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고 깔깔거리다가 표지를 확인한다. 먹먹한 여운에 명치를 강타당하고 또 다시 표지를 확인한다. 내가 읽고 있는 것은 소설집인데, 유명 포털의 베스트 공감게시물을 보는 기분이어서.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공감과 추천을 클릭하고, 실시간 댓글을 쓰고 싶었는지. 가끔은 작가의 네임 밸류에 눌려 읽기도 전에 대략의 인상을 정해놓고 오차범위 내의 국지적 독서를 하는 경우가 생기곤 하는데, 언제나 왕성하고 다채롭게 시대와 호흡하는 작가일수록 그런 경향이 생겨버리는 것에 난감해할 때 쯤, 김영하가 돌아왔다. 불패의 작가라는 내 안의 이미지와 더불어. 

 

그의 소설은 시대적 기표들로, 핫 아이템으로, 트렌드로 가득하지만 결코 휘발적이지만은 않은 묘미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스트 '톡'으로 공유하는 일상의 부유물들이, 그의 달변과 내공을 거치면 하루치의 웃음과 깊이에의 강요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갖추게 되는 것이 얄미울 정도다. 쿨하고 스마트하고 적당한 허세로 무장한 신변잡기의 시대를 살면서도 사실은 '쿨하지 못해 미안'한 뒤끝 넘치는 평범한 사람을 조명하고 중계하는 솜씨야말로 김영하의 장기가 아니겠는가?
 

소설집『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의 인물들은 자유자재로 스마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시절을 살면서도 불통의 인간관계를 개선해갈 수 없다. 통신기술의 진화는 오히려 주변인들의 일상을 간편하게 추적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음의 간극을 회복불가능하게 벌려놓는 반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능청맞게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일상을 생중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미니홈피, 페이스북, 트위터 중독자들은 자신들을 추적한 단초를 스스로 제공하고, 그에 화를 입으면서도 거기에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굴레를 짊어지고 있진 않은지 새삼스러울 것 없어도, 언제나 소름끼치는 현실을 다시금 만난다.
 

이 불통의 인물군상들 중 하나쯤은 온, 오프라인 상에서 조우한 적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일촌이 끊겨버린 옛 연인일 수도 있고, 비밀번호를 해킹하면서까지 스토킹 하고 싶은 문제적으로 엮여있는 지인일수도 있고, 넘쳐나는 부도덕과 타락의 시대에 슬며시 끼어드는 것이 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오히려 항변을 늘어놓는 그런 주변인일 수도 있다. 중차대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들이 마구잡이로 중계되고, 소모되고, 추적되고, 그러다 한순간에 잊혀져버리곤 하는 스마트한 시대의 스마트하지 못한 이력들을 민낯으로 목도하는 기분의 생경함이 날이 선채로 전달되지 않도록 불편함을 중재하는 이 능수능란함이라니! 


각기 다른 커뮤니티에 속해있어도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이슈의 총체는 별다를 것이 없다. 미담보다는 파경, 결별, 폭로성 이슈들로 점철되곤 하지만, 한 곳에 가만히 머물러도 지속적인 펌으로 타인의 일상을 필요이상으로 엿보면서도 정작 자신도 그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버리기 십상인 우리네라, 무겁고 긴 글이면 '패스'해 버리는 세태에까지 호소할 수 있는 소설집과 만날 수 있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질척이는 일 없고, 맺고 끊음에 망설임이 없는 그런 사이버상의 바람직한 인생그래프처럼 살풍경한 것이 또 있을까? 

 

그때는 그 죽일 놈의 쿨인가 뭔가 때문에 헤어진 남자하고도 웃으며 만나야한다는 게 이십대 사이에 팽패해 있었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느냐에 매달리자 그 오빠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지영아, 너 왜 이래, 너 쿨한 애잖아."
쿨한 거 좋아하시네! 권총이 있으면 그 오빠 머리통에 대고 "어서 살려달라고 말해. 안 그러면 쏴버릴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쿨이니 뭐니 종알대는지 보게. (110p)

  

쿨함을 강요받고, 스마트함을 증명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소비하는 시류 속에서 정작 쿨하지 못하고, 스마트하지 않게 표류하는 인물들이 나만이 아니었다는 기묘한 안도감에 빠져든다. 일견 추레해 보일 수 있는 현대인의 초상이 추레하지만은 않게 그려질 수 있는 것은 동시대인에 대한 작가의 이해와 연민에서 기인한다고 믿고 싶다. 일상과 비 일상의 불분명한 경계를 그토록 밀도 있게 추적해서 재구성할 수 있는 불패의 작가, 김영하에 대한 인상은 지극히 광범위한 오차범위 탓에 더욱 공고해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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