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지게 살면 좋잖아요. 삶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거나, 미끄러지지 않고, 그리고 나중에 시험 볼 때, 한두 번찹쌀떡 먹은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찹쌀떡을 야무지게 먹고 자란 우리 애들이랑 상대가 되겠어요?"

"늙고 병든 부모를 나몰라라 하고 신경도 안 쓰는 게 잘살고 있는 거예요?"

"그럼 셋째, 넷째는 뭐 우리가 이쁘고 좋아서 얼굴 디미는 줄 알아? 다 우리 돈 뜯어가려고 수작 부리는 거지."

병원에서 숙식하며 간병하던 때, 한가지 알게된사실이 있다. 그 이유까지 깊게 따져보지는 못했지만, 죄다 노인뿐인 병실의 좁고 불편한 간이침대에서 뒤척거리며 보호자 노릇을 하는 자식은 대부분 둘째나셋째같은 낀 자식이라는 것.

첫째나 막내들은 가끔만 얼굴을 비췄다

"넌 너무 감정적이고 단순해서 문제야"

"생판 모르는 남한테네엄마를 맡기란 말이냐? 내가 화장실 따라가는 것도 질색하는 네 엄마가 그런 사람들한테자기 맨몸뚱이를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아? 자식들이 지엄마를 몰라도 그렇게 몰라?"

교사인 언니가 하는 말이라 더 설득력이 있었다.

"괘씸한 놈들. 너네도 똑같아. 우리가 돈 한 푼 없었어봐 여태껏 여기 붙어 있나. 현기, 넌 남들은 다 붙는 시험을 왜 10년이나 떨어져? 그냥 놀다가 우리 죽으면 그 돈으로 먹고살 심산으로 게으름이나 피우니까 그렇지."

매일 안 아픈 곳이 없고, 기분 좋은 일이라고는 없는 노인들과 24시간을 함께한다는 건 김은희가 예상하지 못한고역이었다. 그래도 2년까지는 의지로 어떻게든 버텼는데,
3년 차가 되자 녹이 슬어 열리지 않는 깡통에 갇힌 것처럼속이 답답하고 우울해졌다. 이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약 바꾸면 괜찮으실거래요."
"이름도 없는 이런 병원 레지던트 따위가 뭘 알아?"
"아버지!"

나 한 사람 희생하면 다른 가족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집에 들어온 건데, 철저하게 자기들만 생각하는 형제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배신감이 들었다. 왜 나만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회의감이 밀려왔다.

"잘난 자식들 다소용없다. 늙고 힘없을 때 옆에 있어주는 자식이 최고지. 우리 죽고 나면 이 집은 너한테 줄 거야."

늙으면 생에 집착하는 대신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주고 조용히 비켜주는 것, 그것이 인간의 순리고 최고의 유산이다.

"부모님 생신상을 왜며느리가 차려야돼? 우리 부모가먹이고 키운 사람은 우리들인데 왜 그 대접을 아무것도해준 것 없는 며느리한테 받으려고 들어."

"엄마가 항암을 안 하시겠다. 그래봤자 고생만 고생대로하다가 죽는다고."

Di piu non chiedo, non chiedo. Si puo morir. Si puomorir d‘amor.
(난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어요, 바라지 않아요. 죽을 수도 있어요.
죽을 수 있어요, 사랑을 위해서라면.)

"예전에 알던 엄마 아버지가 아니야."유

"여보, 이 말은 진짜로 지킬 거니까 잘 들어야 해요."
"뭔데?"
"난 내 딸한테 내 똥오줌까지 받아내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무슨 소리야?"

우리나라도 몇 년 후면 65세 이상 노인이 총인구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고령사회가 된다.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그래서 제도적인 대비책이 미비한 탓도 있고, 유교문화가 저변에 깔린 사회라 어느 가족이나 노인 부양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부모는 나의 시작과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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