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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작가 유인경
김하인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2월
평점 :
변화무쌍한 이 세계와 복잡다단한 인간 삶, 그리고 인간 내면의 다양한 고통과 깊이를 가늠해내기에는 근본적으로 순문학과 대중작품을 써내는 작가의 능력 간에 분명한 차이가 나고 한계가 있다 - 본문 26쪽
책에서 오고가는 대화 중 하나이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이것과 반대로 작가가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난 순문학과 대중문학 중 내 능력에 맞는(?) 것은 대중문학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대중문학에 빠져있었다. 친구들은 전공과목과 관련된 인문서를 읽고 순문학을 접하고 있을때 난 소위 말하는 대중소설에 빠져있었다. 2000년 쯤에 만나게 된 국화꽃향기. 책을 보고 3년 뒤에 만난 영화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만날수 없게 된 장진영 배우와 영원히 나의 마음속에 있을 박해일 배우가 나온 영화는 책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컸다.
마흔여섯 살의 베스트셀러 작가 김기하. 50대 중반의 단아한 이미지를 가진 여류 소설가 박혜선으로부터 문화강좌센터에서 소설작법 강의를 부탁받는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거절하지 못하고 맡게 된 강의가 김기하의 삶을 바꿔 버린다. 대중적인 소설을 쓴 그가 강의를 맡자 반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김기하의 작품을 모두 읽었다는 광팬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많은 수강생 중 김기하의 눈에 띈 사람은 유인경이다. 예술종합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26살의 그녀는 피부가 눈처럼 희었고 몸매도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수강생 중 한명이였던 유인경은 김기하의 삶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된다.
사람의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중년의 남자는 젊은 여인을 탐하고 그 여인은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신분상승을 바라고 있다. 두 사람의 은밀한 거래. 김기하가 유인경에게 빠져든것을 한 순간의 실수라고 할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댓가는 정말 무서울정도로 치명적이다. 김기하는 유인경에게 빠져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쓸수록 더 깊숙히 빠져버린다. 김기하에게 유인경은 가장 원색적인 오로라이고 강력한 블랙홀인 것이다. 그를 지탱해온 멜로작가로서의 관점과 작법을 철저히 버리고 그녀가 원하는대로 글을 쓸 뿐이다.
"맞아요. 전 세상을 사는 동안 양심을 가지고 싶지 않아요. 마음도 양심도 없는 악녀가 좋아요. 전 육체와 욕망뿐이고 싶어요. 그리고 전 착하신 작가님보다 악마 같은 소설가가 훨씬 좋아요. 정말이에요." - 본문 252쪽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유인경을 악녀라고만 말할수도 없고 한순간 다른 여인을 탐한 김기하라는 인물을 비난할 수만도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싶다. 누구에게든 마음 속에 자리잡은 욕망은 있을 것이다. 단지 그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있을수도 있고 알고 있지만 스스로 묻어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 욕망은 어디에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덫과 같다. 그 덫에 걸리지 않기위해 늘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마주하는 이 이야기는 충격적일수 밖에 없다. 과감히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유인경.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 숨기려하는 김기하. 마지막으로 박혜선 작가의 반격은 우리를 다시한번 놀라게 한다.
예전의 순수한 감정을 가진 국화꽃향기를 읽고 그때의 감정을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야기일수도 있을것이다. 국화꽃향기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순수하게 그렸다면 이 책에서는 결코 순수하지만은 않은 사랑을 만난다. 아니 이들의 감정은 사랑이라 말할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사랑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