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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이주은 지음 / 이봄 / 2013년 10월
평점 :
트라우마라고 해야할까. 미술은 내가 넘을수 없는 벽이다. 학창시절 존재감이 없어 어느 누구의 눈에 띄지 않던 내가 미술선생님의 한마디에 많은 아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미술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는데 내 그림을 보며 선생님이 웃으시며 정말 못그린다고 말씀하시는거다. 어느것하나 잘하는것 없는 나이지만 그림은 정말 못그린다. 물론 평소 친분이 있던 선생님이 장난으로 말씀하셨지만 나에게는 상처로 남았다.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실기시간에도 0점 맞는 것을 각오하고 그림을 끝까지 내지 않았다.
그때문인지 그림을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관을 찾는 일도 거의 없었다. 가끔 친구들과 함께 찾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 미술관을 찾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그림을 못그린게 상처로 남아서일까. 아니면 대리만족이였을까. 아이들은 열심히(?) 미술학원을 보냈다. 불행히도 나를 닮아 그렇게 오랜시간 다녔지만 그림을 그리는 실력은 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그림에 관심이 많다. 못그린다고 나처럼 상처를 받고 좌절하지 않고 못그리는 그림이지만 집에서도 종종 그린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멀리했던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려운 숙제같은 느낌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난후 어떠냐고 물었을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재미있다.'라는 말이다.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그 말 밖에 할줄 모르냐고 뭐라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후의 처음 느낌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미술에 관한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그 동안은 나에게 풀리는 않는 숙제마냥 어려운 그림이야기가 어찌 이리도 재미있단말인가.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유럽의 19세기 말, 20세기 초 그 짧은 20년을 사람들은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 좋은 시절)'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림 에세이스트이자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그림 속에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들은 책에서 만나는 그림과 이야기들을 만나며 삶의 위로를 받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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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림과 함께 만나는 영화나 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져야하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직은 잘 알지 못하기에 그림을 책이나 영화와 함께 들려주니 이해하기도 쉽고 그리 어렵게 다가온다. 솔직히 상처받은 우리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음악이나 책,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잘 모르니 보는 것만으로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들에게 그림에 대해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림은 보는 것으로만 생각했지 느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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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그림에 관한 책이라면 그림의 제목이나 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책은 쇼핑, 구경거리 사냥꾼, 바캉스, 바보, 군중심리, 옛사랑 등의 주제를 통해 그림과 영화, 책의 이야기들을 함께 풀어가고 있다.
탐욕에 전혀 휘둘리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마 천사이거나 백치일 것이다. 천사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가 오래도록 찾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상이란 결국은 바보가 아니겠는가. - 본문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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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면 '바보'이다. 어린시절 친구들에게 바보처럼 살고 싶다, 바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말을 종종했다. 그 때문인지 첫 이야기인 '쇼핑'이 아니라 '바보'를 먼저 읽었다. 바보라는 주제에서는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와 미하일 브루벨의 그림 <라일락>을 만날수 있다. 저자는 라일락이라는 그림을 보며 소설 속의 나스따시야를 떠올렸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림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이처럼 책이나 영화 속 이야기들과 함께 들려주니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림을 만날때 우리는 그 안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수 없을때가 많다. 그것을 알기 위해 공부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아갈수 있다.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예술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녹아드는 예술을 만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