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의 숲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8
안보윤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안보윤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일까. 좋아한다고 말하는 작가가 있어 그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찾아서 읽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좋아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체 읽게 되는 작품들도 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안보윤 작가의 전작들을 거의 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부러 찾아서 읽지 않았음에도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예전에 지인에게 <모르는척>을 선물했다. 그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님에도 내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선물을 한 것이다. 단숨에 읽었다는 친구는 고맙다라는 말을 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작가의 작품에 빼져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게는 특별한 느낌을 주는 작가이기에 이번 작품을 만나면서 설레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소년이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발목까지 눈이 잠기는 산 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다. 그냥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침을 뱉으며 올라간다는 것이 어른의 눈에는 거슬릴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본다면 이 아이가 왜 산에 혼자 오르는지보다 침을 뱉는다는 것으로 아이를 판단하게 된다. 겨우 첫장을 읽으면서 삐딱한 어른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산에 혼자 오른 이유는 자살을 하기 위해서이다. 유명한 청소년 심리상담사인 엄마가 아들의 죽음도 막지 못했다는 기사를 떠올리며 그는 스스로 나무에 줄을 매다는 것이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떠오른다. '돼지엄마'라 불리는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보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하지만 그것이 아들의 숨통을 조이는 일이 되었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고통을 주는 일이 많은 것이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이를 자랑거리로 만드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소년의 엄마도 청소년 심리상담가이지만 자신의 아들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다. 상담가가 아닌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이렇게 달라질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론과 실제는 다른 것일까. 방송에서 보이는 여자의 모습과 집에서 소년을 대하는 여자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우연히 알수 없는 문을 통해 알마의 숲에 가게 된 소년. 소년은 그곳에서 알마와 삼촌, 올빼미 등을 만나고 '노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렇게 자신의 이름이 아닌 노루라 불리며 그곳에서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을 생전 처음본 존재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소년은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중요하지 않다. 죽음을 생각했었기 때문일까. 알수없는 문이 열려야만 다시 돌아갈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렵거나 초조하지 않다. 이곳에 있으면서 자신이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웠는지 툭툭 내뱉는다. 엄마와 아빠가 아닌 여자와 남자라 불려지는 인물들. 그 단어만으로도 부모의 존재가 아이에게 어떤 느낌일지 전해져온다. 돌아가고 싶은 집이 아니라 돌아가기 싫은 집이라면 어떨까. 알마의 숲은 어쩌면 소년이 마음속에 만든 집이 아닐런지.

 

소년과 같은 또래의 아이를 둔 사람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되지 않는다. 이들이 소리없이 내지르는 아픔에 모른다 외면할수 없다. 아프다고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아이들. 이런 현실을 만든 것은 우리이기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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