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나]누가 공격하든 무슨 상관이야, 굳세게 살아가면 되지

파라나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4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4년 3월

챙겨봐야지하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이옥수 작가의 작품들은 거의 다 읽었다. 내가 찾아 읽기보다는 청소년기의 아이가 추천(?)해준 책들이기에 읽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읽어보라고 말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먼저 읽고 읽어보라고 말하는 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하나가 이옥수 작가의 책이다. 특히나 큰 아이는 작가의 전 작품을 읽고 신간이 나올때마다 챙겨보고 있다. 그렇기에 책과 그리 친하지 않은 엄마이지만 아이들을 따라 청소년 소설들을 한두권씩 만나게 된것이다. 정말 아이가 오랜 시간 기다렸다. 2년여를 기다리고 작가의 신작 <파라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파라나

마음이 푸르러서 언제나 싱싱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이.

장애인 부모를 둔 고등학생 정호는 동네에서 '이름 앞에 착한'이라는 말이 붙는다. 착한 녀석, 착한 아이, 착한 학생.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착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면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불편한 옷을 입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 옷을 스스로 벗지 못하고 있다. 억지로 입혀 놓은 옷을 입고 다니는 정호. 언제쯤 이 옷을 벗어버릴수 있을까.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어린 정호가 장애인 부모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절룩절룩, 한쪽으로 기우는 몸을 바로 세우며 걸음을 옮기는 어머니와 가늘게 뒤틀린 두 팔을 가진 아버지. 어디를 가든 다른 사람들의 특별한 시선을 받는 가족이다. 무거운 마음의 짐 때문이였을까. 어린시절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틱 장애까지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창피하다며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말을 하자 어머니는 실제로 집밖에 나오지 않고 우울증까지 걸렸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어디를 가든 어머니의 걸음에 맞춰 손을 잡고 다닌 정호. 그때부터 정호는 동네 사람들 머리 속에 착한 아이로 각인 되었다.

왜, 하필 우리 아버지만 두 팔이 뒤틀렸냐고, 왜 하필 우리 어머니만 두 다리가 절뚝거리냐고! 싫다. 왜 나만…….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어머니 아버지, 난 다시 태어나면 당신의 아들, 절대로 안 할 겁니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이건 너무한 거라고요! - 본문 108쪽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은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만 정호에게는 이런 모습조차 특별하게 해석된다. '기특한 아이구나', '몸이 불편한 엄마의 손을 잡아주는 착한 아이구나'라고 우리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특별함이 정호에게는 너무도 큰 짐이 되어버린다. 

'착한'은 정호가 불리고 싶은 이름이 아니다. 그 이름이 싫고 자신이 누구의 아들인지 알리고 싶지않아 일부러 아무도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먼 거리도 감수하고 다닐 정도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그런 정호의 마음을 하늘도 몰라준 것일까.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오고 정호는 효행상까지 받게 된다. 자신이 이 상을 받아야할 이유는 없다. 이 상은 자신의 현실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그 상을 받지 않으려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지만 정호와는 다른 효은을 만날수있다. 누구보다 밝고 자신의 처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아이 효은.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아무렇지 말할수 있는 것일까. 정호의 눈에는 이런 효은의 모습이 뻔뻔하게 보일 정도이다. 다른 아이들이 짊어지지 않아도 될 짐을 짊어진 두 아이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며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효은이도 정호처럼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싶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솔직히 이런 문제들이 나오면 뭐라 말해야할지 어렵다.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숨지 말라고 쉽게 말할수 있을까. 세상은 공평한 것이니 너에게도 언젠가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무조건 희망이 가득한 말로 위로할수 있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수 없다고. 우리들은 효은이나 정호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아이들이 움츠려들도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한다고 비겁하다고 말할수 있을까.

참 다행인 것은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부모님에 대해 자신은 없지만 이제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이름과 당당히 맞서려 한다. 거짓된 모습으로 남들이 만들어 놓은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만들고 싶은 아이들. 우리들도 아이들이 원치않는 이름을 만들어주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 다시한번 그 아이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며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만들어 갈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응원을 보낸다.

야, 백정호. 아무도 널 공격하지 않아. 그건 네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허상이라고. 이 세상 누구도 널 공격하지 않아. 혹, 누가 공격하든 무슨 상관이야. 굳세게 살아가면 되지. - 본문 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