을받았는지에 따라 권위를 인정하고 정보를 신뢰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다 전문가인 척하거나 전문가의지식을 상대화하여 바라보고 있어요. 상대화하는 것까지는민주적 통제를 위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전문 지식의 지위자체를 일체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상식과 전문 지식 사이의 경계가 무너집ㄴ다... - P-1

전통 지식의 붕괴 - P-1

신경학자 게랄트 휘터는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서 이상위 의식이자 패턴을 ‘관(觀)‘이라고 말합니다.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그것들을 다 포괄하는 것으로서의관이에요. 이 관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상위 의식으로서의영성의 역할입니다. 모든 것을 통합하기 위해 모든 것을초월해 있는 것이 영성이니까요. 그래서 많은 종교에서는명상을 강조합니다. 일체의 활동에서 물러나 이 모든 것을바라보게 하는 거예요. 한나 아렌트의 개념을 쓴다면
‘활동하는 삶 (vita activa)‘만큼이나 필요한 것이 ‘관조하는삶 (vita contemplativa)‘인 것입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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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일을 한다는 것 - 서로 이해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조직론 CEO의 서재 47
우다가와 모토카즈 지음, 김정환 옮김 / 센시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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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 우다가와 모토카즈는 그 전제를 뒤집는다.

조직의 실체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성
그 자체이며, 조직의 문제는 이해 부족이
아니라 ‘이해 불가능성‘에서 출발한다.

기술적 문제가 아닌 관계에서 비롯된
‘적응과제‘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내러티브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고 이를 인정하며
‘준비-관찰-해석-개입‘ 과정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방법을 안내한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여유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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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주중에는 기계 언어를 풀이하고, 가끔 인간의언어를 번역하며, 드물지만 자기 언어로 글을쓰기도 한다. 취미는 여전히 단어 모으기. 에세이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를 썼고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을 옮겼다. - P-1

가난하지만 않을 뿐 부를 갈망하는 가진 것 없는젊은 커플에게 이보다 더 곤란한 상황은 없을 듯했다.
그들은 수준에 맞는 정도만 갖고 있었다.
조르주 페렉, 『사물들』 - P-1

빈곤 프리미엄poverty premium이라는 말이 있다. 가난한사람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시간도 돈도 더 많이쓰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내가 겪어본바 가난한 삶에는실제로 더 많은 비용이 따른다. 가난은 밑 빠진 독과 같다.
아무리 부단하게 노력하며 발버둥 쳐도 모든 것이 원점으로되돌아간다. 열심히 사는데도 남는 게 없다. 오히려그럴수록 돈 들어올 길은 막히고 돈 새는 구멍만 커지는 것같다. 숨만 쉬어도 빚이 쌓이는지 늘 부채감이 따라붙는다.
어디서부터 쌓인 빚일까? - P-1

☆ 하루 9만 원인 개인 간병인을 50일 동안 고용했다. 간병비는현금영수증조차 발급되지 않는다.
☆☆ 절도죄로 장발장을 감옥에 가둔 문제의 빵. 도대체 얼마나대단한 빵이길래 투옥까지 당했는지 궁금하다면 구글에검색해보라. 지름 30센티미터가 넘는 솥뚜껑만 한 빵 사진을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P-1

엄마는 병실에서 돈 이야기하는 걸 극도로 꺼렸다.
하지만 언제나 돈이 급한 쪽도, 내게서 빌려갈 돈의사용처와 지키지도 못할 상환 계획을 상세하게 늘어놓으며말꼬를 트는 쪽도 엄마였다. 듣다 못한 내가 "나도 돈 쓸곳이 있다"라든가 "그래서 언제 갚을 수 있다는 거냐"라고한마디 덧붙이면 엄마는 "사람들 다 들을 텐데 쪽팔리게만들 작정이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렇게 나를 몰아세울때마다 기가 막혀 당혹감을 넘어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럴 거면 말을 꺼내지 마. 애초에 가난하지를 말든가 - P-1

되감기 하자면, 우리 엄마는 무심한 모친과 폭력적이고이기적인 오빠들로부터 벗어날 요량으로 20대 후반에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후 나름대로 생계를 - P-1

