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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대화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 속에 살고 있지만 사람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빠르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서 사람냄새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관계맺기도 서로의 이해관계에 의해서나 자신의 이익이 되지 않는 관계에는 소홀해지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굳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살아가는데 그리 힘든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을 부비며 가끔은 상처를 주지만 이내 그 상처를 서로 보듬어 주며 사람냄새나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사람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만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까합니다.
<숲의 대화>는 표제인 숲의 대화를 비롯한 11편의 단편을 만납니다. 11편의 이야기 중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는 <봄날 오후 과부 셋>입니다. 바로 어제 30년지기 친구를 만났습니다. 고등학교 3년내내 붙어다니던 네 명의 친구. 지금은 다들 멀리 떨어져있어 만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몇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작년에 엄마가 돌아가신 친구. 어느 새 큰 아이가 올해 대학입학을 앞둔 두 아이의 엄마. 일을 하고 있어 좀처럼 나들이를 하지 못하다가 딸아이 입학 기념으로 두 모녀가 서울 나들이를 왔습니다. 그때 친구가 한 말은 '엄마 밥이 먹고 싶어!'였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항상 우리집에 와서 함께 무슨 할 이야기가 많은지 오랜 시간 수다를 나누다 엄마가 해주신 저녁을 먹고 돌아간 아이들. 그래서일까요?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하며 나보다는 우리 엄마를 더 보고싶어하는 친구. 결국 엄마에게 말씀드려 엄마가 만들어주신 저녁을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추억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했던가요?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여고생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엄마는 우리의 옛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짧게 느껴진 그 시간을 보내며 지금까지의 30년보다 더 긴 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날 오후 과부 셋>에서의 세 할머니도 나이가 들어 늙어가고 있지만 함께 모이면 어느새 어린 시절 소꿉친구로 돌아갑니다. 질투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나보더 더 친한 두 친구의 모습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세 할머니의 뚝배기 같은 우정을 보며 나의 친구들과도 나이가 들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
어릴 때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그녀가 고함을 지른다. 사다꼬와 하루꼬가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를 바라본다.
"나 없을 때 또 비밀 이야기 하면 죽어!" - 본문 64쪽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는 아내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며 누군가에게 천국을 선물하는 사람, 일제 강점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이가 들어서까지 티격태격하는 세 할머니,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작은 아들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부모, 다문화 가정의 사람들의 이야기 등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들은 그 이야기들을 만나며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같은 상처를 보며 아파하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이해하려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살았음에 감사하고 앞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