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는 존재자‘와 존재를 구별했습니다. 이를 존재론적차이 라고 합니다. 컵을 예로 들자면, 컵(존재자)‘과 ‘겁이 존재

존재는 시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시간의 끝에는 오로지 나 혼자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이 있다.


시작과 끝은 한 묶음이다.

합니다. 그럴 때 인간은 나로서가 아니라, 세상의 기준에 맞춰사는 것입니다(세인世人, das Man : ).

일처럼 방관하지 않고, 인간이 죽음을 향한 존재임을 직시하고 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선구적 결의성‘이라 합니다. 그

있음은 시간에 따라 서서히 알게 된다

인간은 세계와 관계를 맺을 뿐, 인간이 곧 세계는 아니다.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내가 의식이 사물이 아니란 뜻이고, 거기에서 무의 균열이 생긴다.

 스스로 나를 만든다.

타인이 지옥인 이유

인간은 늘 새로운 자기로 향하는 존재다.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무이자, 자유이다. 그러니 부자유할 수 없다는숙명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파스칼은 이를 두고 "인간은 무와 전체의 중간자‘

파스칼은 인간의 거만함이나 호기심에 관해 여러 차례 날카롭게 지적했다. "호기심은 허영에지나지 않는다. 대개 사람은 말하기 위해서 알고자 할뿐이다."

인간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자기를 보존하기 위한 이익에 따라 물건을 교환한다.

이러한 자기애를 자유롭게 표출하면 시장을 통해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말하는 금욕은 일상에서 직무 노동을 할 때 생기는 욕구와 충동을 끊어내면서 자기 일에 전념하는 태도를 뜻한다. 속세에 대한 모든 관심과 욕망을 버리고 은둔하는금과는 다르다.

권력의 근원인 사회 다수의 의지가 소수의 이익 또는 행복을 억압할 때가 있다. 다수의 폭정‘
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론이라는 형태의 권력을 배격하지 않으면 인간은 노예가 되고 만다.

국가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억누를 수 있는 경우는타인에게 실질적 피해를 줄 때뿐이다. 그 이외에 개인의 행위는 모두 자유롭다.
인간에게는 개성과 다양성이 있고, 묻혀버린 천재는 너무 가엽기 때문이다.

아무리 평등에 관한 환상을 품어도, 아무리 농업을 철저하게 관리해도 자연법칙의 압력에서인류는 한 세기 동안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맬서스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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