사람들이 생각하는 ‘빈자다운 삶‘이란 어떤 모습인걸까?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 내고 빛이 들지 않는반지하방에서 은둔형 외톨이처럼 자신을 가두고 사는사람? 매일 폐기를 앞두고 할인에 들어간 간편 식품이나도시락 따위로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사람? 명품 가방같은 건 분수에 맞지 않으니 애초에 탐하지도 않는 사람?
가난한 사람은 더 넓은 세상을 꿈꾸거나 원해서는 안 될까?
욕망할 권리,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혹은 소비)할 권리도어딘가에서 돈으로 사야 하는 것인가? 선택의 정당성을판단하는 주체가 본인이 아니라 타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것은 그의 잘못인가? 그를 탓할권리는 어디서 오는가? 그 권리마저 돈으로 사는 것일까? - P-1

돈을 어떻게 쓸지는 그 돈을 손에 쥔 사람이 결정할문제다. 세금이야 내가 국민으로서 국가의 존속과 운영을위해 기여한 바가 있으니 그 돈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감시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게 누군가의 기본권을보장하기 위해 그의 손에 쥐여졌다면, 그가 그 돈을 어디에어떻게 쓰기로 하든 ‘형편‘이나 ‘자격‘이라는 단어를들이밀며 양심을 운운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감히 내가 낸돈을 그런 데 쓰느냐고 역정을 내는 것은 기업의 주식을사는 투자자의 논리다. 그러한 개입과 비난이 정당하다고생각된다면 이는 사람을 재화로 보는 것이다. 자본주의의계산을 앞세운 위선이다. - P-1

경제학자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인간이합리적인 결정만 내린다면 자본주의사회에 가난한 사람은없을 거라고. 당장 한 푼이 아쉬운 판에 동일한 상품을4만 원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자진해서 포기하고 굳이 5만원에 파는 업체와 거래하는 나를 경제학자들은 이해할 수없겠지. 하지만 고정 수입이 없는 내게 이 소비는 4만 원과5만 원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4만 원과 1만 원 사이의선택이었다. 다음 달까지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어보려는것이기 때문이다. - P-1

그리고, 이 얘기까지는 정말 안 하고 싶지만, 5개월할부로 5만 원짜리 소비도 할 수 없을 때에는 일단일시불로 결제해둔 뒤, 카드대금 정산일이 지나 고객센터로 전화를 건다. 그다음 해당 항목에 대해 분할납부를 신청한다. 그러니까, 9월 청구 금액이 9월 1일에서30일까지 결제한 금액을 합한 것이고, 그걸 10월 15일쯤납부해야 한다고 치자. 위에서 예시로 든 5만 3000원짜리장바구니를 9월 25일쯤에 일시불로 결제한다. 그리고 - P-1

공항에 가는 김에 좋아하는 향수를 구매했다. 네 형편에향수 같은 사치품을 살 때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향수는 의복의 연장선에 있는 물품이요, 사회적 매너를따르기 위한 수단이다. 사회활동을 하는 동안 내 작고하찮은 존엄을 지키고 타인의 쾌적한 환경을 해치지 않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다. 적절한 사회화를 거친도시인이라면 집을 나설 때 응당 맨몸으로 나서는 대신의복을 걸치듯, 나는 향수를 뿌린다. - P-1

언니한테는 언니 냄새가 나, 섬유유연제 냄새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는데 뭔가 언니 특유의 냄새가 있어. - P-1

향수를 뿌리고 다니지 않았던 시절이라 당시에는 내체취를 말하는 것인가 보다, 나쁜 냄새는 아니니 나를끌어안고 킁킁대는 거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일이 있고 한참이 지나 옷장 서랍에 넣어뒀던 반팔티를꺼내다 ‘언니 냄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옷장깊숙이 밴 퀴퀴한 반지하 냄새였다. 냄새의 정체를 깨달은순간, 옷장 앞에서 얼굴을 붉힌 채로 한참 서 있었다. - P-1

그렇게 향기 막으로 나의 연약한 처지를 보호해주는 나의갑옷, 나의 향수. - P-1

과거 경제에서는 소비보다는 일이 정체성을 결정하는중요 요소였지만 지금 같은 소비 중심 사회에서는정체성이 무엇을 생산하는가보다 무엇을 소비하는가와관련 있다. 소비 중심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여가시간을 돈 쓰는 일에 사용한다는 것과 물건을 소유하는일이 행복의 주요 수단이라는 믿음이다.* - P-1

