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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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에서 만나는 수경의 가족은 언뜻 보면 무능력하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성인이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일을 할 수 있는 성인이 한 집에 네 명이 있는데도 돈을 버는 사람이 없다. 취업난 때문에 그런 것일까. 가족의 구성원도 조금은 달라 보인다. 부모님과 수경 부부, 조카 지후가 함께 살고 있으며 준후의 여자 친구 은지는 자신의 집처럼 생각한다.  



그들의 사연을 알지 못하면 일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사람들로 보일 수 있다. 수경의 사건을 중심으로 각 인물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그들이 처한 현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없는 상황들을 이해하게 된다.

 

극복은 영화에서나 나온다.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극복이 아니라 참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다. 그 일에 매몰되어 생계를 내팽개칠 수 없으니까 잊은 척하는 것이다. - p.21

 

'졸피뎀'은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것을 이용한 범죄들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수경에게 벌이진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술에 졸피뎀을 탄 직장 동료는 벌금형으로 끝이 났지만 수경은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약물 성범죄를 당할 수도 있었던 피해자 수경은 직원들의 눈치를 보며 그곳을 나온다. 우리의 현실도 그렇다. 피해자는 고개를 숙이고 가해자는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길을 걷는다. 수경은 그 일로 모든 것이 흔들린다. 사람에 대한 믿음도 사라진다. 새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

 

힘든 수경의 곁을 지키는 것은 엄마 여숙이다. 딸의 아픔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을 우리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일을 서로 입에 올리는 것이 두렵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 보내는 것은 서로를 위한 연기일지도 모른다. 직장이 없는 아빠와 남편 우재 대신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던 수경이 일을 할 수 없게 도니 막막한 현실과 마주한다. 두려운 마음이 크지만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수경의 가족들이 선택한 것은 플랫폼 노동이다. 여성들을 위한 심부름 앱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심부름 대행 앱 '헬프 미 시스터'를 시작하며 그들의 아픈 기억을 지을 수 있을까.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수경이 세상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내디디려 한다. 그들 곁에는 가족들이 있다. 각자의 역할을 하며 수경과 함께 당당하게 맞서려 한다.

 

보라의 이야기처럼 모두가 노력하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수경이 겪은 일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범죄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쉽게 벌어지는 사회가 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보라의 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수경과 피해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피해자가 숨어 사는 현실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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