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얼굴 빨개지는 아이 ㅣ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크 상뻬 지음, 김호영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학창시절 나의 별명이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나는 다른 사람들앞에 나설때 뿐만 아니라 낯선 누군가에게 말을 할때도 얼굴이 빨개진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얼굴 빨개지는 아이라고 불렀다. 이 책의 주인공인 얼굴 빨개지는 아이 '마르슬랭 까이유'는 특별한 일이 있을때가 아니라도 아무런 이유없이 얼굴이 빨개진다. 누군가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창피하거나 쑥스러운 일이 있으면 누구나 얼굴이 빨개진다. 하지만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얼굴이 빨개진다면 문제가 달라질 것이다.

난 얼굴 빨개지는 아이였지만 내가 '마르슬랭'이 아니라 '까이유'라 부르는 아이가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애칭을 만들어 준다. 물론 그 애칭은 상대방을 부를때가 아니라 나의 비밀 일기장에 쓸때 쓰는 이름이다. 그 사람의 실명을 쓰기 보다는 이렇게 애칭을 사용하면 더 친근한 느낌이 든다. 나의 학창시절 일기장을 보면 친구들의 이름보다는 영화나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가득하다. 그 중에 한 명인 까이유. 나처럼 아무때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쑥스러워 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던 한 친구. 아직도 그의 쑥스러워하며 멋쩍게 웃는 모습이 생생하다. 그 모습을 보며 까이유가 떠올랐다. 그 뒤로 나의 일기장에는 온통 그 아이 까이유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많은 책들이 나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하지만 이 책만큼 할 이야기가 많은 책도 없을 것이다.

아무때나 얼굴이 빨개지는 마르슬랭. 아직 어린 친구이기에 고민이 될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친구들은 마르슬랭의 얼굴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친구들이 얼굴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것이 점점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 친구들은 한 마디씩 하는 것이지만 마르슬랭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혼자 노는 것이 더 좋아진다. 어릴 적 다락방에서 혼자 놀던 나와 참 많이 닮은 친구이다.
왜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것일까?

늘 혼자일것만 같았던 마르슬랭에게 친구가 생겼다. 아주 매력적인 아이 '르네 라토'는 바이올린 연주자이다. 르네가 여느 친구들고 다른 점이 있다면 감기 기운이 없는데도 자꾸만 재채기를 하는 것이다. 항상 얼굴 빨개지는 아이와 재채기를 하는 아이. 이 친구들은 남들이 단점이라 생각할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무관심한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두 친구의 우정에 감동받는 것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두 친구의 우정. 하지만 현실은 역시 냉정한 것인가.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 르네가 이사를 갔다. 이제 다시는 르네를 만날수 없는 것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 본문 118쪽~119쪽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다. 이 책은 이야기만큼이나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데 이 장면은 언제 보아도 정말 사랑스럽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 침묵하며 한 공간에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들은 아마 어색함으로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래만에 만난 두 친구는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 순간 어떤 말이 필요할까.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마음이 전해진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들은 마음속에 작은 감동이 전해진다.
시간이 흘러도 그들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와 재채기 하는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변하지 않은 모습이기에 주위의 반응도 그리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에 아파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언제나 이 책을 만나면서 행복한지 모른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우리들에게 특별한 존재이다.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며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아이. 그 평범함이 우리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른이 되었지만 언제까지나 우리의 마음 속에는 얼굴 빨개지는 아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