어떤 세상은 존재를 모르고 사는 게 나을 때도 있다.
「매트릭스」의 빨간 약처럼, 앎은 자유가 아닌 고통의동의어일 때가 더 많다. - P-1

나는 내가 사회학 전공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회학은 내가 나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있는 언어를 알려주었고, 조직이자 유기체로서 사회가 그구성원인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반대로 개인으로서내 존재는 사회에 어떤 의의를 갖는지 이해하게끔 했다.
불합리하게만 느껴지는 세상을 향해 옹알이조차 못내뱉던 내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쥐여준 학문도사회학이다. - P-1

가난 이야기에서 늘 회자되는 작품인 박완서 선생의「도둑맞은 가난」 속 ‘나‘는 멕기(도금) 공장에서 만난상훈이 실은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란사실을 알고 분노한다. 자신에게는 일상이고 삶인 가난을한낱 체험학습의 장 취급하는 부자들의 오만에 치를떤다. "그들은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에 안차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나는 우리가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자신에게는삶 자체인 환경이 누군가에게는 인생 교훈을 가르치는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주인공의심정을 나도 이해한다. 그는 빈곤을 소명이라고까지 생각할만큼, 가난을 정체성을 구성하는 큰 부분으로 여긴다. - P-1

싶었다. 가난은 뗐다 붙였다 하는 스티커가 아니라문신처럼 세포 깊숙한 곳까지 스며드는 성질의 무언가라는것을 미처 몰랐다. 아니 모르고 싶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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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소설가. 1995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 장편소설로 『작별인사『살인자의 기억법』『검은 꽃』『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빛의 제국」 「아랑은 왜』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소설집으로 『오직 두 사람』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호출이 있고, 산문 단 한 번의 삶』 『여행의 이유』 『오래준비해온 대답」 「다다다』 등을 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수상했다. 독일과 일본에서 각각 독립출판사문학상과 번역대상을 받았다. 30여 개국에 작품이 번역 출간되어 있다. - P-1

어차피 죽을 인생을 최선을 다해살아가는 이유 - P-1

노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혼자죽는 것‘이라고들 답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누구에게도자신의 죽음이 인지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버려지는 무연사가 가장 두렵다고 한다. 그들은 마치 죽은 뒤에도 살아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 P-1

우울증을 겪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자살률이매우 높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우울증에 걸리면 세상과인간관계에 대해 비관적이 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들에사로잡힌다.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나는 철저하게혼자이며 무가치한 존재다. 어차피 인간은 결국 죽는다.
아무도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 P-1

죄와 인간, 무엇을 미워할 것인가 - P-1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유명한 말이있다. 그런데 막상 겪어보면 죄뿐만 아니라 인간을 함께 미워하는 일이 의외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그들이 우리 눈앞에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 P-1

자유 아닌 자유 - P-1

자본주의사회의 마케팅이라는 것은 고객이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던 것도 필요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이었다면 고객에게 이미 있을 것이다. 아직 안 샀다는 것은 아직 그게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팀장은 고객이 물건을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식으로 눙치고 있었다. - P-1

"당신은 나무입니다. 나무라서 물을 가까이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큰 바위가 짓누르고 있습니다.
바위가 나무를 누르고 있으니 어떻겠습니까? 화가 나겠지요. 당신은 지금 세상에 대해 무척 화가 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자라게 마련이고 바위는 부서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나이를 먹을수록 부드러워지고 유순해질 겁니다." - P-1

우리 가족에게 처음 ‘집‘이 생긴 건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였다. 잠실의 열세 평짜리 아파트였는데 그나마도 세입자와 동거하는 형태였다. 두 개의 방 중에서 큰 - P-1

일상이 뮤지컬인 사람들 - P-1

명예 퇴직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자 그는 가장 먼저달려가 도장을 찍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리곤 허름한 옷을 입고 새벽같이 어딘가로 나갔다가 저녁 무렵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막노동을 시작했다. 마음이 너무 편하다. 아침에 출근해서 일 좀 하다가 새참 먹고 일좀 더 하다가 점심 먹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퇴근이다. 아무것도 신경쓸 게 없고 자기 맡은 일만 하면 그만이다." - P-1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앎에 갇혀 있다. - P-1

비관적 현실주의와 감성 근육‘ - P-1

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도 어렵고 가족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내용이바로 그것입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 저는 그것마저도 - P-1

