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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는 법 ㅣ 그림책은 내 친구 22
콜린 톰슨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10년 4월
평점 :
사라져버린 불가사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어왔다. 물론 종이책을 전부 폐기하고 전자책만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이 생겼다는 해외토픽이 일상적인 일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책'의 효용가치가 사라진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독서가, 장서가, 애서가, 탐서가들 사이에서의 궁극의 코드, 그것은 '저주받은 책들의 무덤'일 수도 있고, '꿈꾸는 책들의 도시'일 수도 있고, '바벨의 도서관'이라 일컬어지는 공간에 대한 열망은 얼마나 거대한 것일까.
콜린 톰슨은 『영원히 사는 법』에서 바로, 이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책이 꽂혀 있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 궁극의 도서관에서는 딱 한 권의 책만이 분실된 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고 전해진다. 바로 <<영원히 사는 법>>이다. 관람객이 모두 나가버린 후 야심한 밤이면 되살아나는 자연사 박물관처럼, 이 도서관 또한 어둠이 내리면 책장들이 살아나기 시작하는데 책은 곧 삶은 담은 그릇이 되어, 저마다의 인생들이 깃든 도시이자, 안식처로 화한다.
<<영원히 사는 법>>에 대한 의문을 간직한 소년, 피터는 책을 찾아 영생을 얻기 위한 탐사를 계속해나가는데, 이 끝도 없는 인류 지식의 총체인 도서관 왕국의 서가를 누비는 일은 바다에 빠뜨린 바늘 찾기만큼이나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의 여정에 따라 펼쳐지는 책 도시의 풍광은 일상이라는 삶의 무게가 켠켠히 들어차서인지, 이상적 공간이기보다는 지치고 퇴색된 노곤함이 물씬 풍겨온다. 마침내 피터가 도달한 금서, '<<영원히 사는 법>>-초보자를 위한 영생'은 중국의 네 선인이 지키고 있는데, 과연 피터가 영생을 얻을 런지는 이대로라면 너무 수월하지 않을까 의심이 들던 차에-
피터가 대면한 '영원한 아이'는 그 책을 독파하고도 유일하게 제 정신을 잃지 않은 자로서 앞 서 경험한 자의 위엄으로 영생의 덧없음을 설파한다. 그의 절대적 피로와 노쇠한 불멸보다 더욱 설득력 있는 것은 없다.
"그 책을 발견했을 때 나는 너보다 어렸고,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었지. 그러고 나서 내 친구들이 자라날 때 나는 이대로 머물렀어. 친구들은 장남감에 싫증을 내고, 사람에 빠졌지.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가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렇게 앉아서 바라보는 게 전부였지. 지금의 나는 시간 속에 얼어붙어 있어. 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스스로에게 일렀지만, 사실 내가 가진 것은 끝없는 내일들뿐이지. 영원히 산다는 것은 절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야. 그것이 바로 내가 책을 숨긴 이유다."
콜린 톰슨이 내세운 '피터'는 네버랜드의 그 피터의 오마주일지도 모른다. 웬디와 그 딸들이 네버랜드를 왕래하는 동안 '영원한 아이'로 박제되어 있는 그 아이는 영원한 유년 속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철 네버랜드에 머무는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마는 덧없음을 현신일 수도 있으니. 선대의 '영원한 아이'의 절규에 찬 충고를 수용할 수 있는 이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곧 영생에 대한 끝없는 집착이 인류의 역사의 현주소와 다를 것이 없다. 콜린 톰슨의 그림책답게 그로테스크한 화면구성 안에 우문현답을 펼쳐내고 있음을 또 다시 확인한다. 영생보다 더 탐나는 것이 영생을 찾아 헤매는 꿈의 도서관 기행임을 슬며시 고백하면서.