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주사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4
마크 앨퍼트 지음, 이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그리 대단치 않은 인물이라는 본인의 생각과는 다르게 우리는 온통 감시와 통제 하의 상황 속에서 일상을 보낸다. 개인정보유출과 불법감찰의 여파는 경각심을 일깨우기는 하지만, 지속적인 대처와 재발방지보다는 여름날의 태풍처럼 자연소멸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음모론이 더 이상 공상이 아닐 경우, 오히려 불합리한 현실을 재구성하는 그럴 듯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점차 진화하는 스릴러를 통해 해본다. 그리고 곧 미드를 끊어야겠다는 부질없는 결심도 함께.

『다빈치 코드』에서 그네들의 추적이 성배, 예수의 후손을 찾는 음모론의 향연이었다면, 『신의 주사위』는 물리학의 궁극적인 이상을 담은 또 다른 성배, 아인슈타인의 말년의 대 연구였던 통일장 이론을 둘러싼 피의 암투를 그리고 있다. 마치 종교든 과학이든, 맹신에 이르면 야기되곤 하는 파멸을 충실히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을 보는 기분이다. 성배가 어느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는지에 따라 결정지어 지는 인류의 미래라니, 사실 '신상' 스릴러에 기대하게 되는 참신한 스토리텔링은 아니다.

클래식의 영역에서는 모차르트, 과학 분야에는 아인슈타인만큼 압도적인 아이콘이 있을 수 없다. 이보다 더 친근할 수 없는 대중성과 전문가들에게도 언제나 영감을 제시하는 존재로 더 이상 조명할 것이 없는 헌신적인 연구 속에서도, 결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지 않은가. 또 하나의 아이슈타인 음모론을 대하는 다소 삐딱한 태도로, 얼마나 더 자극적인 핏빛 잔혹극이 스펙타클하게 펼쳐질런지, 그것을 상쇄하려면 전문적인 이론과 최신수사기법을 밀도 있게 그려내는지가 관건이겠지 하면서.

중력과 전기력, 핵력을 아우르는 통일장 이론은 끝내 정립되지 못하고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아인슈타인은 의도적으로 정립된 이론을 발표하지 않고 몇몇의 수제자들에게 암호화한 단서만을 남겼다는 토대로 시작하는 과학스릴러. 상대성이론이 맨하탄 프로젝트의 단초가 되었던 것처럼 물리학의 성배가 또 하나의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불러일으킬 것을 거인의 예견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진행되어버린다. 대테러 작전에 이론을 접합하려는 미 국방부, 무차별적인 미군의 테러진압에 가족을 잃고 복수를 꿈꾸는 러시아용병,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온전히 지키고자 사투를 벌이는 실패한 물리학자였던 과학사 교수. 이 와중에 무자비한 청부업자와 미국 정부의 대처방식은 한 몸통에 머리가 둘 달린 괴물마냥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성배란 봉인되어 있을 때, 그것을 좇는 필사의 업을 수행할 때만이 무지갯빛일 수도 있다. 인간의 본성이란 인류의 향방을 결정짓는 희대의 보화를 이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단 하나의 걸림돌이며, 평화 그 자체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라는, 이내 수긍할 수밖에 없는 씁쓸한 결론을 목도하는 일은 그리 유쾌할 리 없다. 미치광이 과학자와 테러리스트, 국가기관의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암투 앞에서 지켜낼 수 없는 성배에 다다르려고 하는 몸부림은 타버릴 줄 알면서도 불가로 달려들 수밖에 없는 부나방의 몸짓과 닮았다.

얼마나 널고 깊게 통상적인 감시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그리고 있어, 물리학의 성배를 둘러싼 핏빛 암투 이상으로 소름이 끼쳤다. 전화를 엿듣고, 접속 현황을 추적하고, 머리 위에 떠 있는 감시위성 아래에서, 구글링 하나로 자신도 잊고 있었던 흔적들을 대번에 노출하게 되는 첨단의 시대에서, 제이슨 본도 아닌 우리네는 살아남기 너무 강판하다는 불콰한 깨달음이 덜렁 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