비관적 현실주의자로 살아가는 삶은 너무 답답하고 지루할까요? 오히려 낙관주의자로 살아가는 삶에 함정이더 많습니다. 낙관주의는 모든 게 잘될 때는 괜찮지만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미국에 우울증 환자가왜 이리 많은가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지만 ‘긍정적 사고‘
와 ‘낙관적 태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그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모두가 긍정적으로 활발하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거기서 자신만 뒤처진것으로 보일 때, 우리는 급격하게 우울해집니다. 봄에 우울증이 늘어나고 자살률도 높아지는 사실 역시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햇살은 따사롭고 뉴스에는 나들이를 나온행복한 가족들의 모습만 보이지요. 나만 불행하다는 느낌, 이것이 깊은 우울로 우리를 끌고 들어갑니다. - P-1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관적 현실주의에 두되,
삶의 윤리는 개인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동조될때,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를 저는 건강한 개인주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 P-1

내 안의 어린 예술가는 어디로 - P-1

"아니, 지금보다 더 열심히 써."
"소설가는 봉제 공장 노동자가 아니야. 계속 일한다고생산량이 늘지는 않아."
"어쨌든 그만둬. 너무 힘들어 보여. 그리고 아직 젊을때, 좀더 소설에 집중해."
"공무원연금은 어떡하지? 건강보험은? 매달 나오는 월급은? 성과급은? 그리고 직장이 있기 때문에, 아니 교수이기 때문에 받는 이런저런 눈에 보이지 않는 특혜들은?
이 아파트를 살 때 꾼 주택담보 대출금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생활비를 줄이고 어떻게든 살아가면 돼. 신혼 때는 그런 것 없이도 잘만 살았잖아."
"애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도 있어."
"잃는 게 더 많을 거야. 내가 당신을 알아. 당신은 눈앞에 있는 모두를 만족시켜야 되는 사람이야. 그게 얼마나피곤한 일이야? 왜 당신이 그런 일을 해야 돼? 학생들은어차피 자기가 알아서 커나가게 돼 있어. 선생이 누구든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안 그래?" - P-1

은행에서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나는 휴대폰요금, 아파트 관리비, 수도요금, 가스요금, 케이블TV 요금, 신문구독료, 인터넷요금의 자동이체를 해지하고 남은 요금을 정산했다. 그 밖에도 실로 무수한 것들이 주거래통장에 걸려있었다. 은행 직원은 서식 한 장을 내밀더니 자동이체를해지하고 싶은 거래 내역을 쓰라고 했다. 그걸 창구에서일일이 쓰고 있자면 한 시간도 더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종이 위에 이렇게 썼다. ‘전부 해지‘ 그래도 채 사라지지 않는 거래들이 남아 한동안은 성가셨다. - P-1

독설가로 유명했던 마크 트웨인은 평생 골초였다. 생활은 불규칙했다. 열두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인쇄소 견습공,
미시시피 강의 수로 안내인, 광산 기사, 신문기자 등으로일했다. 그런데 이 양반이 19세기 말에 증기선을 타고 적도를 따라 전 세계를 여행한 일이 있다. 그러면서 쓴 책이 그의 마지막 여행기 마크 트웨인의 19세기 세계일주다. - P-1

"나쁜 습관이란 젊을 때부터 몸에 들여놓아야 나이가들고 병이 들었을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어느 보험회사에선가 조사를 해보니 나이가 들수록, 즉 청년보다는 장년이, 장년보다는 노년이 건강하고 체력이 좋더란다. 혈압이 높을수록 건강하다는 결과도 나왔다고 한다. 이럴 수가! 그렇다면 건강해지기 위해선 일단 빨리 나이를 먹고 혈압을 높여야 하나? 물론 아니다. 이런 통계는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건강에대한 염려가 많은 중년과 노년은 젊은층에 비해 운동과섭생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더 건강한 것이고 젊은층은음주와 흡연은 많이 하고 노동 강도도 높기 때문에 그만큼 몸이 허약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조사 결과는 마크트웨인의 독설처럼 젊은이들에겐 은밀한 기쁨과 우월감을 준다. 그것은 아직 ‘버릴‘ 몸과 탕진할 젊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 P-1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이들은 하나둘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런 변화의 흐름•을 주도한 것은 1988년에 창간한 한겨레신문이었다. 숙련된 식자공들을 구할 수가 없었던 이 신생 신문은 새롭게등장한 컴퓨터 조판 방식에 의지하기로 결정했다. CTS 시스템이라 불렸던 이 방식은 식자공을 거의 필요로 하지않았다. 기자가 컴퓨터 자판으로 기사를 입력하면 편집기자가 모니터를 보면서 판을 짜고 이를 바탕으로 바로 인쇄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곧이어 다른 신문들도 부분적으로 CTS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고도의 숙련 노동자인 식자공들이 일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약직으로 전환시킨 후 나중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고했다. 나는 이들을 취재해 논문을 썼고 이것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식자공들이 비정규직에서마저 해고되어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일160 - P-1

