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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이 흐르면서 수학을 가까이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생활에 숨어 있는 수학은 많지만 학생들처럼 내 눈앞에 던져진 문제들을 푸는 일은 거의 없다.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공식이나 수학 기호들과는 차츰 멀어지지 않을까한다. 솔직히 멀리할수 있다면 되도록 멀리 하고 싶은 것이 수학이다. 하지만 그럴수 없다는것을 알기에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맞으려한다. 피할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마주하려 한다.
이 책은 고등학교 수학교과 필독서이다. 물론 학교마다 다르지만 내가 만나는 친구(?)가 읽고 있는 책이기에 궁금하여 읽어보게 된 것이다. 고등학생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제목도 눈길을 끌었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교과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는다. 공부라는 것에 얽매여 시간이 부족하니 어차피 읽는 책이라면 교과와 연계된 책이나 자신의 진로에 맞는 책을 읽는다. 이 책도 수학을 전공하려는 아이가 읽고 있기에 덩달아 나도 읽어보게 된 책이다.
미혼모 엄마에게 태어난 나. 나또한 미혼모이다. 파출부일을 하며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아케노부 파출부 소개소에서 박사의 집을 소개받은 것은 1992년 3월의 일이다. 박사의 고객 카드를 보니 별모양의 파란색 스탬프가 많이 찍혀 있다. 별 모양의 파란색 스탬프는 파출부가 교체될때마다 찍히는 것이기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파출부들이 다녀갔는지 알수 있는 것이다. 아홉개나 찍혀 있는 것을 보니 그 곳에서의 일이 만만치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나.
박사의 집에는 수학에 빠져있는 박사와 형수가 함께 살고 있다. 조금 놀라운 것은 박사는 80분만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1975년 교통사고를 당해 아직도 그 시간에 머물러 있고 정확하게 80분마다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80분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많은 파출부들이 다녀갔는지도 모른다. 또한 박사는 말 대신 숫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어 박사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문제를 만든 사람은 답을 알고 있지. 반드시 답이 있다고 보장된 문제를 푸는 것은, 가이드를 따라 저기 보이는 정상을 향해 그저 등산로를 걸어 올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수학의 진리는 길 없는 길 끝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숨어 있는 법이지. 더구나 그 장소가 정상이란 보장은 없어. 깎아지른 벼랑과 벼랑 사이일 수도 있고, 골짜기일 수도 있고." - 본문 51쪽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n/a/naetoile/20131124195439673535.jpg)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 박사. 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나의 어린 아들이 집에 혼자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집에 데리고 오는 것을 허락한다. 어린 아들을 보고 루트라는 별명을 지어준 박사.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어 주는 관대한 기호라는 의미를 지닌 루트라는 애칭을 아들에게 지어준 것이다. 세사람은 한 가족처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나간다. 나또한 파출부라는 이름으로 이 집에 들어왔지만 80분짜리 기억을 가진 박사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물질이나 자연현상, 또는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 표현할 수 있어. 아무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지." - 본문 164쪽
수식이나 수의 나열이 아니라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말이 아닌 수로 자신을 표현하는 박사. 수라는 것은 왠지 딱딱하고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박사를 통해 수의 세계가 얼마나 따스한지 알아간다.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