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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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도쿄 대학교를 졸업하고 옛 통상산업성에 들어가 관료가 된 형과 달리 번번이 취업의 고배를 마시는 하라시마. 알만한 대기업들을 향해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실패이다. 분에 맞는 회사를 지원해보라는 친구의 충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눈을 낮추면 일할 곳이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각자 원하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쉽게 눈을 낮추는 일이 어렵다. 자신의 눈에 맞는 일이라 생각하며 꾸준히 노력하는 그들에게 눈을 낮춰 지원하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대형 종합 전기회사 중에서도 손꼽히는 '소닉'의 자회사인 도쿄겐덴에 취업하는 하라시마. 지옥 같은 2과라 불리는 영업2과 과장인 하라시마가 꽃 같은 1과의 과장 업무를 맡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어느 곳이든 만년 과정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회사의 인정을 받으며 고공 승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범한 회사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사건들일까. 평범해 보이는 회사 안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는 흥미롭다.

 

8화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건들은 회사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이고 일들이다. 우리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았기에 이야기의 흡입력이 크다.

 

대체 도쿄겐덴이라는 회사에 들어온 뒤의 오 년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간 동안 내가 얻은 게 있기는 할까? 그저 매일 회사에 가서 주어진 일을 처리한다. 나 말고 다른 누가 해도 똑같은 일뿐이었다. - 본문 101쪽

 

오 년 동안 도쿄겐덴이라는 회사에서 유이는 주체성 없는 부품이었다. 시키는 대로 업무를 수행하고, 눈에 띄는 일 없이 그저 한결같이 일에 매진하는 말 없는 부품이었다. - 본문 128쪽

 

27살의 '하마모토 유이'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남는다. 습관처럼 일어나는 일상들, 뭔가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큰 구조 속, 하나의 부속품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녀는 회사 내에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 때문에 퇴사를 결정하며 회사를 다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퇴사를 결심하며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환경 회의에서 새로운 안건을 내며 그동안 자신이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낸다. 결정을 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며 자신의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녀가 마지막에 닛타에게 던진 한마디는 사이다 발언이었다. 답답해 보이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니 통쾌하다.

 

인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면 무언가를 버려아만 한다. - 본문 106쪽

 

하라시마가 영업1과로 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접근해가는 과정은 긴장감이 감돈다. 잔잔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 알 수 없는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 소용돌이 중심에 서 있다. 도쿄겐덴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쩌면 나이고 우리일지 모른다. 우리는 어떤 모습을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나 부속품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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