리파리섬은 인구가 1만 800명쯤 되는 섬으로 에올리에제도의 중심이다. 시칠리아의 북쪽 바다, 티레니아해에 있으며 화산도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제도를 만들었는데 폼페이를 묻어버린 베수비오 화산과 같은 화산대에 있다. 리파리 바로 이웃 섬은 불카노 Vulcano로, 이름에서 짐작할 수있듯이 역시 화산섬이다. 이 섬과 제도의 막내라 할 수 있는 스트롬볼리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활화산이다.
- P-1

신뢰의 비용이 적은 곳이기 때문에 창업하는 사람의 몸도 가벼울 수밖에 없다. 도쿄의 젊은이들은 참 간단하게도 가게를 차리는 것 같다. 어떤 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취향으로 가꿔가다가 어느 경지에 이르면 그것을 남과 나눠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취향을 남과 공유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상점을여는 것이다. 프랑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테이블 두개짜리 식당을 내고 빈티지 옷을 잘 고르는 사람은 빈티지 옷가게를 낸다. 커피를 좋아하면 원두를 직접 갈아 내리는 작은 카페를 차린다. 장난감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되면 드디어는 팔기 시작한다. 도쿄의 젊은이들을 관찰해 - P-1

샤워부스에서 노래하기 - P-1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교수들에게 "당신은 동료 교수에 비해 더 열심히 학생들을 지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80퍼센트가 넘는 교수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중 적어도 30퍼센트 이상은 착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자신이 다른 운전자에 비해 운전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는 연구도 있다. - P-1

종로에 나가면 ‘도나 기를 아십니까‘라고 말하며 접근하는 종교인들이 있다. 죽은 이의 영혼이 내 어깨에 앉아있기 때문에 삶이 피곤한 거라고 단언하는 이들. 코웃음을 치며 그들을 지나쳐가지만, 그들의 말이 비유라면 영그른 말도 아니다. 모든 인간은 이미 죽은 누군가를 대신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어깨가 늘 그렇게 무겁다는 것. 이 세상에는 먼저 죽은 자들의 몫이 있다는 것. 한열을 떠올릴 때면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 P-1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P-1

나쁜 부모 사랑하기 - P-1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 <마스터>는 부모와 자식 간의이런 관계에 대한 비유로 가득하다. 주인공 프레디는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있는 남자다. 그가 제대로된 부모를 갖지 못했다는 배경은 영화 중반에야 밝혀지지만 관객들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그가 ‘후레자식‘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부끄러움을 모른 채 욕망에 충실하다.
해군 병사들이 모래로 만들어놓은 여자 위에 올라타 민망한 방아질을 하는 남자다. 그의 노골적인 행동에 젊은 동료 병사들마저 눈살을 찌푸린다. 또한 그는 자기만의 술을 제조하고 그 술에 늘 취해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인물이다. 프레디를 연기하는 호아킨 피닉스의 눈에서는 언제나광기가 번뜩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으로 독 - P-1

이십대는 몸으로, 사십대는 머리로 산다. 살아보니 둘다 나름대로 좋았다. 이제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찍을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내가 어쩌면 살았을 수도 있었을또 다른 삶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 P-1

사랑이라는 이름의 버그暑 - P-1

스팅은 노래한다. How fragile we are.‘ 우리는 얼마나약한가. 우리는 얼마나 깨지기 쉬운가.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가. 어쿠스틱의 선율에 담아 스팅은 담담하게 노래한다. 우리는 얼마나 약한가. 그렇다. 우리는 약하다. 잘 깨진다. 박스에 담아 어딘가로 전송하기엔 너무 여리다. 사람이란 조심스럽게 전송되어야 하는 존재다.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서도 안 되고 60도 이상의 열을 가해서도 안 된다. 날 - P-1

책 속에는 길이 없다 - P-1

혼자만의 믿음에 갇혀 있는 존재는 어린아이와 같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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