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다른 것에는 까탈스럽지 않은데 책만큼은 조금 결벽증에 가까운 증세(?)를 보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 깨끗하지도 않으면서 책을 읽기 전에는 깨끗이 손을 닦고 책이 구겨지지 않게 한장한장 조심스럽게 넘기고 본문에는 글하나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것이 싫어 빌려달라는 이들이 있으면 거절을 못하니 차라리 새 책을 한권 사주는 참으로 고약한 버릇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다른건 몰라도 책만큼은 조금 조심스럽게 다루기에 몇번을 읽어도 새 책같은 그런 책들입니다.

 

이렇듯 새 책에 관한 심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니 남들이 읽던 헌 책을 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헌책 매니아였던 친구가 있어 종종 헌책방을 찾았습니다. 항상 새 책만 읽어야한다는 조금은 창피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친구를 따라 헌책방을 가는 것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몇번 따라가다보니 새 책에서는 느낄수 없는 정겨움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책에 글 하나 남기는 것이 싫었던 제게 책속에 많은 낙서들이 있는 책은 저에게 책이 아니라 그냥 종이묶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 안에 있는 낙서들이 눈에 보이고 그건 낙서가 아니라 또다른 책읽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떨때는 책이 주는 감동보다 그 짧은 한마디가 한마디가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의 저자 윤성근님의 '이상한 나라의 헌 책방'을 몇번 가본적이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헌책방이 그곳에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 <심야책방> 출간당시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이상한 나라의 헌 책방' 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찾았던 캐캐한 먼지속에 쌓여 있는 책들이 아니라 책꽂이에 정갈하게 꽂혀 있는 책들. 헌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다양한 책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이렇듯 저자와의 인연(?)이 있어서인지 이번책도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책 속에 남긴 문장이 편지이건 사랑고백이건 내가 보기에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내용이 모두 너무도 솔직하고 진심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때론 아주 짧은 문장을 보고서도 그 글씨를 쓴 사람에게 이끌려 깊은 상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경험을 한 적도 많다. 책 속에 글씨를 남긴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일은 셀 수도 없다. - 책 15쪽~16쪽

 

저자가 전하는 책속의 글귀들을 보며 책을 전하는 이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 글을 통해 한권의 책을 다시 만나게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추억도 떠올리게 하는 책입니다. 본문에는 낙서를 하지 않았지만 안에 있는 표지에는 나또한 메모들을 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편지를 쓰지는 않아도 되지만 책을 줄때는 날짜만이라도 적어서 달라는 부탁을 했으니^^

 

 

 

이 한권의 책 속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어쩔수 없이 개인적으로 추억이 있는 책들은 더 눈에 띄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합니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아쉽게도 그 책이 남아있지 않고 작가의 다른 작품 <참된 시작>이 있습니다. 야학에서 봉사를 하며 다른 활동을 하느라 학교까지 휴학을 했던 친구가 추천해준 책입니다. 나밖에 모르고 그 친구와는 활동성향이 달라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터에 이 책을 추천받았을때 선뜻 읽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둘다 평범한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때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기에 이 책이 더더욱 기억이 남습니다.

 

 

 

 

역시나 우리들에게 오래 남아있는 시집은 <홀로서기>입니다. 그 당시 참으로 많은 인기를 끈 작품이라 이 시집을 서로에게 선물을 하고 편지를 쓸때도 서정윤 시인의 시를 옮겨 적곤 했습니다. 아마도 박노해의 추억이 씁슬한 것이라면 <홀로서기>의 추억은 아련하고 따스한 것입니다.   

 

책속에 남겨진 글 하나가 다른 이들에게는 이렇게 추억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로 책을 만나게 해줍니다. 예쁜 글씨가 아니더라도 남겨진 글들 하나하나가 우리들 마음속에 곱게 자리잡습니다. 문득, 내가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책에는 어떤 글들이 남겨져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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