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275 - 계윤식 시나리오집
계윤식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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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시나리오집. 기존에 읽었던 시나리오집들은 개봉된 영화이거나 방영된 드라마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만나게 된 시나리오집은 아직 개봉되지 않은 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아니 영화화되지 못한 작품이다. 보통 '죽은 시나리오'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 작품은 모 영화사에서 영화준비에 있었으나 현실과의 괴리로 긴 잠을 자고 있는 시나리오라고 한다. 남북 문제를 다루고 있다보니 민감하지 않을수 없는 이야기이다. 북한의 도움으로 평양에서의 촬영협조까지 받았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영화화되지 못하고 있다하니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다. 힘들게 쓴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는 작가의 마음은 어떠할까.

 

 

드라마나 영화의 많은 소재로 쓰이고 있는 남북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이 시나리오집의 주된 내용이다. 우선 제목과 연관된 275는 옥수수의 종자이다. <이철호 275>는 275 옥수수 연구를 둘러싼 남북과 주변국가들간의 긴장감 넘치는 첩보물이다.

 

역시 영화로 제작되려했던 이야기인지라 전체적인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등장인물들의 매력도 많은 작품이다. 인물들의 관계나 그들이 보여주는 색깔들이 중요한 것이다. 냉철함과 뜨거운 가슴을 소유한 헤이즐넛 같은 남자 이민규는 국가정보원소속이다. 늘 그렇듯 대립되는 인물도 있다. 설원의 굶주린 백호 같은 남자 송희립. 주도면밀하고 사리분별이 명확해 인간미가 없어보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의 진가를 알게 된다. 만약 영화로 상영되어 만난다면 처음에는 민규라는 인물에 빠져들겠지만 계속 보다보면 희립이라는 인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강하고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따듯한 마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역시 사랑 이야기도 빼놓을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속에 있는 순수 속에 피어난 따듯한 백합 같은 여자 정다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다께시.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도움을 주고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된 인물은 네명이지만 그 외에도 많은 인물들을 만날수 있는 이야기이다.

 

첩보전엔 국경이 없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죠. - 본문 116쪽

 

미래에는 농산물이 핵무기보다 수백배 강한 무기라 될것이라 말하는 사람들. 세계 곡물시장의 반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다국적기업 IFDC. 이들은 새롭게 개발되는 곡물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카자흐스탄의 밀 품종 개량 혁신주의자 이마노프 박사의 피살사건, 개량감자를 만들어낸 말레이시아의 짐농 박사 피살 사건, 황해도 연구소 폭파 사건의 배후 조정자로 지목되고 있지만 아직 물적증거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렇기에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275 옥수수 프로젝트는 은밀하게 진행될수 밖에 없다. 프로젝트를 지속해 나가려는 세력과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들의 긴장감 넘치는 첩보전 속에서 피어나는 민규와 다혜의 사랑. 그들의 사랑의 열매인 '이철호'. 하지만 남과 북이라는 현실속에서 그들은 헤어질수 밖에 없다. 앞으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책을 읽을때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은 스케치하는 정도이다. 물론 세밀하게 배경이나 인물에 대해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나리오집은 구체적인 그림들이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실제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지금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오니 책을 한장 넘길때마다 장면 하나하나가 완성되어진다.

 

<이철호 275>는 죽은 시나리오로 남는 것이 아니라 영화로 살아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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