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하고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들어내시지 않는 아빠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흥분하시면서 보던 운동경기는 레슬링과 권투이다. 워낙 말이 없으신 분인데 유독 그 경기들을 볼 때면 핏줄이 설 정도로 응원을 하시고 소리를 내셨기에 아직도 그 기억들이 남아있다. 지금이야 식구들이 각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지만 그 때는 아빠가 채널의 주도권을 가지고 계셨기에 우리 삼남매도 매번 경기를 함께 봤다. 레슬링은 김일 아저씨가 피를 흘리는 모습만 봐도 우리 가족이 아픈 것처럼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권투에서 흘리는 피는 두려움이고 공포였다. 그러면서도 아빠와 권투를 볼때면 이유없이 눈물이 먼저 나왔다. 경기를 보면서 어느 한 선수를 응원할 수 없었다. 다른 나라 선수와 경기할 때도 우리 나라의 선수를 무조건 응원할 수도 없었다. 어린 나이였기에 좁은 링 위에서 두 사람이 때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어떨때는 참으로 무서운 경기라는 생각을 했다. 권투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손가락 틈으로 봐오던 운동경기였다. 그렇게 내 지난 시절의 기억 속엔 권투하면 떠 오르는 홍수환 선수와 박찬희 , 문성길, 박종팔 선수등의 이름이 남아있다. 차츰 다른 인기있는 운동 경기들로 인해 권투는 내 기억 속에 점점 사라지고 있을 즈음 3년전 최요삼 선수의 가슴 아픈 사고와 김주희라는 여성 복서 때문에 다시 생각났다. 사실 아직도 다른 운동과 달리 권투는 선뜻 보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보는 사람도 참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는 경기라는 생각이 든다. 직접 경기를 본 적은 없지만 방송을 통해서 김주희 선수의 이야기와 경기 장면을 잠시 본적은 있다. 그리 많이 알지 못했던 김주희 선수의 이야기를 <할수있다, 믿는다, 괜찮다>를 통해 조금더 알게 되었다. 고통이란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아픈 그 순간에 내가 지금 살아내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사는 건 내 몫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내가 삶을 포기하면 아빠와 언니가 그 불행을 짊어지게 된다. 그러니 내 몫은 언제나 살아내야 했다. 아무리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다 불행하다고 생각될지라도. - 본문 113쪽 어릴 적 집을 나간 엄마, 생활능력이 없고 치매에 걸린 아빠, 어릴 적부터 가장 노릇을 해온 언니. 김주희 선수 가족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안타까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이의 동정도 도움도 바라지 않고 꿋꿋이 일어나려 노력했으니...참으로 못된 생각이지만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하면 우리는 고개를 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다. 너무도 곱고 여린 얼굴을 가진 그녀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나태한 삶을 사는 내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녀. 우리에겐 일상적인 일들이 그녀에게는 가질 수 없는 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소박한 꿈조차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맘이 너무도 무겁다. 설령 내가 경기에서 지더라도 이제는 그것이 내 인생의 실패는 아닐 것이다. 인생이란 드라마를 만들어나가면서 아프고 고통스러운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간과 거친 몸싸움을 하면 상처가 남는 것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어떤 순간이든 도전함으로써 가장 빛나는 사람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 본문 229쪽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일까? 우리는 다른 이의 삶을 보면서 나의 행복을 가늠해본다. 김주희 선수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 욕심을 부리면 살고 있는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한켠이 아려오지만 그래도 너무도 씩씩히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조금의 걱정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설령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는 선수이기에...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건 그녀에게 따뜻한 응원을 해주는 것이다. 경기에서도 삶에서도 항상 치열하게 싸우는 그녀를 위해 우리는 항상 그녀 편이라는걸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